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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륙에 투자하는 기업은 통일비용 감축하는 일등공신”
[기획특집-만나고 싶었습니다] 前 남북민간경협교류회 김정태 회장
 
통일신문 기사입력  2020/07/30 [13:40]

통일신문에서는 보수·진보의 틀에 갇혀 실질적인 대안제시보다는 갑론을박에만 치중해 왔던 대북전문가나 학자들과는 달리 남북교류협력사에서 처음으로 합영회사 평양-안동대마방직을 설립한 원로 대북사업가이자 실물경제 전문가인 남북민간경협교류회 김정태 회장을 초청,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회장은 지난 9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내륙에 투자하는 기업은 통일비용을 감축하는 일등공신이라는 남다른 신념을 갖고 분단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새별총회사50:50의 지분으로 자본금 $3,000만의 합영회사를 평양에 설립했다. 남북경협의 실상과 문제점,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평화와 번영에 대한 사심 없는 고견을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과 전문가들은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라고 하면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평양 등 내륙에 진출한 대북사업보다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떠올리고 있다. 특히 북한 내륙에 진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통행·통신도 어렵고, 전력난·물류난·외화난으로 투자환경이 최악인 상황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은 갖은 고생을 하면서 평생 동안 일구어낸 자본금 $3,000만을 평양에 투자해 분단 사상 처음으로 합영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제가 설립한 ()안동대마방직은 천연섬유인 대마(大麻)를 소재로 하는 섬유업체로, 대마사(HEMP), 견사(SILK), 면사(COTTON)를 소재로 하여 고급직물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이다. 처음으로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6년 후반이었다.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로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때 평소부터 잘 알고 지내던 미국 시민권자인 김 프란시스신부님의 요청으로 국수나누기운동(북한의 탄광촌에 국수공장 설비와 밀가루를 지원하여 광부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던 사업)에 참여하면서 북한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중국 도문시의 두만강을 방문하면서 탈북 한 어린 꽃제비(당시 16)를 우연히 만나면서 평양진출의 동기를 갖게 되었다. 그 아이는 몇몇 꽃제비로부터 두만강을 건너가면 따뜻한 이밥(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밥 한 그릇이 먹고 싶어 무작정 고향(강원도의 한 농촌마을)을 떠나 14일간 산길을 걸어 두만강까지의 머나먼 길을 찾아왔었다.

그 아이는 우리와 같은 핏줄이었고, 사랑받을 자격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꽃제비가 되어 배고픔과 추위 등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이 아이와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그의 고통은 나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비록 작은 힘이기는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건전한 미래의 건설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 중국 비성시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고급기술을 중국보다는 동족인 북한에 전수해 주는 것이 한반도의 미래를 건설하는데 더 가치가 있는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북 진출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근인(根因)으로 작용하였다.

 

북 내륙에 진출 기업은 통행·통신도 어렵고

전력·물류·외화난으로 투자환경 최악인 상황

평생 일궈낸 자본금 $3,000만 평양에 투자

분단 사상 처음으로 합영회사설립 큰 기대

 

우연히 만난 한 탈북아이가 평양진출을 결심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엄밀하게 생각하면 기업의 해외투자나 사업 확장은 이윤창출이 가장 큰 목표다. 그렇다면 회장님께서는 연민과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충분한 사업성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북한에 진출한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북한에 진출 한 바 있는 재미동포나 재일동포 기업인의 성공사례는 거의 없었지만 나름대로 그들의 실패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그 원인을 충분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안동대마방직은 벤처기업으로서 40년간 섬유사업에 종사하면서 실질적인 노하우가 구축되어 있었다. 또 북한의 노동자들을 고급인력으로 육성시킬 수 있는 기술 인력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재를 재배할 수 있는 토지만 제공받을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도 천연섬유 소재산업은 농가에서는 특용작물 재배로 소득이 증대하고 생산 공장에서는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북한의 낙후된 섬유기술을 선진화하는 가운데 상품판매를 통해 막대한 외화도 획득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그런 결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력소재 중 한 품목인 견사(SILK)를 예로 든다면, 이미 북측에서는 연간 $2,000-3,000만에 달하는 상품을 수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지도와 양잠 생산증대만 지원해 주면 연간 $1억의 외화수입도 3년 이내에 충분하게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실크품목 하나만을 가지고도 개성공단 전체의 외화수입을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것이다.

