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볼턴 회고록 파장과 북미 외교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8/05 [16:12]

[포커스] 볼턴 회고록 파장과 북미 외교

통일신문 | 입력 : 2020/08/05 [16:12]

<정복규 논설위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북미 협상에 대한 진실 공방으로 여전히 뜨겁다. 존 볼턴은 북미 외교가 본격화 된 지 30년이 지나는 동안 북미 대화 테이블에 앉은 미국 인사 중 가장 큰 논란을 낳고 있다.

2019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북미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했다.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8개월만이다. 분위기는 다소 긴장되고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 정상은 최선을 다해 회담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회담 타결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됐다. 그러나 존 볼턴 당시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계속 써 내려 갔다. 이후 하노이 회담은 결렬이 되고 만다. 그리고 14개월 뒤 볼턴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이유를 회고록을 통해 폭로했다. 그는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담은 합의문 초안을 납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장거리 미사일 제거를 할 수 있겠냐고 제안했다. 이 때 존 볼턴은 핵-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가 필요하다며 두 정상의 대화에 끼어들었음을 고백했다.

두 정상의 의견차와 정교하지도 않았던 회담도 언급했다. 볼턴의 회고록은 북미 회담 자체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볼턴의 회고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은 협상 카드에 대한 완벽한 무지 때문이다. 북한은 자기들의 협상 카드로 충분히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볼턴 회고록은 결국 양쪽의 생각을 접근 시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북미 회담이 본격화된 것은 북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부터다. 1989년 프랑스 위성스팟2가 북한의 영변 핵 단지를 촬영했고, 이는 곧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끝내 거부했다. 그리고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 즉 NPT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냉전 종식 후 핵 확산 방지가 외교 정책의 최우선이었던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전면에 나선 이유다.

그런데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는 회고록을 통해 북한의 NPT 탈퇴와 핵 개발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다.

1992년 걸프전 이후의 북한 지도부가 가진 위기감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으로의 권력 승계 시기가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걸프전 참패는 북한에게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결국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도록 원인 제공을 했다.

NPT 탈퇴 직전에는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직을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는 상황이었다. 당시 김정일은 군을 완전 장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군을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NPT 탈퇴 등 위기를 조성한 국면이 있다.

실제로 1994년 남북 실무회담에 나온 북한 대표단은불바다발언을 했다.

한반도의 위기감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다행히 당시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또 한 번 극적 전환점을 맞았다.

카터 전 대통령 역시 훗날 회고록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김일성 주석이 모든 사안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핵문제를 상세히 토론했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과의 갈등을 협상을 통해 풀어낸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후 북미는 북한 핵시설 동결과 대북 경수로 지원을 골자로 하는 북-미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제네바 합의로 잠시 가라앉았던 북미 갈등은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다시 폭발했다.

2001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이다. 200210월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고 있다고 판단,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 차관보를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파견한다.

미국의 고농축 우라늄 의혹 제기에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이보다 더한 것도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맞섰다. 미국은 북한에 중유 50만 톤 지원을 중단했다.

그리고 북한은 영변 핵 시설 가동을 재개했다. 제네바 합의 체제는 붕괴됐고, 갈등은 다시 고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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