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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사장의 겸손…“탄탄한 기업 된 것은 믿고 따라준 직원들 덕분”
[인터뷰] 응축기제조전문 (주)씨케이정공 이옥화 대표이사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5/20 [14:51]

북한에도 여성기업인이 다소 있지만 대부분 상점, 백화점, 식당 등 서비스(봉사) 부문과 옷, 신발, 내복 등을 생산하는 경공업(피복 및 생활용품) 부문에서다. 또한 당에서 전체 인민이 본받을 귀감(모델)으로 내세우는 여성도 있다.

1980년대는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으로 식물학자 백설희()를 내세웠고 1990년대에는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장 정춘실()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인민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내세워 정춘실 운동을 벌렸다.

사회적 희소성의 가치를 띠는 여성기업인이나 귀감들은 언론과 대중 앞에서 똑같은 소리를 한다. 자기들을 키워준 노동당과 수령의 큰 은혜에 감사하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북한당국에서 이들을 체제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폐쇄사회에서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나온 35천 탈북민이고 80%가 여성이다. 그들 중에는 다양한 업종의 사업을 하는 기업인도 있다. 얼마 전 경기도 김포시에서 주식회사 씨케이정공 이옥화 대표를 만났다.

 

고향이 어디인가.

19768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14녀 중 셋째였다. 아버지는 회령역 철도선로반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19938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탄원했으나 온성군 OO농장에 배치 받았다.

우리학교에서 18, 다른 학교들에서도 수십 명의 졸업생이 여기로 왔다. 당국의 지시로 신설된 농장인데 산간오지의 지대에서 나무를 베고 새로운 농지를 만드는 것이다.

농장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준다면.

노동은 하루 12~14시간으로 겨울에는 톱으로 나무를 베고 봄에는 그 뿌리를 캐고 감자나 옥수수를 심을 밭으로 만드는 것이다. 식량은 통옥수수인데 양이 부족해 물을 많이 넣고 푹 끓여서 하루 1~2끼 먹으면 잘 먹는 것이다.

그런 짐승 같은 생활을 3개월간 하니 이건 정말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를 하다가 6개월 뒤 쯤 노동능력상실 진단을 받으려 유리가루를 먹었다. 일종의 자해소동이다. 이후 치료를 받고 그 농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어떤 일을 하였는가?

당국의 식량배급이 없으니 장사에 나섰다. 회령담배공장에서 나오는 담배를 리원군에 가서 팔아 7~8배의 이윤이 남겼고 황해도에서 소금을 구입해 회령에 갖고 와서 쌀을 바꾸었다. 그 쌀을 청진에 가서 옷으로 바꾸고 그 옷을 함흥에 가서 팔아 돈을 챙겼다. 그렇게 2년간 북한의 전 지역을 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북한에서 지역을 이동하는 장사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바로 철도이다. 그런데 승객 대부분이 무임승차자이다. 기차표와 기차는 한정이 되어 있고 철도를 이용하려는 수요자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열차의 지붕이며 차량 연결부분 등에 사람들이 가득 매달려있다. 달리는 열차에서 부주의, 기력부족으로 떨어져 기차 바퀴에 깔려 죽는 사고는 다반사다. 너무 흔한 일로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북한지역을 이동하는 장사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철도인데 승객 대부분 무임승차

기차표와 기차는 한정이 되어 있고 철도를

이용하려는 수요자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열차지붕 차량 연결부분에

사람들이 가득 매달려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져 기차바퀴에 깔려 죽는 사고는 다반사

 

철도주변 묘지 이장은 무슨 소리인가.

1990년대 초반, 김정일이 전국 철도주변의 묘지를 전부 이장하라고 지시했다. 이유는 열차를 타고 현지지도 다니는 수령님(김일성)에게 안 좋은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철도선로반에 근무한 아버지가 묘지이동 작업을 많이 했다. 말이 이장이지 실제는 봉분(무덤)을 삽으로 밀어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의 지시이니 사람들은 조상의 무덤이 파손되는 잔인한 변괴에도 아무 말 못했다.

