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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단의 발자취…실향민들 눈물로 기다려온 ‘통일의 봄’ 언제 오나
[인터뷰] 실향민 1세 인간승리의 거인 김건철 장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5/02 [16:15]

김건철 장로를 만난 것은 지난달 28일 서울 영락교회였다. 한국 개신교 발전에 크게 공헌한 ‘한경직 목사 기념상’을 김건철 장로가 수상하는 자리였다.

상을 수상한 김건철 장로는 올해 90세로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이다. 온후하고 중후한 인상을 주면서 입가에 흐르는 미소는 누구던 먼저 대화를 건네고 싶은 분이다.

김건철 장로의 미수·회혼기념 회고록‘섬김 나눔 베풂의 삶’을 읽으면서 장로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인간승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민족분단의 실상을 직접 겪으면서 평생을 살아온 실향 1세대 ‘실향민이 눈물로 기다려온‘통일의 봄’은 언제 오냐’고 묻는다.

▶오늘 매우 의미 있는 상을 받으셨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평소 존경했던 한경직 목사님의 거룩한 상을 받아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뜻을 받들어 나머지 삶도 더욱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장로님은 6.25한국전쟁 중에 부친 김능백 목사님과 함께 어머님과 여동생은 고향에 남겨두고 월남하셨는데 그 당시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20대 초반인데 어느새 90세가 넘었으니 어언 7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당시 아버지와 내가 월남했던 배경은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조부 김응록 장로께서 해방 후 귀국했지만 김일성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기독교 탄압이 진행됐지요. 이에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반발과 저항이 거세졌습니다. 결국 김응록 장로께서 1950년 10월 20일 총살로 순교 당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나는 월남을 단행하게 되었지요.

 

한국 개신교 발전에 크게 공헌한

‘한경직 목사 기념상’수상…평소

존경했던 목사님의 거룩한 상을

받아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

 

▶회고록 목차에 ‘어머니 또 부르고 싶은 어머니’라는 제목과 ‘어머니, 건철이 장로 되었어요’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머니 사랑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월남한 실향민들에게는 가슴 아픈 고통으로 남아 있지요. 내가 북한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는 교회 목사님 생활이 늘 궁핍한 것을 보고는 건철이는 장로가 되라며 격려하셨으며 만약 “장로가 되면 내가 소를 잡아 잔치를 해 주마”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지금까지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월남하기 전날 밤에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남한에 가서도 꼭 장로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열심히 정직하게 노력하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신 마지막 말씀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교훈으로 잊지 않고 있어요.

아버님이 어머님 손을 잡고 ‘잠시 있다 돌아온다’라며 떠나온 가족 이별이 벌써 71년이 흘렀어요. 그렇게 인자한 어머님이신데 수십 년 세월동안 얼굴 한번 뵙지 못하고 돌아가실 때 임종조차 하지 못한 불효자가 된 것은 민족분단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남하기 전날 밤 손을 꼭 잡으시고

남한에 가서도 꼭 장로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열심히 정직하게 노력하면

하나님 뜻 가운데 성공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격려, 교훈으로 잊지 않아

 

▶장로님 말씀대로 민족분단 이후 6.25전쟁을 겪으면서 월남한 실향민, 즉 이산가족이 1천명이 발생했으나 현재는 10분의 1 정도 생존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산가족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엄밀하게 볼 때 이산가족의 상봉문제는 남북한 당국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인도적 당면과제입니다. 그동안 이산가족들은 고향 가는 차표 한 장을 사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피눈물로 기다려온 불행한 사람들이지요.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추세여서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도 되는 한가한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무엇보다 인도적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남한 실향민들이 다 그렇지만 장로님도 맨주먹으로 사업을 성공을 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업성과에 대한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사업에 대한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사업은 누구를 막론하고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수적 과제입니다. 과욕하지 말고 양심과 열성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다음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주택관련 사업에서 나름대로 조그만 성과를 거둔 것은 매우 값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눔과 베풂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이산가족들은 고향 가는 차표 한 장

사기 위해 평생 피눈물로 기다려온

불행한 사람들…이산가족들은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 늘어나고 있어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도 되는

그런 한가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환영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인도적 이산가족 문제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어

 

▶장로님을 오랫동안 지켜본 평안남도 도민들은 장로님을 ‘평안남도 도민의 자랑스러운 인재이시고 존경 받는 훌륭한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에는 장로님의 인간승리에 대한 능력과 존경심도 있지만 지난 36년간 평안남도 출신 월남 실향민 자녀들에게 후원해 주신 장학 사업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 기회에 재단법인 평안남도 장학회에 관해 소개해 주십시오.

