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편집 2020.06.04 [07:04]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 찾기
정치  경제  군사/외교  사회/NGO  탈북민  인터뷰  통일교육  오피니언  북한풍물기
인터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탈북민 역사 첫 개인무용 발표…3천명 전통무용 제자양성이 꿈”
[인터뷰] 최신아무용연구소 운영하는 탈북민 최신아 원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19/12/05 [11:41]

탈북민이 남한에서 개인무용 발표회를 진행한 것은 66년 탈북민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유명 예술인 등 100여 명의 관객이 참가한 행사인데 황홀하고 멋진 공연이었다.

  © 통일신문

공연에는 평양 모란봉의 아름다움과 북한의 경쾌함을 빠른 톤으로 무대에 선보인 평양장고 춤(독무)’쟁강’, 남북의 평화를 바라는 춤사위를 엮어 만든 서울아리랑부채춤’, 한국의 풍경을 사계절로 만든 아 대한민국등 모두 5종목이 무대에 올랐다.

황홀한 공연을 보며 고향 생각도 났다. 개인이 운영하는 예술단체가 없는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민속적이고 전통적인 예술이 국가적 차원에서 잘 보존되고 있다. 북한의 예술분야는 한때 최고지도자(김정일)의 관심분야 이었기에 다른 부분보다 좀 더 국가적인 집중관심 대상이었다. 물론 예술인들도 말이다.

거기에 비하면 이곳 남한에서 전통예술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과 북이 이념과 체제를 떠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예술을 이어가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최신아무용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최신아 원장을 만났다.

 

함경북도 예술단 규모는 어떤가?

인원은 단장부터 식당요리사까지 모두 200여명 정도이다. 전용극장은 500석 규모의 함경북도예술극장이다. 성악, 기악, 무용, 화술 등 각 분야 배우가 190명가량이고 나머지는 행정, 기술, 보조 등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이다.

극장에서 공연은 주로 김일성 생일(415), 김정일 생일(216), 당창건기념일(1010), 공화국창건기념일(99) 등 국가적 명절에 진행한다. 그 외에는 함경북도 안의 여러 단위에로 현장 이동공연을 나간다.

연중 특별한 공연이 있는데 해마다 김일성 생일 혹은 김정일 생일에 맞춰 평양에서 진행하는 전국예술인들의 종합공연이다. 인민문화궁전, 평양대극장, 청년중앙문화회관 등 평양의 대형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린다. 참가 단위는 지방의 8개 도()예술단과 철도성, 보건성, 무역성 등 중앙기관 예술단체 등 모두 14~16개의 전문예술단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전국예술인들의 종합공연참가 연습은 평양에 모여 6개월 전부터 진행한다. 보통 하루 8시간 이상의 연습을 한다. 3개월 전에는 각 예술단에서 출품한 작품으로 경합을 한다. 여기서 당선된 종목만 남고 나머지 종목의 출연자는 자기 단위로 돌아간다. 당선된 종목은 3개월간 연습 끝에 본 무대에 오르게 된다.

예술인들은 2일 생활총화를 한다는데.

1970년대 초반에 생긴 풍경이다.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매주 토요일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특정일마다 진행하는 생활총화는 말 그대로 자신의 생활에서 있었던 정신적 변질성과 사상적 확실성을 검증하고 총화 짓는 행위이다.

당시 김정일이 중앙당에서 예술분야를 전문 담당했던 시기이다. 그가 조선영화촬영소를 현지지도 하면서 나이 많은 원로들을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도입한 예술인 2일 생활총화 제도이다. 독재정치에 필요했다.

2일 생활총화 괴롭지 않았나.

왜 안 그렇겠나? 허나 당에서 만든 정책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거기에 불만을 표시하지 못한다. 예술인들이 시대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며 그중 서양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으니 2일에 한 번씩 혹독한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2일 생활총화의 기본핵심은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다. 공민의 의무처럼 진행되는 수령의 사진청소를 깜빡하고 못해도 양심적으로 고백해야 하며 심지어 회의에서 특정인이 진정성 없이 토론해도 그것마저 비판해야 한다.

