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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실체를 밝힌다] 만경대 혁명사적지
김일성 출생지로 어린 시절 보낸 고향집/부모와 조부모 묘소 등 총칭해 부르는 곳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7/11 [14:56]

북한당국이 김씨 일가의 우상화선전을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해오고 있는 만경대혁명사적지는 김일성이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낸 만경대고향집, 썰매바위, 군함바위, 씨름터, 학습터, 낚시터, 순화학교, 만경대혁명사적관, 김일성의 부모와 조부모의 묘소 등을 총칭하여 부르는 곳이다.

 

조상, 평양으로 이사…소작농으로 일해

 

북한주민이라면 누구나 만경대를 김일성이 태어난 곳이라고 알고 있다. 김일성이 만경대가 아니라 외갓집이었던 칠골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만경대는 평양역에서 직선거리로 7km, 대동강변 도로를 따라 서쪽방향으로 가면 약 9.6km거리에 있는 김일성의 생가로 알려진 곳이다.

만경대는 광복거리를 통과해서 갈수도 있지만 대동강변 도로를 따라 가곤 한다. 만경대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행정지역으로 평안남도 대동군에 속해 있었다. 북한 당국은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로 되어있던 만경대의 지역 명칭을 1952년에 대동군의 고평면 내리, 송산리, 남리, 서리를 병합하여 대동군 만경대리로 변경하였다.

1959년에 만경대구역이 신설되면서 대동군에서 평양시로 인입하여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리로, 1963년부터는 만경대구역 만경대동으로 개편했다.

만경대는 원래 사람이 사는 살림집이 아니라 묘를 지키는 산당집이었다. 김일성의 12대 조상이었던 김계상이 남한의 전라북도 전주에서 평양으로 이사하여 소작농으로 일했다.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때부터 평양의 대지주였던 리평택의 묘들을 봐주기로 하고 산당집이었던 만경대에서 살게 된 것이다.

산당집은 조상의 제를 올리기 위해 묘 근처에 세운 사당을 말한다. 김일성도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평양시 중성리, 지금의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에서 태어났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가 1860년에 지주 리평택의 묘지를 관리해주기로 하고 이 산당집에 들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김일성의 할아버지인 김보현도 김응우의 뒤를 이어 산당집인 만경대에 거처하면서 장가를 가서 할머니인 리보익과 살게 되었다. 대동강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경치가 아름다운 만경봉과 그 근처에는 권세 있고 돈 있는 부자들의 조상 묘가 많았다.

조부모인 김보현과 리보익은 리평택의 묘를 봐주면서 농사를 지었고 슬하에 3남 3녀를 키웠다.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이 장남이었고 남동생들인 김형권과 김형록, 여동생들인 김구일, 김형실, 김형복이 있었다. 방북 시 필수코스인 만경대를 관광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산당집인 만경대에서 8명의 식구가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만경대에는 묘소들만 있을 뿐 인가가 드물어 학교도 없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외갓집이 있던 칠골은 만경대보다 평양 시내가 더 가깝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보니 학교도 있었다.

김일성이 다녔던 창덕학교도 칠골에 있었다. 김일성의 칠골 외갓집이 광복거리의 입구 지하 철도역(지하 전철역)인 광복역에서 1.5km 거리에 있다. 그러나 만경대는 평양시에서 남포방향으로 가는 만경대구역 갈림길동에서도 10리 정도 더 가야 한다.

 

김일성의 진짜 고향은 칠골마을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은 성장하면서 한적하고 묘지들만 있는 만경대보다 사람이 많이 사는 칠골마을에 더 자주 나와서 생활하였다. 칠골에는 하리교회가 있었는데 김형직은 이 교회에 다니면서 이곳에서 김일성의 모친인 강반석을 알게 되었다. 당시 강반석의 부친인 강돈욱이 이 교회의 장로였고 교인자녀들을 위해 세운 창덕학교 운영을 맡고 있었다.

