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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 총사령관, 9월 독립운동가로 선정
독립기념관, “일본군과 맞서 싸운 한국광복군”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09/05 [12:21]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지청천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는 9.1~ 30일까지 (한 달간)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지청천 사진 등 8점이 전시된다.

지청천은 1888년 1월 2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1909년 9월 통감부의 압력으로 대한제국 군부가 폐지되고 학교도 문을 닫으면서 지청천은 일본 육군유년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일본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1914년 5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재임하던 중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국내로 돌아와 남만주로 망명한 그는 서간도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성대장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는 만주를 무대로 독립군을 이끌었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군을 조직하고 총사령에 부임했다. 그러던 중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북만주와 동만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태로 전투를 벌였다.

그중 1933년 6월 중국항일의용군과 연합하여 일본군 ‘간도임시파견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대전자령 전투는 ‘군수물자 노획’이라는 측면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최대 성과였다.

한국광복군을 이끌며 일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대일항전 구상 아래 병력 확충에 앞장섰고 영국·미국군 등 연합군과 합작 등을 추진하였다. 그의 장남 달수와 차녀 복영도 한국광복군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평생을 무장투쟁과 독립전쟁에 헌신한 지청천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신길숙 기자 38tongi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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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05 [12:21]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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