 

노대통령은 ‘7.7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제정 등으로 분단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 국민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가운데 남북교류 시작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300여개 중소기업들 평양과 남포 중심

위탁가공사업에 합류3만여 명의 기능공 육성

제조업의 첫 남북합영회사는 북한권력 중심축인

평양에서 출발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가

 

회장님께서 대북진출을 모색하던 당시의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정치적인 여건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던 시기는 노태우 정부였다. 당시 노대통령은 ‘7.7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의 제정 등으로 분단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가운데 남북교류가 시작되었다. 199410월 북-제네바핵합의가 체결되자 김영삼 정부는 남북경협활성화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대우에서는 남포공단 건설 사업에, 삼성과 LG를 비롯한 3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평양과 남포를 중심으로 한 위탁가공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35천여 명에 이르는 기능공이 육성되었고 $15억 상당의 남북교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보고 이제야말로 남북경협의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 제조업의 대북진출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특히 제조업의 첫 남북합영회사는 북한권력의 중심축인 평양에서 출발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20081030평양대마방직의 준공식 사진과 김대중 대통령의 격려사 말씀을 보았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해외투자는 시작에서 준공까지의 기간이 1-2년이라고 알고 있다. 회장님께서는 “1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무려 99회나 방북하고 관련한 방북 연인원도 1,088명에 달했다고 했다. 북한에 제조업 1개사가 진출하는데, 이렇듯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엄청난 부대경비가 발생할 수 있는지 믿기가 어렵다. 앞으로 대북진출을 모색하는 기업인을 위해, 시작에서 준공까지의 과정이 듣고 싶다.

천연섬유 소재산업의 성공은 안정적인 원자재 생산지의 확보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만성적인 알곡부족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국가계획위원회로부터 재배 부지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농가의 수익증대를 위한 삼베의 2모작재배가 필수요건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우선 북한과 토질이 유사한 중국 두만강유역의 도문시 월청진270만 평 규모의 토지를 확보하고, 그곳에서 2년 만에 삼베의 2모작 시험재배를 성공리에 마쳤다.

이후 북한의 농업과학원 김인수 박사팀에게 수회에 걸쳐 기술자를 파견하여 대마종자와 비료 및 시험재배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무려 5년 동안 북한 내각을 대상으로 끈질기게 접촉하고 설득하자 마침내 합영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이 났고, 200311월 설립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30여년에 이르는 긴 세월동안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듣고 싶다.

일반적으로 섬유제조업의 창업은 부지확보, 공장건설, 기계설치, 상품생산 및 판매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금융자산을 충분한 확보하지 못하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경우는 공장건설에서부터 기계 설치까지 소요되는 거의 모든 자금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었으나, 내륙진출기업에 대해서는 지원 대책이 전무(全無)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측에 재배기술과 수확기술만을 자비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통일부 경협국장으로부터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그와 면담을 했다. 그로부터 대북투자자산의 50%를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언질을 받고 합영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500만이 투자될 때까지 통일부는 겨우 8억 원만 대출해 주고 처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대출을 빼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회장님과 같은 대북사업가가 북측과 협력 사업을 하면 당시 화해협력을 추구하던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 뿌리를 견고하게 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왜 정부가 그처럼 소극적으로 임했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럼 당시 대북경협사업에 관한 북측의 입장은 어떠했나?

노무현정부의 출범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대북지원등을 표방하면서 NGO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이들 단체 중 일부가 이른바 이권사업에 관여하면서 북측으로 하여금 남북 간 경협의 투자자산도 공짜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상호주의원칙에서 추진돼야 할 남북경협사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 경공업지원정책의 경우 차관형식으로 북한에 원자재 지원뿐만 아니라 남측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설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상담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러자 남측기업의 평양진출이 성공할 경우 평양민심에 크게 영향을 미칠 위험성을 걱정하고 있던 체제수호 강경세력의 비협조로 최소 20개월 정도 공사가 지지부진하게 됨으로써 막대한 경비손실이 발생했다.

심사숙고 끝에 그동안 투자하였던 회사자금 50억 원과 사비 20여억 원의 창업비를 손절하고 대북사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음을 북측에 통보했다. 그러자 북측 간부들이 찾아와 그동안의 공사 지연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이해를 구하면서 “6개월 내에 공장건설을 완공하겠으니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그들은 평양대마방직이 분단 60년사에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투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공장부지까지 선정해 주었는데, 이 사업이 중단된다면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민경련에도 매우 어려운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거듭 재고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남북경협을 담당하고 있는 민경련은 우리 정부나 북한정부와 달리 남북경협에 큰 애착을 가지고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개성공단는 공장건설에서부터 기계 설치 등

소요되는 자금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었으나

내륙진출기업에 대해서는 지원 대책이 전무

북측에 재배기술과 수확기술만 자비로 지원

 

통일부 경협국장의 연락이 와서 그와 면담

대북투자자산 50%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

하겠다는 언질 받고 합영사업 착수$500

투자될 때까지 8억 원만 대출 해 주었을 뿐

지원은 대출 빼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어

 

회장님께서는 그 사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협의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여 진다.