당시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연상인 경우가 많았는데 강반석도 김형직 보다 2살이나 더 나이가 많았다. 김형직이 만 16살, 강반석이 만 18살에 결혼하여 1912년에 김일성이 태어났지만 식구가 많은데다가 묘지가 많은 만경대에서 살기가 어려워 칠골 외가에서 신혼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북한당국이 칠골 외가가 김일성의 고향임에도 만경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외가 켠은 모두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었기에 우상화선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광복 후에 북한지역에 소련군정이 실시되면서 당시 북한주둔 소련군 사령관이었던 레베데프 소장이 증언한 자료를 보면 만경대를 김일성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당국이 어떻게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북한에서 1984년에 개봉한 조쏘(조선소련)합작영화 ‘영원한 전우’가 북한주민들에게 인기영화였다.

1946년 3월 1일 평양에서 진행된 군중집회에서 김일성이 연설할 때 수류탄을 막다가 팔을 잃은 소련군 소위 노비첸코에 대한 영화를 창작하면서 보리스 크리시툴 조감독이 레베데프 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과정에 레베데프 소장은 광복 후 소련군 군인 출신인 김일성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 대내외 선전매체들을 이용하였고 만경대가 어떻게 고향으로 둔갑하였는지 잘 알 수 있다.

8월 15일 해방을 맞이했지만 소련의 하바롭스크 소련극동군사령부 소속의 88저격여단 조선인 대대장이었던 김일성은 그때에도 소련군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해방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군함 ‘푸가초프’호를 타고 원산항에 입항, 10월 14일에야 북한주민들 앞에 나서서 개선 연설을 하였다. 개선 연설을 앞두고 김일성은 자기의 진짜 고향인 칠골 외갓집에 찾아갔다.

당시 외조부인 강돈욱은 사망하였지만 외할머니인 위돈신은 생존해 있었다. 위돈신은 김성주가 갑자기 김일성이라면서 나타나자 당혹스러웠다. 사전에 연락 받고 외손자인 김성주를 기다리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내대며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해외동포들 관광코스로 지정

 

김성주(김일성의 본명)는 창덕학교 시절에 외갓집에서 다니면서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성장하였다.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창덕학교 교장이었고 당시 그 학교의 교사였던 현응수도 1920년 전후로 칠골 외갓집에 가서 진짜 김일성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진짜 고향인 칠골 외갓집을 우상화선전에 이용할 수 없게 되자 김일성은 만경대를 고향집으로 둔갑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중국, 일본, 미국 등 많은 나라들에서 소련군이 군정을 실시하면서 북한 지도자로 내세운 김일성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언론들에 기사를 내보냈다. 북한에서는 혁명역사 수업시간에 만경대 갈림길에 대해 설명하면서 강선제강소를 다녀오면서도 만경대를 들리지 못했던 김일성이 개선연설을 하고 나서 만경대에서 할머니인 리보익과 상봉한 사진을 공개하였다.

김일성은 그 이후에 외할머니인 위돈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할머니 리보익에 대해서만 선전하도록 하였다. 만경대가 고향집으로 선정되었지만 마을사람들 중에 일부 주민들은 김일성이 만경대에서 나서 자란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주변에 얘기했다는 이유로 하룻밤 사이에 어디론가 끌려갔다. 처음에는 만경대를 ‘1호집’이라고 명명했다가 후에 만경대초가집, 만경대고향집, 만경대 옛집 등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만경대와 칠골 주민들에게 북한 당국은 김일성의 고향이 칠골이 아니라 만경대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누설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만경대고향집을 주민들 뿐 아니라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과 해외동포들이 반드시 관광해야 하는 코스로 지정하였고 만경대혁명전적지로 명명하도록 하였다.

가짜 고향집 만경대가 김일성이 출생한 고향집으로 둔갑하면서 만경대가문, 만경대혁명가정이라는 새로운 우상화선전 어휘가 등장하게 되었다. 만경대가 고향집으로 둔갑하면서 만경대가문이라는 대명사가 북한주민들의 세뇌선전에 활용될 수 있었다. 김형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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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1 [14:56]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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