장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있었나.

장사꾼들은 대부분 돈을 갖고 다닌다. 199512월 함흥에서 현금(2만원)을 몸에 숨기고 회령으로 가는데 열차안전원(경찰)에게 단속되었다. 이유는 무임승차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차표가 없으면 무임승차를 할 수 밖에 없다.

철도안전원이 거의 협박으로 돈을 내놓겠느냐? 아니면 노동교화소에 가겠냐?”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졌던 돈을 전부 압수당했다. 정말 분노했다. 나라에서 식량배급은 안 주고 장사도 마음대로 못하니 말이다.

 

함흥에서 현금(2만원)을 몸에 숨기고

회령으로 가는데 열차안전원에게 단속

이유는 무임승차 때문으로 돈이 있어도

차표가 없으면 무임승차 할 수밖에 없어

억울했지만 가졌던 돈을 모두 압수당해

 

집으로 왔을 때 환경은 어떠했나.

우리 동네에서 여러 자살가족이 나왔다. 최대 8명의 대식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맛있게 차린 음식을 먹는데 그 속에는 쥐약이 풀어져 있다. 그걸 먹은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입에 흰 거품 물고 죽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온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고 텅 빈 집만 남았고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졸도 후 다음날 정신을 차렸다. 돈도 식량도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매일 끈으로 허리와 복부를 꽁꽁 묶어 버렸다. 그러면 배가 고픈 줄 모른다. 그렇게 맹물로 18일간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령의 우리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에 두만강이고 중국 땅이다. 19961월 초, 어느 날 밤 너무나 배가 고파 불빛 밝은 어떤 곳을 향해 왔는데 그곳이 중국 마을이었다. 2월 중순 19살 나이에 동갑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이후 생활이 궁금하다.

20018월 공안에 단속되어 북송되었으며 온성감옥(노동교화소)에서 3개월간 취조 및 강제노동을 하였다. 너무나 매를 맞아 정신이 잃었을 때 간수들은 나를 죽은 줄로 알고 시체무지 속에 던졌다. 감옥에 근무하는 사촌오빠 친구가 부모에게 알려주었고 이후 집으로 가서 송장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적처럼 눈을 뜨며 숨을 쉬었고 감옥에서 고문과 영양실조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가 된 몸이었다

언제 다시 탈북하였는가?

중국에서 불법이지만 4년간 살며 체험했던 생활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어디나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 하루 일하면 수 십일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돈, 어디가나 먹을 것이 넘쳐나는 중국 대륙이 무척 그리웠다. 결국 사람답게 살고 싶어 200111월 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다시 탈북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길림에서 조선족한의사를 만나 1년간 무상치료를 받았다. 이후 연길에서 스포츠마사지 가게에서 1년간 일을 하였고 그 뒤 가게를 인수하여 4년간 영업을 했다. 악덕업주의 횡포에 못 이겨 결국 가게를 포기하고 한국행 길에 올랐다.

브로커가 소개해준 다른 탈북여성과 약 일주일간 내몽고 사막을 방황하던 끝에 몽골국경경비대의 단속 때 그들의 도움으로 한국대사관으로 안내 되었다. 200512월 꿈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왔으며 이듬해 5월 사회로 나왔다.

 

중국 연길에서 스포츠마사지 가게에서

1년간 일을 하고 그 뒤 가게를 인수해

4년간 영업악덕업주의 횡포에 못 이겨

결국 가게를 포기하고 한국행 길에 올라

 

사회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서울 강서구에 임대아파트를 배정 받고 직업전문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받았다. 어느 날 교수님이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경리직원으로 면접을 보지 않겠는가?” 하기에 귀가 솔깃했다. 감사하다고 답하고 찾아 간 곳이 김포시 대곶면에 위치한 제조업 단지에 있는 모 회사였다. 초행길이라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5시간 만에 도착한 나를 보고 회사 사장님이 정신이 대단하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어떤 회사인가?

