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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이 주인 되어 관리·운영하는 문화센터 만들어 주었으면”
[인터뷰] 사단법인 탈북예술인연합회 주명신 회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6/13 [14:40]

북한예술의 장점은 민속전통을 지속적으로 장려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난 1970~80년대까지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문화예술을 관장하였으니 사회적 관심과 배려, 예술인 대우가 높았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에서 예술인은 성악, 무용, 기악으로 무대에서 예술작품을 표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를 남한에서는 연예인이라고도 부른다. 예술인이 배부른 직업은 아니지만 대중의 선망을 받기에 좋아서 하는 직업일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인들의 공연을 통하여 울고 웃는다. 그 속에서 자기의 이상형을 찾을 수 있고, 또한 희로애락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은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문화로 그것이 갖는 파급력은 정말로 대단하다.

기자가 그동안 통일관련 행사에 참가하여 탈북예술인들이 출연하는 다양한 축하 및 기념공연을 보면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그것은 남한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사라진 민속공연을 바로 탈북민들이 이어간다는 것이다.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이는 충분히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향할 만한 중대사임이 분명해 보인다. 남한에서 활동 중인 탈북예술단체의 연합체인 탈북예술인연합회 주명신 회장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58년 5월 원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1군단 노무자(군에 종사하는 민간인, 남한의 ‘군무원’)로 근무하는 가정에서 4남 1녀 중 둘째 아들이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신 걸로 보아 그 유전자를 조금 이어 받은 것 같다.

인민학교시절 전국소년단 노래경연 강원도 결선에서 독창 ‘해당화’를 갖고 1등 없는 2등을 하였다. 이때는 성악도 하면서 악기도 다루었는데 종류는 대해금(첼로기능의 악기)이었다. 중학교시절에는 평양에서 진행된 중앙방송예술축전에 참가해 노래이야기 ‘철령의 소년들’이 최우수상에 당선되기도 했다.

▶경력을 말해 줄 수 있나.

1974년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1군단 노무자로 근무하였다. 1978년 원산예술대학에 입학하는데 당시 이 대학 입학 선호도가 대단했다. 아마도 당시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비서여서인지 사회적 추세가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도당의 책임간부 자식들이 너도나도 원산예술대학에 입학하였다. 북한에서는 간부들이 많은 권한을 가졌기에 무엇이든 자신들 위주로 사회적 혜택을 받는 것이 관례이다.

대학 졸업 후 1982년 원산교원대학 음악교원으로 배치를 받아 1998년까지 16년간 교단에서 음악후비들을 양성하였다.

▶탈북동기가 궁금하다.

1998년 동생이 친구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술김에 “저 김정일이 보이지 않는 레이저권총으로 누가 콱 쏘아죽이면 좋겠다” “김정일 때문에 인민들이 배를 곯고 있다. 자기는 얼마나 잘 먹으면 저렇게 뚱뚱할까?” 라는 말을 하였다. 엄청난 실언이다. 다음날 동생은 한 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치범수용소로 갔을 것으로 본다. 소름이 끼쳤다. 당장 내 목숨도 위태로울 거라 판단하여 1998년 6월 4일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였다. 2000년 12월 캄보디아를 거쳐 이듬해 2월 초 한국에 입국하였다.

동생이 친구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술김에

김정일 비난하는 실언으로 밤중에 사라져

당장 내 목숨도 위태로울 거라 판단하여

탈북 결심…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에 입국

▶사회에 나와서 처음에 무슨 일을 하였나.

하나원을 수료하고 주거지는 전라북도 정읍시에 소개 받았다. 북한에서 사범대학 음악교원이었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곳은 어디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세월과 억울한 북한사회를 원망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 흘렀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했던 일은 주유소 손세차였다.

▶예술 활동의 첫 계기는

북한에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고 그걸 달래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 같은 사람이 교회에 몇몇 있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탈북민들로 구성된 찬양단을 만들어 커뮤니티를 가졌으면 하는 제안을 했다.

