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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노인의 기억과 정부의 건망증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6/27 [13:02]

<박신호 방송작가>

낡은 얘기지만 늙은 부부가 다투는 원인 중 하나가 남편이 은퇴하고는 허구한 날 집에만 들어앉아 있어서다. 어제도 오늘도 다툼의 주제는 변함이 없다. 늙으면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늘도 여전히 다툼의 주제에 변함이 없다. 집에만 들어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참견하고 잔소리를 하게 되니 별수 없기는 하지만 처방이 없는 게 아니다. 또래 모임에 자주 나가면 깨닫게 된다.

“늙으면 죽는다. 선택할 수 없다. 먼저 죽고 나중에 죽고 일 뿐이다.”

친구 모임에 나가면 세월이 갈수록 빈자리가 많아진다. 생로병사가 비켜 갈 리 없다. 문득 깨닫게 된다. 반려자가 미울 수가 없고 지겨울 수도 없다. 고맙다고 생각해야 한다. 늙어 혼자되면 얼마나 외로우며 괴로운지 뼛속까지 알게 된다. 어쩔 건가, 숙명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늙으면 기억력이 문제다. 부부지간의 사소한 다툼도 기억력이 부실한 탓에 생기기 일쑤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는 거요?”

“난 그런 말 들은 적 없어요!”

기억력이 쇠퇴하면서 벌어지는 말다툼은 끝내 언성을 높이게 된다. 끝내는 너무 억울하다며 앞으로 대화는 전부 녹음하자며 자식이 온 날 핸드폰을 내밀며 녹취방법을 배운다. 하지만 소용없다. 금세 녹취방법을 잊어먹어서다.

노부부의 말다툼은 살고 있다는 증명이며 사랑이기도 하다.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생각만 안 하면 된다. 적폐청산 하겠다는 건 갈라서자는 거다. 기억력이 더 부실하기 전에 보듬고 보살피며 사는 게 현명하다. 서로 당신이 내 앞에서 죽기 바란다며 뒤돌아 앉아 눈물 감추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치매라도 걸려 기억력을 상실하기 전에 서로 영면을 보겠다는 부부가 되지 않으련가.

얼마 전 팔십망(八十望) 소설가 김훈 작가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글을 신문에 올렸다. 신문사가 내 건 “100세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은 화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에세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하다’를 남겼다. 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누구나 회한은 있다. 늙어도 기억이 다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눈물이 있고 정과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늙은 부부는 다투면서 등을 긁어주고 있는데 나랏일을 맡은 사람이 기억력이 없다는 건 큰 문제다. 정권만 쥐면 하는 짓이나 하는 말이 건망증에 걸려있다. 인사문제만 해도 그렇다. 코드 인사는 없어질 줄 모르고 회전문은 여전히 돌고 또 돌고 있으며 여야 간 비난과 독설은 끊이지 않는다.

“朴 정권 탓에 좌천된 윤석열, 文 정권 검찰총장으로. 文 정권에 좌천된 검사들…”

그땐 틀렸고 지금은 옳단 말인가? 아니면 건망증 탓인가? 건망증 증세는 사방팔방으로 번진다.

“경제 괜찮다는 與, 추경 얘기 땐 ‘경제 어렵다’”

“與 정치인, 진보 성향 학자들 모여 ‘소주성으로 소득 늘고 고용률 최고’”

“2년 새 일자리 47만 개 증발, 육군 병력만큼 줄어”

늙은이 기억력 쇠퇴는 사라질 날이 오지만 정권의 건망증은 사그라지지 않고 국민을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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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7 [13:02]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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