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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국민이 알아야 할 에버-레디EVER-ready 작전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2/06 [11:35]

<이중희 포천문화원 부원장>

에버-레디작전은 6.25전쟁 중이던 19535월 유엔군사령부가 극비리에 수립한 작전계획이다. 북한 공격 작전이나 중공군 격파 작전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를 붕괴시키고 이승만 대통령을 연금시켜 버리려는 쿠데타 작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피눈물 나는 대미투쟁과 파국 직전의 한·미 갈등에 미국은이승만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1951년 시작된 휴전회담을 한국은 도저히 받아 드릴 수가 없었다.

국토와 국민이 결단 났고 통일 없이 분단된다는 것은 새로운 민족의 시련의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5만 명 이상의 미군 인명손실에 대한 미국 내 여론 악화와 막대한 전쟁비용 때문에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대로 휴전이 이뤄지면 미군은 한국을 떠날 것이고, 고립된 섬으로 남는 한국이 북한, 중국, 소련에 둘러 싸여 그들에 의해 적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아니더라도 일본 세력권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전쟁에서 벗어나려고 그런 걸 염려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대한민국을 살리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535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이승만 대() 미국의 살벌한 갈등은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이승만 대통령만이 실현 할 수 있는 목숨을 건 결단이라 하겠다.

19533월 소련의 스탈린이 죽자 휴전회담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422일 중공군의 북한 주둔을 허용하는 휴전협정이 맺어지면 한국군은 유엔군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공산군과 싸울 것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클라크 주한 유엔군 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을 보호 감금하고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미국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미 국무부까지 동조, 5월 이승만 대통령을 연금시키는 에버-레디 작전이 수립됐다. 전시 임에도 전쟁 최고 지휘관인 백선엽 장군을 미국에 초청하여 이승만 제거를 검토하는 거사를 모색하고 대안으로 만들려 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백선엽에게서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의 이승만의 힘을 깨닫고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전쟁을 할 수 있는 휘발유가 단 2일치 밖에 없어서 독자 전쟁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독자 전쟁을 선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한·미 동맹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공산 세력과 일본의 재침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선 자원도 없는 약소국인 한국과의 동맹은 불필요하다는 견해가 다수였다. 한국은 미국에겐 아무 가치 없는 나라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이 미국을 동맹으로 만들려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게 너 죽고 나 죽자하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무부, 국방부, 합참의 합동회의에서 격론이 이어졌고, 530일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는 6.25전쟁을 중단 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에버-레디작전은 폐기됐고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날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 동맹을 맺으면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동맹이 아니라, 미 정부의 한국 방어성명과 군사지원 행정 협정을 맺자고 했다. 10억 달러 경제원조도 제시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동맹이 아니면 미군을 붙잡아둘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가운데 68일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 송환 문제가 타결됐다.

·미 동맹은 이루지 못 했는데 휴전이 목전에 온 것이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61835천여 명의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려 휴전협정을 무산시켜 버리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다음 날 주한 미 대사에게 이것이 자살 행위라 해도 그것은 우리의 특권이다라고 했다. ·미 동맹 없이 휴전이 되면 자살도 불사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결의였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등 핵심인사가 모두 모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노발대발하며 이승만은 친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적정신 착란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도 아이젠하워에게 편지를 보내 ·미 동맹 없이 휴전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사형 집행장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79, 휴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한·미동맹조약 초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미국은 이승만이 어떤 행동이라도 할 수 있는 두려운 인물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한·미 방위조약을 맺을 특사를 한국에 파견해야 했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1953727일 휴전이 성립됐고, 88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장관이 동맹조약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남한은 주변 3대 강국의 한반도에 대한 장구한 지배 욕망을 좌절시킬 수 있었다. 즉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북한 방어를 넘어 소련, 중국, 일본을 막아내는 4중장치가 된 것이다. 한국은 세계최강대국 미국을 활용해 3강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사적 전환을 이뤄 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생명줄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없애자는 자들이 있다, 어떠한 자들인지 기억해 두어야 한다. 염려스럽다. 진정한 민주화세력은 장기집권과 독재라면 몸서리를 친다. 그래서 많은 희생과 투쟁으로 군사독재를 물리친 것이다. 그러니 북한의 3대 세습독재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친일파 척결을 못한 과가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고 이 나라에 끼친 공로는 너무 크고 위대했다.

한강의 기적은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인 한·미 동맹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고, 발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은 한·미 동맹사를 알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평가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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