다소 망설이었다. 그러나 안하기보다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우세했다. 우선 고향을 떠나 이곳 타지에서 사는 탈북민들의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하여 탈북민 5명으로 ‘경배찬양단’이 만들어졌고 그게 2001년이었다. 목사님 소개로 전라북도 내 여러 교회를 다니며 신앙 간증과 찬양공연을 하였다.

사범대학 음악교원이었지만 인정해주는 곳 없어

세월과 북한사회를 원망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주유소 손세차 시작해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 생각하면 마음 괴로워

교회 다니기 시작하면서 목사님이 탈북민들로

구성된 찬양단 만들어 커뮤니티 가질 것 제안

망설이다 하는 것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우세

 

2001년 탈북민 5명으로 ‘경배찬양단’ 창립

전북 내 교회 다니며 신앙 간증·찬양공연

▶또 다른 경력을 말해준다면…

한국자유총연맹의 후원으로 2002년 12월 ‘탈북예술인교육문화단’을 만들었다. 이름이 다소 긴데 이유가 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한 탈북예술인들이 안보강연, 무대공연, 봉사활동 등을 하는 종합적인 예술인단체라고 보면 된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

2005년에 ‘평양민족예술단’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에 사람들의 시비가 많았다. 평양민족과 서울민족이 다른가? 하면서 말이다. 하여 이듬해 ‘평양민속예술단’으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오고 있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다.

▶‘평양민속예술단’을 소개해 달라.

우리 예술단은 문화관광부 등록 사단법인이다. 예술단정원 20명, 찬조출연자 10명 합쳐 모두 30명이다. 서울과 수도권, 전국순회로 진행되는 연평균 공연은 적으면 120회, 많으면 150회 정도이다. KBS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SBS 강호동의 스타킹 등 방송출연만 60회 이상이며 지난 15년 동안 모두 1800회 공연을 하였다.

전용버스도 3년 전에 구입하였다. 우리 공연을 보고 버스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은 아마 100명도 넘는다. 그런데 모두 중고버스이다. 그런 버스는 수리비가 더 많이 든다. 그래서 큰마음 먹고 42인승 새 차를 뽑았다. 흰색 버스에 ‘평양민속예술단’이라는 이름도 버스 앞뒤 양면에 써넣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내가 30여 명의 단원이 월평균 10회 이상의 무대공연을 진행하는 최고의 탈북예술단을 이끌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지난 2010년부터 봉사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2002년 12월 ‘탈북예술인교육문화단’ 만들어

남과 북 모두 경험한 탈북예술인들로 안보강연

무대공연, 봉사활동 하는 종합적인 예술인단체

‘평양민속예술단’으로 개명해 대표 맡고 있어

▶또 다른 풍경이 있다면…

교도소, 장애인단체, 복지관, 실향민모임 등을 찾아 무료로 공연을 해주고 있다. 이때는 우리 단원들의 솜씨로 만든 이북순대이며, 명태식혜 등 북한음식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지금까지 모두 80여회 무료공연을 하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올해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대만공연을 했다.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여 대만의 모 단체 초청으로 이뤄진 공연이다. 우리 예술단의 신변안전을 위해 대만 현지에서 10명의 전담경찰이 경호를 맡았고 한국에서도 1명이 동행하였다. 연도 환영까지 받은 대만공연은 정말 우리 단원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평양민속예술단의 장점은 무엇인가?

공연은 1년 중 6개월은 성수기이고 6개월은 비수기이다. 우리는 비수기에도 연습실에서 꾸준한 훈련을 한다. 배우의상, 무대장치, 공연종목 등을 꾸준히 새것으로 바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단원들 간의 친목과 협동심 관리이다.