 

조선영화촬영소를 현지지도 하면서

나이 많은 원로들을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도입한 예술인 2

생활총화 제도는 독재정치에 필요

 

배우도 등급이 있는가?

있다. 1급은 인민배우, 2급은 공훈배우, 3급은 경력(고참) 배우이며 4, 5, 6급까지 있다. 예술단에 처음 입직하면 무급배우로 시작해 3년 뒤 시험을 보고 6급을 취득할 수 있다. 매 급수 시험은 2년에 한 번씩 이론·실기 시험을 보며 점수가 낮으면 등급이 오르지 못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으로 배우생활을 한다.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는 1년에 한 번씩 고급옷감이나 의류, 분기마다 고급화장품 등을 공급 받는다. 매달 식용유, 돼지고기, 수산물 등을 풍족히는 아니지만 일정 분량씩 특히 무용수들에 한에서는 매주 오리고기 2회 이상 배급 받았다. 또한 연습 도중 휴식시간에 사탕, 과자, 빵 등 간식이 나왔다. 1980년대 기준으로 말이다. 1990년대 들어서며 이러한 공급이 모두 없어지고 무엇이든 자체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했다.

예술인들이 받는 특별한 교육도 있나?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하던 김일성과 김정일을 임의의 시각에 모시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충성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상준비에서 완벽해야 한다. 참고로 예술대학 입학 때부터 신분확인은 엄청 까다롭다.

실제로 1985년도 김일성이 호요방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함께 청진을 방문했을 때 청진예술대학 학생인 나는 1호 행사에 참가하여 공연했다. 그때 무용연습을 한 달간 했고 행사장의 김일성을 3m 앞에서 뵐 때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제 부모 생일은 몰라도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은 다 안다. 수령을 부모보다 더 훌륭한 위인으로 알고 평생토록 흠모하며 사는 주민들이다.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인민의 어버이를 몸 가까이에서 봤으니 나뿐 아니라 어느 사람도 마찬가지로 흥분했을 거다.

또 다른 1호 행사에 참석했었나.

19897월 평양에서 있은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다. 88서울올림픽에 자존심이 상한 북한당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13차 청년학생축전은 일주일간 평양에서 진행된 국제행사로 북한 역사상 가장 많은 2만 여 외국인이 참여했다.

그해 3월에 평양으로 올라가 4개월간 일요일 하루 휴식, 매일 8~10시간 씩 강도 높은 연습훈련을 하여 진행한 축전 개막공연이다. 개막식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함께 입장하였고 개막식과 공연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예술대학 입학 때부터 신분확인 까다로워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하는 세상에서가장

위대하신 인민의 어버이를 몸 가까이에서

보면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흥분했을 것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막식 30일 앞둔 6월 한 달 훈련이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연습훈련 장소는 청년야외극장 마당, 김일성경기장 앞마당, 모란봉극장 마당 등에서 진행되었는데 여름철이다 보니 더운 날씨인 낮 시간대를 피해 야간에 하였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방송차에서 나오는 음악선율과 구령에 따라 진행되었다. 숙소는 평양대동교 사거리에 있는 예술인여관이었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697월 평양에서 태어났고 형제는 6남매 중 막내였다. 부모님은 유명한 예술인부부이었고 아버지의 직무조정 차 19829월 청진으로 이사를 했다. 19858월 청진예술대학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함경북도예술단 무용배우로 배치 받아 활동하였다. 인민학교 1학년 때는 배구를 했고 4학년부터 시작한 무용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예술단에서 무용수로 근무한 것은 나만의 행운이고 자랑이었다.

 

부모님은 유명한 예술인부부19858

청진예술대학 무용학과 졸업, 함북예술단

무용배우로 배치 받아 활동, 전문예술단서

무용수로 근무한 것은 나의 행운이고 자랑

 

탈북경위를 말해 줄 수 있나?