워낙 큰 사안이었기 때문에 귀국 즉시 통일부장관을 찾아가 당시의 어려움을 보고했다. 그러자 장관께서는 처음으로 통일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 합영사업을 재개한다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소식을 듣고 저를 불러 그동안 군사요충지인 중·동부전선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로 탈바꿈시키는 데만 힘을 쏟다보니 한반도의 미래번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평양개척문제를 소홀하게 대한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동대마방직이 끈질긴 노력 끝에 평양에 기반을 구축한데 대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된 미래를 위해, 아니 한반도 평화정착과 민족공동번영을 위해 당신의 회사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북정책과 북한 체제수호세력들의 견제로 중단위기에 처했던 합영회사가 김대중 대통령의 진심어린 격려로 큰 힘을 받은 것을 알 수 있겠다.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궁금하다.

20077, 마침내 15,000의 주공장이 완성되어 대마, 실크, 타올, 양말 등 14개 공장의 레이아웃을 완성하고 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이를 통한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에서 자본금이 가장 많고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설립된 남북합영회사이자 남북 민간경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를 남북 정상이 함께 방문해 준다면 남북 상생에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통일부에서는 초대하지 않았다. 적어도 평양시민들에게는 개성공단보다도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많은 평양시민들이 벌써부터 줄을 서고 있는데, ‘우리 대통령이 평양에 있는 대한민국의 민간경협기업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한 마디로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가 실물경제는 물론이고 올바른 대북정책의 부재(不在)함을 여실히 드러낸 처사였다.

정부로부터 1조 원 상당의 인프라지원을 받으면서 건설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사업과는 달리 단 한 푼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남북 민간경협의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는 평양개척에 앞장을 서왔다. 앞으로 남북경협이 재개된다면, 북한의 기업환경의 특성, 그리고 대북 진출시의 문제점으로 어떤 사항을 꼽을 수 있는지.

크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세무문제인데, 저희 회사의 경우 중국설비를 북한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진출구공사를 통하여 반출된 설비나 대마종자, 비료지원경비 등을 세무당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또한 북측에서 10년 가까이 소요된 창업경비 등도 정식세무계산서의 부재로 인정받지 못하여 약 50억 원의 경비를 사비로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둘째, 통행·통신문제다. 북한은 통행·통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남북 정부가 공히 기업의 영업활동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복수비자의 발급과 최소한의 업무연락이 가능하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전력난에 대한 대책이다. 공장가동에 필요한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대비하여 자가발전준비를 해야 하며, 전압불량이나 주파수 불량을 개선해야만 첨단설비의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압안정장치와 CVIS 첨단설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완성품생산에 대한 대책이다. 북한의 낙후된 경제여건으로 인해 분업화 또는 원활한 부품공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성품을 생산할 경우 전 공정에 소요되는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와 함께 북한에 진출해야만 한다.

회장님의 말씀을 통해 제조업의 북한 내륙진출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국민과 관련공직자 그리고 대북전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에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북한내륙경협사업, 제조업합영회사 진출에 대해 실물경제 측면에서의 설명을 부탁드린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을 화해와 평화의 장, 남과 북의 상생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상징성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물차원에서 분석해 보면, 개성공단은 북한으로부터 땅을 조차(租借)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인프라지원을 받는 가운데 이곳에 진출하는 기업은 공장건설과 시설투자만을 한 후 저임금으로 북한노동자를 고용하여 가동하는 일종의 고용사업이라 할 수 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경협이라고 하면, 상호 부조정신에 따라 10개의 과실이 생긴다면 투자한 몫에 따라 2-3개는 주고 7-8개는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초기모습을 분석해 보면, 상품매출의 약 95%는 남측기업 몫이고 북측의 몫은 겨우 5%에 불과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객과 언론이 서울에서 일하는 파출부의 하루 일당에도 미치지 못하고, 4인 가족의 한 달 생계비도 안 되는 월 $50을 북한노동자들에게 주면서 북한에 달러를 마구 퍼주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웠다.

