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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그리워한 엄마 고향이 가리키는 손끝에 닿아 있다
[탐구-9] 강화 교동도 망향대…15살 소녀는 울고 있었다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10/02 [16:23]

“엄마! 저기가 엄마 고향 황해도 연백이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언덕길을 올라온 초로의 할머니는 딸이 손으로 가리키는 바다 건너 연백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어렸을 적 고향집 풍경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할머니는 이네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할머니가 저 바다를 건널 때는 세상물정 모르던 15살 소녀였다. 잠깐 피난 간다고 따라나섰던 길이 벌써 70년. 이제나 저제나 한 번은 가 볼 수 있을까하고 기다렸지만 철조망 쳐진 바다는 오늘도 말이 없다. 이제는 발에 힘조차 빠져 일어 설 수 없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늘도 고향마을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죽기 전에 저기 한 번 가 봐야 하는데...” 할머니는 그리움에 사무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야윈 어깨가 몇 번이나 들썩였다.

교동도 밤머리산 끝자락에 있는 망향단 주소다. 예전에는 민통선이라 네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바로 연결된다. 대룡시장 입구인 회전교차로에서 오른쪽 3시 방향 교동북로로 방향을 바꾸면 4.3㎞로 이곳에서 10분 정도면 도착한다.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교동평야를 가로질러 교동정미소를 지나면 파란색 교통 표지판이 설치돼 찾아가는데도 별 무리 없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펜스를 따라 오르면 망향대다. 그리 크지 않은 광장에는 망향대(望鄕臺) 비석과 재이북부조(在以北父祖) 지단(之壇), 도와주신 분들 명단, 그리고 고성능 망원경 2대가 북한 연백을 향해 놓여 있다. 그 옆으로 ‘북한의 모습’과 ‘6.25 한국전쟁’ 사진판이 있고, 뒤로는 망향대 안내문이 있다. 안내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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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망향대는 한국전쟁(1950, 6, 25~1953, 7, 27) 중 황해도 연배군 연안읍에서 피난 온 주민들 중 애향모임인 비봉회 대표 김규태 외 15명의 회원이 중심이 되어 고향에 남아 계신 부모 형제 친지 친구 등을 그리워하여 조상님과 고향산천을 잊지 못하는 심정을 담아 연안읍 원로 유지 손원근 장일서 등의 적극적 후원과 뜻을 같이 하는 고향 선후배 150여명의 협조와 찬조로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 269-1에 망배비 망배제단과 협찬자 안내석 등을 갖추고 1988년 8월 15일 망향대를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망향대에서 건너보면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백평야가 눈앞에 전개되어 소리를 지르면 고향들녘에 울려 퍼질듯, 손을 벌리면 고향산천이 잡힐 듯 3㎞ 정도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함으로써 강화군에서는 800만 실향민들의 이산의 아픔을 위로하고 머지않아 다시 고향산천을 밟아볼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안보의 중요성을 재삼 일깨워 주자는 취지에서 본 망향대를 관광코스로 지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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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대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황해도 연백군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그대로 보일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논 밭일을 하는 사람과 바다 일을 하는 사람 등이 보이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주민들도 있다.

회벽을 바른 1층짜리 주민 집들은 일자로 몇 개씩 붙어 있고, 미루나무 등이 군데군데 서 있어 우리나라 1970년대 시골풍경 그대로다. 바다에는 촘촘히 나무를 박아 보트 등을 댈 수 없게 했다. 아마도 탈북 방지시설인 듯했다. 철조망이 늘어선 옆으로는 초소가 하나씩 붙어 있어 더했다.

사실 2012년됐다. 대룡리의 한 구멍가게 건물 옥상에서 속옷 차림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발각돼 9월 9일 경찰에 신고 됐다. 당시 그는 북한 주민이라고 주장했지만 파출소 근무자들은 노숙인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걸로 알고 수 시간 방치했다가 군 당국에 인계됐다.

2013년 8월 23일 북한 주민 1명(46)이 교동도 해안에 맨몸으로 귀순해와 새벽 3시40분께 교동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그는 교동도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불빛이 있는 민가로 달려가 문을 두드려 집주인을 깨운 뒤 “북에서 왔다”고 신분을 밝혔다. 집주인은 인근 해병대에 이 사실을 알렸고, 해병대의 5분 대기조가 출동해 신병을 확보했다. 그가 넘어온 해안은 우리 주민들의 어업지역으로 고정된 경계 초소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8월 14일 새벽 4시에는 북한 주민 2명이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로 헤엄쳐 넘어와 귀순의사를 밝혔다. 20대와 50대 부자지간으로 알려진 이들은 교동도로 헤엄쳐 왔다가 해병대 초병들에게 발견돼 “살려 달라, 귀순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2017년 8월 11일 새벽 1시경 20대 북한 남성이 서해 교동도로 넘어와 귀순했다. 부유물에 의지한 채 바다를 헤엄친 이 남성은 경계근무 중이던 해병대 초병이 열상감시장비(TOD)로 귀순자를 발견해 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망향대를 나와 교동정미소로 갔다. 섬쌀 고시히카리가 밥맛 좋다는 소리에 구매 차 들렀다. 기계가 돌아가지 않아 물어봤더니 정미소는 오늘 휴무라면서 걸걸한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였다. 평상에 놓인 망원경이 눈에 띄어 물어봤더니 연백을 보기 위해서란다.

사실 교동도는 전 지역이 민통선 및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또 어로한계선으로 조업도 제한된다. 면적은 47.12㎢, 인구는 2957명이고, 세대수는 1489세대여서 대부분 연로한 어르신 두 분 씩 사신다.

2014년 6월에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실향민과 관광객들이 제법 찾는 곳이 됐다. 교동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녀가는 곳은 대룡시장이다. 골목마다 제비들이 있어 보는 사람들마다 함박웃음을 짓는다. 요즘 ‘인절미’의 이북식 이름인 ‘강아지떡’과 꽈배기, 강정, 호떡 등이 이 골목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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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02 [16:2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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