·온수기, 냉장고에 사용되는 응축기 및 방열판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주식회사 씨케이. 직원 10명 안팎의 중소기업이다. 초면의 탈북여성인 저를 믿고 받아준 회사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이 강했다.

퇴근 후 컴퓨터, CAD, 장비운전 등을 배웠고 주임을 거쳐 이사가 되었으며 2009년 회사가 경영 악화로 부도위기를 맞았다. 이때 사장님이 나에게 탈북에 성공한 너라면 이 회사를 인수해 경영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많이 놀랐다. 내 나이 34살 때이다. 그것도 여성인 내가 남성들도 힘든 중소기업을 인수하여 경영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아무리 힘들어도 북송되어 감옥에서 고생하던 것보다 힘들겠나?” 하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부도회사를 인수했다.

자세히 말해준다면.

내가 그동안 월급으로 모아둔 돈과 몇몇 지인에게서 돈을 빌렸다. 그리고도 안 되었다. 당시 나는 두 개 회사의 경리 및 개발업무 일을 봐주던 인맥으로 여러 사장님들과 돈독한 신용거래 경력이 있었다. 그것이 재산이었다.

내가 모 사장에게 공장에 기계를 설치해주면 반드시 제품을 만들어 팔아 갚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사장님은 나에게 아무 담보도 없이 7억 원 상당의 기계를 설치해주었다. 2년 반 만에 기계 값 7억 원을 전부 갚았다.

힘들었던 순간도 많이 있었겠다.

보통 중소기업은 인건비 문제로 인해 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쓴다. 2014년 한 해에만도 내가 데리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노동안전 사고로 4명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그로인해 그해 보험료가 3배나 늘어났고 회사의 손실도 컸다. 후에 알고 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일하다 조금만 다쳐도 손해보상금이 나온다는 정보를 악용한 사례였다. 그런 악습이 이 분야에서 2년간 대유행되었고 이후 잠잠해졌다.

 

2009년 회사가 경영악화로 부도위기 맞아

사장님이 탈북에 성공한 너라면 이 회사를

인수해 경영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에

북송돼 감옥에서 고생하던 것보다 힘들겠나

하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부도회사를 인수

 

또 다른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여러 복잡한 사정으로 직원들의 급여를 제때에 못주는 경우가 있다. 그때 외국인 근로자들은 사장님 월급 안 주니 나빠요라는 글귀가 써진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다소 악덕업주로도 비쳐지는 순간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내 모습으로 그들을 이해시켰다. 항상 어려운 고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북한에서 고생했던 나날들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나날을 회고하면 오늘의 시련은 배부른 흥정이다.

그동안 받은 포상도 많던데.

2011년 경기도지사 표창을 시작으로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 공로상, 2014년 소상공인진흥공단이사장 표창, 2015년 대한민국 기업경영 대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대한민국 창조경영 대상을 수상했고 2017년 경기도 우수여성 대상, 2018년에는 소상공인 스마트비지니스 공로패를 받았다. 과분한 영광이다.

자신의 성공의 비결은 뭐라고 보나?

정직과 성실이라고 본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가. 경영이념이 투철했기에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제품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신념이 무엇보다 강했다. 모든 제품에 이옥화라는 이름의 자존심을 담았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시간을 내어 3개월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소통과 대인관계, 야외체험 활동, 의식혁신, 선진기업탐방 등 기업경영에 필요한 많은 공부를 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진행하는 ‘CEO 명품 아카데미도 수료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씨케이정공은 국제품질 경영 시스템인 ISO 9001 인증 및 벤처기업 인증을 획득하게 되었다. 응축기와 방열판 제조 분야에서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며 현재 15억 원의 연매출을 기록하는 우량 강소기업으로 성장되었다.

내가 잘 나서 회사가 탄탄한 기업으로 된 것은 아니다. 모두 나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의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품질 업그레이드와 차별화된 기술력 확보에 매진하면서 직원복지향상, 근무여건개선 등에 더욱 신경을 쓰려고 한다.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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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0 [14:51]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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