북한의 노동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한 핏줄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또한 금강산관광은 현대아산이 금강산에 숙박시설을 투자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수익을 창출한 후 북측정부에는 입산료만을 지불하는 사업으로,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기업인 현대아산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내륙경협사업은 1차 원자재의 상품이 그 주축을 이루는 농·수산물과 광산물, 골재(모래) 수입과 위탁가공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과 달리 분명하게 정상적인 경협사업이다. 북한에서 수입하는 농수산물과 광물은 수많은 북한의 농민과 어민, 광부들에 의해 생산된 1차 상품들이다. 북한은 상품을 수출하여 외화를 획득하고 국내수입업자들은 소비자와 공장에 납품하면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남과 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사업이다. 위탁가공사업은 북한에 원부자재와 생산지시서를 보내주고 북측노동자들이 상품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사업으로 그 품목에 따라 13-16%의 가공비를 지급해 주는 사업이다.

마지막으로 제조업의 합영회사 진출은 산업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안동대마방직의 섬유업을 예로 들자면 대마··실크 등의 원자재를 북한농부들이 재배하고, 생산된 원자재로 북측노동자들이 남측의 선진화된 기술을 전수받아 고급직물을 생산한다. 이로써 남측은 안정적인 생산기지 확보로 세계시장 개척에 버팀목이 되고 북측에는 섬유산업 선진화와 외화 수입증대에 기여함으로써 남과 북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남북경협의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20077, 15,000의 주공장 완성되어

대마, 실크, 타올 등 14개 공장의 기계 설치

그 해 10월 노 대통령 평양방문과 이를 통한

분단 60년에 처음 설립된 남북합영회사이자

민간경협의 상징인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

남북정상이 방문한다면 남북 상생에 새로운

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 가지고 준비

 

평양시민들에게 개성공단보다 더 알려져 있는데

대통령이 평양에 있는 대한민국 민간경협기업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큰 충격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실물경제는 물론이고 올바른 대북정책의

부재함을 여실히 드러낸 처사였다고 지금도 생각

 

남북경협의 상생발전을 위해 지향해야 할 방향, 남북 정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남북 민간경협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민족공동번영에 중추적인 역할과 책무를 다 할 수 있는 큰 그림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남측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수백조 원에 달하는 자산과 기술을 북측의 700만 명 노동인력 및 7,000조 원의 지하자원과 효율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의 산업특성에 따라 국토를 산업구조와 노동인력에 따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청사진을 세워야한다. 셋째, 남북 모두의 국익에 공히 부합하기 위해서는 일시적 과시성의 탁상계획이 아니라 반드시 실물경제차원에서 실행 가능한 경제계획이 설계돼야 할 것이다. 넷째, 정경분리원칙과 시장경제체제의 상호주의원칙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대만과 중국의 양안(兩岸) 무역이 정경분리, 상호주의원칙에서 출발하여 대만 GDP40%가 이 무역형태에서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반도의 남과 북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중국의 양안 무역을 능가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년 전의 상황을 회고해 보면, 2000‘6.15남북정상의 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민족화해가 시작되자 세계유수의 미래학자들과 골드만 삭스의 보고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북한을 성장 동력으로 받아들이면 2050년에는 미국과 함께 세계최고의 부국이 될 수 있음을 깊이 통찰해야 할 것을 당부 드린다.

회장님께서 몇 년 전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민족경제 부흥에 큰 그림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다. 소개 부탁드린다.

20177월에 발표한 ‘$3,300억 프로젝트제하의 논문은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정당한 입장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인식의 대전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북한의 핵동결, 핵 폐기에 상응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공동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50년까지 남측의 민간 기업이 $3,300억을 투자하여 100% 완전가동이 되는 2060년에는 남측의 GDP$6, 북측의 GDP$12000억이 되어 완전한 선진국으로 성장하게 되며, 한반도의 국력은 독일과 일본을 뛰어넘어 미국, 중국, 인도와 함께 세계 4대강국으로 우뚝 일어설 수 있다는 큰 그림이다.

마지막으로 문재인정부와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남북문제는 국가적인 대과제이기 때문에 보수, 진보뿐만 아니라 남북 모든 국민들이 반드시 풀고 해결해야 할 공동과제다. 따라서 주변 강대국들의 견제와 방해에 대해 8천만 겨레가 대응해야 하는 한편, 공존 상생할 수 있는 큰 그림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자면 보수층은 진보세력의 뜻을 존중해야 하며, 진보층도 보수 세력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국익에 부합되고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올바른 대북정책을 입안하기 위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호를 과감하게 개방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가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경협이며, 이것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기업인임을 강조하고 싶다.

강석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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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30 [13:40]  최종편집: ⓒ 통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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