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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현주소를 찾는다] 6.25 남침전쟁과 북한 천주교
광복 후 천주교와 신자들 박해 강행/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을 모두 처형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5/16 [15:46]

광복 후 북한 당국은 원산시 인근의 덕원수도원과 함흥교구, 평양교구를 폐쇄하고 홍용호 주교를 피랍하는 등 천주교와 신자들에 대한 박해를 강행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을 모두 처형하였다.

 

교인들에 번호 붙이고 감시 대상

 

북한에서 토지개혁을 시작하면서 성당과 수도원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들을 무상으로 몰수했다. 덕원수도원에는 빵공장과 함께 포도주 양조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북한 당국은 1948년 11월에 경리담당자인 다르베르트 엔크신부를 포도주 불법 생산과 탈세명목으로, 수도원 소속의 인쇄소 책임자였던 루드비코 피셔는 불온 물 인쇄죄목으로 체포하였다.

전쟁을 일으키기 1년 전인 1949년 5월 9일에 덕원수도원의 수도원장과 신부 등 4명을 체포하여 평양인민교화소에 투옥하였다. 10월에는 독일인 신부 8명, 조선인 신부 김치호, 김종수, 김이식, 최병권 등 4명, 수도사 22명을 체포했으며, 수도원에 머물고 있던 수사 23명과 신학생 76명 등 99명을 추방하였다.

함흥교구에서도 같은 해인 1949년 5월 10일 밤 11시에 무장인원들이 급습하여 신부들과 수녀 67명을 체포하였다.

이들은 처음에는 평양인민교화소에 구금되었다가 전쟁 1년 전인 1949년 6월 24일에는 ‘옥사독강제수용소’로 이송, 다시 만포수용소로 이관되어 갖은 학대를 받았다. 이들 중에 전쟁시기 만포수용소에서 희생된 외국인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는 25명에 달했다.

북한 당국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평양교구 소속의 5명, 함흥덕원교구의 3명, 황해도에 있던 서울교구의 13명, 춘천교구의 평강본당의 이광재 신부 등 조선인 신부 21명도 체포하여 미국의 첩자라는 죄명으로 처형하였다.

6.25남침전쟁시기 북한 당국의 천주교 박해로 잘 알려진 것이 ‘죽음의 행진’이다. 1950년 9월에 북한 당국은 남한에서 끌려간 천주교 성직자들과 전쟁 전에 북한에서 체포했던 천주교인들을 10월 31일부터 8일 동안 중강진으로 산길을 따라 행군을 하도록 강요했다.

8일 동안 그들이 행군한 거리는 240km에 달했다. 건강이 허약해진 그들이 수갑을 찬 채로 무장인원의 감시를 받으며 산속 길로 하루에 75여리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빨리 걷지 않는다고 하여 총으로 쏴 죽이고 반항한다고 하여 무리로 달려들어 마구 때려 죽였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병이 나도 치료하지 않아 그들은 짐승처럼 죽어갔던 것이다. 전쟁으로 천주교는 건물마저 파괴되었고 많은 신자들이 희생되어 북한에서 천주교는 그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북한 당국은 전후에 공장과 농장을 집단화하면서 천주교신자들의 공동생활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1960년대 말부터 ‘주민재등록사업’이 진행되면서 감시와 통제가 더 강화되었다.

주민들을 3부류 51계층으로 분류하였고 개신교와 불교, 천주교인들에 대해서는 각각 37번, 38번, 39번 대상이라는 번호를 붙이고 주요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국제사회 비난 감안한 제스처 주장

 

북한 당국은 1970년대 주체사상을 확립하는 과정에 이에 반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들과 종교이념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1984년 요한바오로 2세교황의 한국방문을 계기로 종교탄압이 국제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조선천주교협회를 결성하고 평양에 장충성당을 건립했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에서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들은 기도를 드려도 조선을 위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에게 망국의 불행을 덜어 달라는 하소연을 하였다.

그들의 순결한 신앙심은 항상 애국심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평화롭고 화목하고 자유로운 낙원을 건설하려는 그들의 염원은 시종일관 나라의 광복을 위한 애국투쟁에서 자기의 보금자리를 찾았다’고 밝힌 것만 봐도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회고록 출간 시점이 북한 당국의 반종교 탄압의 변화시기임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당시 북한 당국의 반세기에 걸친 종교탄압과 박해로 이미 북한에서는 종교 활동이 백지화된 상태여서 이러한 김일성의 행보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안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이었던 박승덕은 1988년 스톡홀름 대학에서 열린 주체사상에 대한 학술대회에서 김정일의 1986년 8월 5일 노작인 ‘주체사상의 기본에 대하여’에 대하여 북한 당국은 ‘종교를 악용하는 반동적인 지배계급과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배격하였지 종교와 종교 신자들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종교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는데 종교에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살라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다.

북한 천주교 단체 활동에 남한과 해외동포 천주교 신부들과 신자들의 영향도 컸다. 개성이 고향인 고종옥 마태오 신부는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천주교 신부로 북한선교를 위해 모색을 하던 중 1984년에 북한을 방문하여 가족친척들을 만났으나 당시에는 당국의 감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가족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함께 미사마저 드릴 수 없었다.

 

종교적인 것보다 정치 목적에 중점

 

고종옥 신부와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이었던 장익 신부 등 많은 천주교 사역자들의 활동으로 북한당국은 1988년 3월 30일부터 4월 6일까지 이진철 모이세와 홍도숙 테레사 등 북한의 천주교인 2명을 기독교의 성지인 바티칸에 순례하도록 하였다.

물론 북한 당국은 북한주민들을 세계기독교의 성지에 보낸 사실을 비밀로 붙여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이 사실만 봐도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국제사회에서 받는 비난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현재 조선가톨릭교협회는 1988년 6월 30일에 결성된 조선천주교인협회를 1999년부터 개칭한 명칭이다. 1988년 결성 당시 북한 당국은 협회의 목적에 대해 언급하면서 신자들을 애국애족정신으로 교양한다거나 나라의 부강발전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위업에 헌신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한 것만 보아도 천주교활동을 종교적인 것보다 정치적 목적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결성보도문에서 ‘각국의 천주교인 및 단체들과 연대하여 친선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구절도 3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했다. 이것 역시 전 세계적인 조직망을 가진 가톨릭교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설립취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선천주교협회를 통하여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요청하였다. 1998년 3월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옥수수 3톤과 비료 1천톤을 지원하기로 약속하였고 그 이후에도 많은 인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장충성당이 건립되어 1980년대 말부터 해외동포들과 남한의 천주교인들이 방북하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된 것도 북한 천주교 역사에서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의 천주교도 그리스도교(개신교)와 마찬가지로 북한정권의 정책을 옹호하고 노동당의 대외활동을 위한 위성단체로서 당과 국가의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헌법에 명시된 대로 종교의 자유를 말로만 아니라 진실로 보장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임을 자각하고 무조건적인 종교자유화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김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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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16 [15:46]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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