▶함께 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

현재 우리 예술단 후원회 성원 10여 명, 고문단 성원 10여 명이 있다. 한 장소(공연연습실, 사무실)에서 10년 가까이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본다. 서울 구로구 지하철 대림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하다.

공연은 1년 중 6개월은 성수기, 6개월은 비수기

비수기에도 연습실에서 꾸준한 훈련…배우의상

무대장치, 공연종목 등을 꾸준히 새것으로 바꿔

가장 중요한 것은 단원들 간 친목과 협동심 관리

 

현재 예술단 후원회 성원 10명, 고문 성원 10명

공연연습실, 사무실에서 가까이 있는 것도 장점

북한에서 영화 및 예술인 사회를 들여다보면 특이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예술인들이 2일에 한 번씩 하는 생활총화이다. 지난 1970년대 초 김정일이 만든 행정체제이다. 이유는 이렇다. 김정일이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 선전선동부에 이름을 걸어 놓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영화창작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할 때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수령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원로예술인들의 업무에 시시콜콜히 참견하며 이래라 저래라 하니 잘 받아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김정일이 짜낸 묘책이 바로 2일에 한 번씩 하는 생활총화이다. 일종의 반성문을 쓰고 자아비판을 하는 행위이다. 은근히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고 정신을 괴롭히며 길들였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김정일의 지시가 철저히 내리 먹히는 풍조가 발생하였다. 거의 수령(아버지 김일성)과 동일한 수준에서 말이다. 여기서 힘을 얻은 김정일이 위와 같은 방법을 외교부, 통일전선부 등 대외사업 부문 전문기관에도 적용하였다. 거기서도 반응이 좋았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경쟁이 불을 지핀 것이다.

이에 만족한 김정일은 전체 인민들에게 일주일 생활총화 제도를 도입시켰다. 사실상 학생으로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이 정치조직에 가입된 북한주민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1시간씩 자신의 사상을 조직 앞에서 검증받고 새로운 충성결의를 다지는 생활총화를 한다. 이것이 북한사회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탈북예술인연합회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남한에는 탈북민들로 이뤄진 예술단체가 10~15개 이상 있는 것으로 본다. 적어도 이들을 대변하거나 연합체 같은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정부 및 대형단체에서 섭외하는 공연에 입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혹은 소수는 아무리 저 잘났다고 해도 기관에서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수년간의 고민과 노력 끝에 통일부장관이 승인하는 법인단체로 ‘탈북예술인연합회’가 설립되었고 내가 초대회장을 맡았다. 2014년부터 구상을 해오다가 지난 2016년 12월 6일에 통일부 등록 법인 단체로 출범했다.

▶그동안 어떠한 일을 하였나?

대표적으로 작년에 남북하나재단에서 주최하는 ‘한마음축제’를 개최하였다. 모두 8개 탈북민예술인단체가 연합으로 이뤄진 이 공연에는 수십 명의 배우들이 참석하였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탈북실버예술단이다. 어르신들이 예술기량을 발휘하여 하는 공연이었는데 관객에게 훈훈한 마음을 선물하였다.

남한에 탈북민들로 이뤄진 예술단체 10~15개

대변을 위한 연합체 같은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

남북하나재단에서 주최하는 ‘한마음축제’ 참가

모두 8개 탈북민예술인단체가 연합으로 이뤄진

공연에는 탈북실버예술단이 참여…어르신들이

예술기량을 발휘한 공연으로 훈훈한 마음 선물

▶바라는 것이 있다면…

통일부에서 지금 남북문화예술센터(가칭)를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짓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이다. 그런데 200억 원 국가예산으로 짓는 이 건물을 우리 탈북민들이 잘 이용해 달라는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서울과 지방 각지에 있는 탈북민들이 이곳을 이용하러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지 말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관리 운영하는 센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엄밀히 보면 탈북민들을 내세워 통일부 산하기관 한 개 더 만들고 자기들의 일자리 창출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보이지 않는다. 정말 한심하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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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13 [14:40]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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