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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의 인권기록은 내 생애 최대의 사명이다”
북한인권박물관 추진하는 ‘북한인권정보센터’ 윤 여 상 대표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11/07 [11:23]

2016년 3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었다. 2005년 김문수 의원이 최초 발의한 때로부터 11년이 지나서이다. 미국(2004년), 일본(2006년)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졌던 국민들과 북한인권운동가들이다.

북한주민들은 수령에 대한 비판은커녕 당국에 대한 불평조차 못한다. 직업은 당국에서 지정해준 것만 갖고 평생토록 정치조직 생활을 한다. 외국은 고사하고 국내를 유동하려도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군사복무는 10년 이상이다.

이런 비정상의 사회서 살던 탈북민들이기에 남한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누구보다 반기는 것이다. 고향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는 부모형제들을 참 사람답게 살도록 법적으로 비판하고 기록하는 법인데 이것을 누가 반대하겠는가.

북한은 분명 대한민국의 한 부분이고 비정상적인 집단이다. 통일이 되는 날까지, 그 이후에도 역사에 분명히 기록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하고 있는 ‘북한인권정보센터’를 찾아 윤여상 소장을 만났다.

▶북한인권법 시행 4년이 지났다.

2016년 9월 4일 시행에 들어간 북한인권법은 북한주민의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해 북한인권기록센터,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및 북한인권재단 설치·운영이 핵심이다. 북한인권기록센터는 향후 북한집권층의 인권범죄에 대해 처벌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탈북민 등을 대상으로 북한당국의 인권범죄를 체계적으로 조사·기록한다.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출범하는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주민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친다. 북한주민의 인권실태 평가, 인권대화 추진, 북한주민 인도적 지원, 시민사회단체(비영리민간) 지원 등이 목적이다.

▶북한인권재단 출범도 못했다.

2016년 3월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6개월 뒤인 9월에 시행을 앞두고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재단 이사진은 여야 추천 각각 5명에 통일부장관 추천 2명으로 구성된다. 정치권의 비협조적 태도로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지 못한 형국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2017년 5월 정권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으니 지금은 출범 희망이 거의 없다.

▶정치권의 비협조적 태도를 어떻게 보나.

사실 역대 어느 정부도 북한주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진심으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통일보다는 분단관리 및 평화유지만 신경을 썼지 우리의 동포인 북한주민들의 고통, 생명을 잃어가는 피해자들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거기에 남한은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장관도 길어야 1~2년이다. 그러니 누가 주인 된 마음으로 일하겠는가. 남한의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 확장이나 예산확보에 신경을 쓰지 그 외에는 무관심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를 소개해 달라.

2003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북한의 인권개선과 북한인권침해(과거사) 청산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침해 실태조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운영을 통한 북한인권침해 기록 DB구축 및 관리, 북한인권 침해구제 및 예방, 인권 피해자 보호와 정착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3년 설립…북 인권개선과 인권침해

청산을 주요 목표로 실태조사, 인권기록

보존소 운영을 통한 인권침해 DB구축

피해자 보호와 정착지원을 위해 노력

 

▶센터 연혁은 어떻게 되는가.

센터는 북한인권기록(북한인권기록보존소)과 인권피해자 구제 및 지원(NKDB 정착지원본부), 대내외 교육(남북사회통합교육원) 및 출판(북한인권정보센터 출판사), 그리고 특정 인권문제에 대한 집중적 감시(북한8대 감시기구) 활동을 한다.

2005년에 NKDB 정착지원 본부 및 NK Social Research 개설, 2007년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개설 및 북한인권백서 등을 출판했다. 2008년에는 귀환 국군포로, 납북자 정착지원센터를 개설했고 이듬해에는 북한인권 시민교육방송을 실시했다.

2011년에는 북한인권 아카데미, 2013년에는 외국인(서울 주재 외교관 및 외신기자 등) 대상 북한인권실태 영문정례브리핑을 시작했다. 2015년에는 통일외교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2016년에는 심리상담 아카데미, 남북사회통합교육원을 열었고 이듬해는 통일사회복지 아카데미, 작년에는 남북동행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남북동행아카데미는.

남북한 출신이 동비율로 참여하고, 강의는 주로 고위 탈북인사들이 한다. 남북사회통합교육원 기존 4개 아카데미와 다른 점은 공개모집을 않고, 기존 아카데미 수료생을 대상으로 수강생과 이사진, 연구원들의 추천으로 대상을 선발한다. 고위 탈북인사들이 북한과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를 생동하게 들려주는 교육인데 나름 참석자들의 반응이 좋다. 아무래도 많은 대북전문가들의 강의보다 실제로 북한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탈북민이 하는 강의는 교육적으로 신뢰성을 많이 주는 것 같다.

▶북한인권정보는 기록이 생명이겠다.

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피해사건을 조사·분석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보관 축적하는 것이 주요업무다. 또 자료를 백서형태로 발간, 단행본 출간, 세미나를 통해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정책제안도 한다.

우리 센터가 그동안 북한, 해외, 국내 등에서 북한 관련 자료, 논문, 단행본, 잡지 등을 수집하고, 피해자에 대한 직접 대면 조사를 해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 것만 해도 12만 건 규모이다. 북한인권 관련도서 5.000여권의 자료를 갖고 있으며 이중 10% 가량이 탈북민 및 방북자들이 쓴 저서이다. 분단 이후 북한인권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모든 접근 가능한 문헌들을 집중적으로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올해까지 13번째 백서를 통해 전체 사건규모 73.723건, 전체 인물규모 45.616명을 포함해 총 12만여 건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했다. 북한인권 관련 최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화인 셈이다.