20087, 6개월 유효기간의 북한 공식여권을 갖고 중국(연길)으로 친척방문을 나왔다. 중국에 나와 보니 세상은 너무나 다르구나! 내가 우물 안에 살았네하고 느꼈다. 처음 한 달간은 개인무용 강사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이후 식당서빙을 하였다. 6개월간 중국에서 자유와 풍요로운 생활의 맛을 보았기에 북한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신분이 친척방문자에서 탈북자로 바뀌었고 살벌한 공안단속에 위험을 느껴 201111월 한국으로 왔다.

최신아예술단 언제 창단하였는가.

처음 사회에 나와서 건강도 좋지 않아 몇 년은 휴식하였다. 물론 남편이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다 주었기에 두 자녀를 데리고 주부로 사는데 별 어려움 없었다. 그러다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녀 때 그리고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많이 하였던 전통무용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201511월 서울에서 최신아예술단을 창단, 회원은 6명으로 시작했다. 모두 남한 출신의 무용전공자들이다.

 

201511월 서울서 최신아예술단창단

모두 남한출신 무용전공자 6명으로 시작

현재 19명의 회원들 중에 3명이 외국인

 

서울지방경찰청 주최 탈북민 설맞이 행사

초대공연, 국악방송개국 15주년기념 공연

최신아예술단과 함께 문화여행경기도

문화재단 나눔 사업을 3회에 걸쳐 진행

 

회원들 중에 외국인도 있던데.

현재 19명의 회원 중에 3명이 외국인이다. 이들은 순수 영상으로 최신아 무용을 보고 나도 꼭 최신아 같은 무용수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에게는 보다 더 세심한 교육으로 가르친다. 외국에서 우리 한국의 전통춤을 춘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최신아무용연구소도 있는데.

무용연구소는 올해 1월에 설립하였다. 우리 예술단의 배우들과 또 내가 개인적으로 양성한 제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나한데서 무용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둥절했고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무용연구소(무용학원)를 갖추게 되었다.

그동안 어떤 공연을 하였는가.

20161월 서울지방경찰청 주최 탈북민 설맞이 행사에 초대공연을 했다. 3월 국악방송 개국 15주년 기념행사에서 공연했고 5월에는 최신아예술단과 함께하는 문화여행-경기도 문화재단 나눔 사업을 3회에 걸쳐 진행했다.

20176월에는 서울서초문화회관에서 윤봉길 의사 탄신 109주년 추모음악회를 진행했다. 그해 12월에는 강원도 홍천사회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공연을 펼치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도 해마다 진행하고 있다.

연혁을 더 소개해준다면.

20184월에는 부산국립국악원에서 해외한민족예술인들의 초청공연을, 8월에는 국립남도국립국악원 금요국악공감 남북의 울림, 12월에는 인도의 찬디가르, 뉴델리, 델리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전통공연을 펼치었다.

20194월에는 3·1절 독립선언 추념공연 아 대한민국, 장고춤을 선보였고 8월에는 세계한민족 공연예술축제 쟁강춤을 진행하였다. 9월에는 평창올림픽 1주년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특별공연을 진행하였다.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남편이다. 최신아예술단은 초기 여의도에 있다가 3년 전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작년 말 경에 내부사정에 의해 새로 이곳 영등포로 사무실을 얻어 옮겼다. 이 연습실을 꾸리는데 남편이 솔선수범이 되어 수고를 해주었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지방공연을 다닐 때도 항상 운전을 해주고 내가 늦게 퇴근해서 들어가는 집에서 두 자녀를 잘 돌봐주니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도 항상 응원해주고 있으니 든든한 동반자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년에는 최신아예술단최신아무용연구소를 지금의 2배로 키울 계획이다. 대한민국에 와서 지금까지 내가 가르쳐준 제자가 20명 가까이 된다.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3,000명의 제자를 키워내는 것이 나의 숙원사업이다. 그들이 한국과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이다.                                               림일 객원기자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9/12/05 [11:41]  최종편집: ⓒ 통일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
배너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회사소개 한국통일교육학회 기사제보 보도자료
(140-806)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85-3 남영빌딩 201호
(주)통일신문(TEL:02-701-8347 FAX:02-701-8345)
Copyright ⓒ 2007 unityinfo.co.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