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에서 온 편지] 사랑이의 학교생활 이야기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7/30 [14:56]

[여명에서 온 편지] 사랑이의 학교생활 이야기

통일신문 | 입력 : 2020/07/30 [14:56]

여명의 학생 중에는 탈북 어머니들이 중국에서 출산한 자녀들이 있습니다. 탈북 어머니들이 결혼한 중국인 남편들은 대부분 소외계층이라 탈북자인 어머니를 보호해 줄 수 없고, 언젠가는 북송되어 아이와도 함께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어머니들은 어린아이를 두고 남한으로 떠납니다. 어머니의 남한 행으로 중국 출생 아이들은 친척들의 눈칫밥을 먹고 자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연로한 중국인 아버지는 아이를 한국의 어머니에게 보냅니다.

한국에 도착해 엄마를 만나도 엄마는 중국어를 못하고 아이는 한국어를 못하니 모자상봉이라는 행복한 상황에서도 비극적입니다. 역사의 사각지대에서 눈물로 태어나 눈칫밥을 먹고 자란 아이도, 그 아이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엄마도 모두 가엾습니다.

사랑(가명)이도 중국 출생 자녀입니다.

여명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로 오랜 시간 집에서 지내다 5월 중순부터 등교했습니다.

등교해서 며칠 동안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사랑이를 교사가 깨우려 하니 사랑이는 뛰쳐나가 학교 옥상으로 향하였습니다. 교무부장인 황희건 교사가 혹시 사고가 날까 봐 뒤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한참 후에 옥상에서 나오던 사랑이는 문 앞에 있는 교사를 보자 옆의 계단으로 위험하게 뛰어내리려 해서 황희건 선생이 놀라 끌어안았습니다. 사랑이는 몸부림치다 갑자기 교사의 팔을 물었습니다.

180cm가 넘는 거구의 체육 교사인 황희건 교사는 아팠지만 저항하지 않고 그저 참고 물리고 있었습니다. 아프게 물어도 교사가 팔을 풀지 않자 사랑이는 그 옆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다 주저앉은 사랑이를 황희건 교사가 한참을 달래니 안정을 찾았습니다. 아이를 다독이고 집으로 보낸 후 황희건 교사는 제게 이빨 자욱이 선명한 팔을 보이며 상황을 보고하면서 멋쩍게 웃었습니다. 저는 교감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황 교사에게 미안했습니다.

다음날 사랑이와 상담을 했습니다.

저는 강아지도 물려고 달려들면 걷어차는 게 본능인데 왜 그 선생님은 손이 안 굽혀질 만큼 아픈데도 너를 제지하거나 밀치지 않았을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너보다 두 배나 큰 분이라 한 손으로 널 밀쳐도 네가 나가떨어졌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라며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계속 아이에게 제 눈을 보라고 하며 내가 화나지 않았고 선생님의 마음을 통역해 주고 싶어서라는 것을 확인시켜가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아이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데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힘들게 생각하다 드디어 흔들리는 목소리로 제가 다칠까 봐요.” 대답했습니다.

아이의 그 한마디에 저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사랑(가명)이를 쳐다보며 그래내가 황 선생님에게 왜 밀치지 않고 미련하게 물리고 있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네가 다칠까 봐 그럴 수 없었다고 하더라... 자기 아픈 것을 참으며 너를 보호했던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그랬을까?”라고 다시 물으니 아이는 눈에 물이 맺히며 나를 좋아해서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인정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대외적으로도 책임을 지도록 교권 보호 위원회를 열어 상담치료와 교내 봉사활동을 하도록 하였고, 사랑이와 사랑이 어머님도 황희건 선생님에게 공손히 용서를 구하였고, 아이의 성장에 감사하였습니다. 그날부터 외부와 담을 쌓고 살았었던 사랑이는 마실 다니듯 학교 여기저기를 돌며 교사나 학생들과 친해지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 마주치면 제가 사랑아~ 학교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라는 짓궂은 질문을 합니다. 서툰 한국말로 늦게 대답을 하려고 하면 사랑이의 팔을 끌어 잡아 무는 시늉을 합니다. 그러면 무표정했던 사랑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팔을 감춥니다.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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