이는 동독 내 인권침해 실태를 기록한 서독의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가 1961년부터 30여 년간 기록 보유한 41.390건을 훨씬 능가하는 수치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내 어느 대학에도 이만한 북한자료는 없을 것이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피해사건을 조사·분석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보관 축적이 주요업무

자료를 백서형태로 발간, 단행본 출간 등

인권개선을 위한 정책제안도 하고 있어

 

▶신뢰성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인권 침해기록의 80.3%는 직접 목격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공돼 정보와 신뢰성 면에서 상당히 높다. 기록은 남한 내 3만여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조사와 중국 등 제3국의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한 현지조사로 이뤄졌다.

북한인권 실태조사, 백서발간, 정책제안 등을 통해 국내와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실상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이를 통해 국제공조에 의한 유엔인권 결의안 채택,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서울사무소의 설치 등 많은 성과를 냈다.

▶특별히 추진하는 사업이 있나?

북한인권박물관 건립 추진이다. 지난 2018년 초 서울에서 이재춘 전 러시아 한국대사를 위원장으로 ‘북한인권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다. 1년 정도 꾸준한 준비결과 이뤄진 결실이다. 매달 한 차례씩 추진위원회위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북한인권박물관 건립 추진과 관련한 준비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히 북한인권박물관 건립 추진 중

2018년 초 서울에서 이재춘 전 러시아

한국대사 위원장으로 ‘북한인권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1년간 준비

 

▶구상 중인 북한인권박물관은 어떤 것인가.

미국, 독일, 영국 등에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기록한 홀로코스트박물관이 있다. 과거는 기록의 역사이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북한정권의 70여년 역사는 독재집단에 의해 주민들에 대한 인권범죄가 난무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하며 이왕이면 정리된 홀로코스트와는 다른 살아 움직이는 인권기록 종합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규모는 4~5층짜리 단독 건물로 연 1.000평 이상의 규모이면 좋겠다. 이 안에 북한인권 기록실, 전시실, 교육장, 공연장, 도서관, 회의장, 기자회견장 등이 있는 ‘북한인권박물관’이다. 여기서 북한인권 관련 국내 및 국제행사를 종합적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이며, 북한인권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멋진 계획인 것 같다.

북한인권박물관은 일반적 박물관과는 다르게 현재 진행되고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통합하여 새로운 용어로 만들어진 라키비움(Lachiveum)으로 건설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북한인권 라키비움(Lachiveum)은 접근성을 고려하여 서울에 설립하고자 한다.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부처가 서울에 있고 탈북민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북한인권 라키비움(Lachiveum) 건립은 많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는 디지털(사이버) 북한인권 라키비움 개발을 우선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 10월안에는 오픈할 계획이다.

 

박물관 규모는 4~5층짜리 단독 건물로

연 1.000평 이상의 규모로 인권 기록실

전시실, 교육장, 공연장, 도서관, 회의장

기자회견장 등 구비…인권 관련 국내

국제행사 종합적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계획

 

▶비욘드더바운더리가 궁금하다.

작년 11월에 발족하고 올해 3월 통일부에 등록 후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내가 운영위원장인 단체이다.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한 개인 및 단체가 한 공간에 모이는 클러스터를 구축함으로써 각 팀의 조기 목표 달성과 공동과업 진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절과 경계를 극복하려는 단체 활동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와는 별개의 단체로 운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서울 명동 근처에 있는 빌딩 2개 층을 비욘드더바운더리 사업장으로 쓴다. 현재 13개 단체가 입주해있으며 입주 단체들은 무료로 공간을 사용한다. 현재 절반이 탈북민 관련 단체이다. 한 단체가 차지하는 공간은 테이블과 의자 4개를 상한선으로 정해놓고 있다. 청년들의 신규 단체설립을 지원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원 4명 이상 되면 별도로 독립하라는 의미이다.

심의위원회의 꼼꼼한 심사를 거쳐 1년 계약으로 입주하며, 하자가 없는 이상 재연장이 가능하다. 전체 공간의 60% 정도의 자리는 이미 찼다. 사무실 관리 비용은 100%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자신을 소개한다면.

1966년 12월 전라북도 무주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은 대구에서 보냈으며,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통일부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 통일융합법무전공 교수, 민주평통 상임위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자문위원,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전문위원,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직함을 갖고 사회활동에 참여한다.

▶주요 관심분야는 어떤 부분인가.

하는 일이 이 분야이다 보니 당연히 북한주민들의 인권, 자유를 찾아 온 탈북민,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이다. 분단의 희생자인 이산가족, 월북자, 비전향장기수 등 남북을 오고간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기록을 주 업으로 하고 있다. 통일을 위해 북한주민들의 인권기록 만큼은 내 생애 최대의 사명으로 간주하고 산다.

▶가족에 북한 연고자가 있는가.

전혀 없다. 이 분야에서 장장 20여년 일하고 있으니 간혹 뭇사람들이 “혹시 부모님이 실향민이 아니신가요?” 라고 물어보는 분들도 간혹 있다. 가문에 전혀 이북 출신 사람이 없는 오리지널 남한 태생이고 출신이다. 대학 때부터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공부했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북한의 정치를 더 관심 있게 연구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나 마찬가지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듣지 않겠지만 그래도 현 정부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통일애국 활동을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방해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통일 후 2천만 주민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했고 역사에 상세히 기록해두었다”고 당당히 말할 것이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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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7 [11:23]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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