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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토끼풀 소녀 죽음 되풀이 되지 않기를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4/01 [13:56]

<송두록 남북교육개발원 서울사무소장>

10년 전, 아무리 감수성이 둔한 사람도 북한의 토끼풀 소녀 향란이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었다. 봉두난발에 헤지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누더기 옷을 걸친 23세 북한 처녀 향란이는 토끼풀 매서 뭐하니?’라는 어느 기자의 물음에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먹으려고요.’라고 했다. 그런지 몇 개월 후, 향란이는 동네 옥수수 밭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지나는 봄바람 소리에도 까르르 웃고 한창 멋 부리면서 활기차게 세상을 돌아다닐 나이에 향란이는 그렇게 갔다. 한동안 멍했다.

사람이 우선인 주체사상의 왕국에서 평범한 장삼이사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주체 중의 주체인 소위 북한 간부들이 이렇게 해라고 하면 이렇게 해야 했고 저렇게 하지라면 또 그렇게 해야 했다. 향란이도 그런 순진한 사람중 하나였을 뿐이다.

극심한 유엔 대북 제재 하에서 마이너스 경제로 근근이 살아가던 북한이 작년에 풍작과 제재 우회 거래에 힘입어 약간 숨통을 트는 듯하더니 정초부터 코로나19를 맞아서 맥을 못 추고 있다. 늘어나던 해외 관광 수입도 국경 봉쇄로 중단됐다.

·중간에 이뤄지던 공식 무역과 함께 보따리상이나 밀무역에 의한 상품 공급이 중단되고 북한 내부에서의 이동도 통제되면서 쌀과 경유 등 생필품 값이 급등하고 있다.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쌀 생산량이 136만 톤으로 26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고난은 홀로 오지 않는 법인지, 엎친데 덮치는 형국의 북한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대체로 그렇다. 특정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 공동체 구성원 중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먼저 희생된다. 보통 그 사람들은 공동체에 순응하던 순진한 사람들이고, 소위 법 없이 산다는 사람들이다.

그들 장삼이사들은 마치 10년 전 옥수수 밭에서 숨져간 향란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에 의해 결정되어 휘몰아쳐 오는 인재(人災)의 칼날에 어처구니없이 당하고 만다.

북한의 순진한 사람들이 또다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에 몰리고 있다. 10년 전에는 굶어 죽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면, 요즘에는 더해서 역병에 걸려 죽느냐 마느냐라는 지옥불에 던져질 상황이다. 북한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과 경제난 때문에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있는데다가 의약품과 의료 설비가 부족해서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그런데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치명적인 전염률을 가진, 그것도 3,500리에 걸쳐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로 이웃 나라에서 넘어오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 나가 있던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 10 여 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1222일까지 강제 귀국했다. 그 중 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노동자가 최소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게 보통 일인가.

그런 북한이 최근 자신들의 의료 규정에 따라 30일 이상 격리해오던 의학적 감시 대상자들을 8,000 여 명이나 격리 해제시켰다. 그러면서 지난 17일에는 평양 군중들을 모아놓고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을 했고, 다가오는 410일에는 무려 700명 가까이 모이는 최고인민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한다고 소집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발표한 의학적 감시 대상자수에 북·중 국경을 접하면서 밀무역이 성행하는 자강도와 양강도, 그리고 함경북도의 통계가 빠져 있다. 진단 키트가 없어서 그 지역 사람들에 대한 감염 검사가 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은 무증상 전염 등 전염성이 강하다. WHO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해 1명의 확진자가 2명 정도에게 옮긴다고 발표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대학과 중국 베이징대학의 연구에서는 3.77명에게 옮기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의 변종이 생기면 전염률과 치사율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 고위 간부들이 확진자 0’이라는 허구적인 과시욕에 집착해서 정책을 펼쳐 나갈 경우 중국과 국경을 접하는 북한 지역 곳곳에서 10년 전의 토끼풀 소녀가 다시 재현될 수 있겠다는 심각한 우려가 든다.

이번에 나타나게 될 제2, 3의 향란이는 엄마, 나 배고파요가 아니고 엄마, 나 아파요가 될 수 있을 따름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주체사상을 강조해 온 고위 간부들의 지혜로운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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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4/01 [13:56]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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