내가 평안남도 장학재단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고향을 떠나 월남한 실향민 자녀들에게는 ‘교육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신념 때문입니다. 또한 통일 이후 고향에 돌아가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도 있었지요. 이에 따라 36년간 장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동안 장학금 수혜자가 1천여 명에 이르고 있어요. 무엇보다 고향을 위한 값진 인재육성 사업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장학 사업은 계속 후원하고 싶습니다.

 

평안남도 장학재단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고향 떠나 월남한 실향민 자녀들에게는

‘교육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신념 때문

통일 이후 고향에 돌아가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취지도 있어 36년간 장학 사업을 추진

 

장학금 수혜자가 1천 명에 이르고 있어

고향 위한 값진 인재육성 사업으로 후원

건강 허락하는 한 장학 사업은 계속 지원

 

▶장로님, 예수교장로회 남선교회 서울노회연합회를 통해 전국 최초로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많은 선교기금을 마련하였고, 후에 평양 봉수교회를 건축하는데 일부 협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연길지역에 있는 몇 개 교회를 건축하는 등 통일선교에 많이 기여하셨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을 받으신 게 아닙니까?

말씀하신 내용으로 훈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을 비롯해 관변 국민단체에 많이 참여해서 활동한 것이 훈장 추천 배경이 됐습니다. 특히 평안남도 도민회 활동에 기여한 내용으로 ‘국민훈장 목련장’(1989. 9. 24)과 ‘국민훈장 동백장’(2006. 10. 15)을 받았어요. 대한민국에 감사하고 돌아가신 어머님 영전에 감사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민주평통을 비롯해 관변 국민단체에

참여해서 활동한 것이 훈장 추천 배경

평남 도민회 활동에 기여한 내용으로

국민훈장 목련장·국민훈장 동백장 받아

 

1999년 재한 몽골학교 설립…울란바토르

문화원 이사장을 맡아 한국과 몽골의 민간

문화외교에 많은 공을 들이고 몽골 근로자

권익향상과 몽골인을 위해 나눔공동체를

지원한 공로 인정받아 몽골 대통령 직접

서울 와서 최고훈장인 ‘북극성훈장’ 추서

 

▶장로님, 국민훈장 받으신 것 말고, 몽골 최고훈장도 받으셨는데 그 내용도 소개해 주세요.

내가 몽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재한 몽골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입니다. 이를 계기로 울란바토르 문화원 이사장을 맡아 한국과 몽골의 민간 문화외교에 많은 공을 들였지요. 특히 몽골 인구 270만 명 가운데 재한 몽골 근로자 1만 7천 명의 권익향상과 몽골인을 위해 나눔공동체를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6월 5일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이 서울에 와서 직접 몽골 최고훈장인 ‘북극성훈장’을 달아 주셨어요. 한국인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은 내가 세 번째입니다. 이를 계기로 몽골 국립교육대학교 명예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몽골 통일선교의 소중한 성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장로님을 취재하던 중에 많은 분들이 장로님을 ‘실향민의 대부’ 또는 ‘인간승리의 거인’으로 평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장로님을 그렇게 비유하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만한 능력과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그렇게 과찬을 해준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실향민인 내가 신앙적으로 평신도 지도자(장로)로 성공했고, 참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경영인으로 성공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성공한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작은 일에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좋은 덕목을 붙여준데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더욱 열심히 성실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북한 통일은 조금 지연돼도 동족 간에

전쟁만은 막아야 하며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가는 노력이 중요

이 같은 일념으로 정부와 국민 노력할 때

 

▶장로님, 오늘 상 받으신 것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좋은 말씀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월남실향민 1세대로서 분단의 고통을 몸소 겪으셨는데 앞으로 통일문제에 관해서 말씀 주십시오.

우리민족은 8.15해방 이후 민족의 단일국가를 수립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사상으로 분단됐고, 남의 나라 군대로 6.25 동족상잔까지 치렀습니다. 그리고 분단의 세월이 70년을 넘는 동안 우리 민족사에 가장 심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어요. 더욱이 전쟁 중에 자유를 찾아 월남한 실향민들이 눈물로 기다려온 ‘통일의 봄’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러나 통일이 쉽게 빠른 시일에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남북한은 통일은 조금 지연돼도 동족 간에 전쟁만은 막아야 하며 평화적으로 통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이 같은 일념으로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신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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