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칼럼] 김정은과 렉서스, 그리고 그날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0/08/11 [15:20]

[림일 칼럼] 김정은과 렉서스, 그리고 그날

통일신문 | 입력 : 2020/08/11 [15:20]

<림일 탈북작가>

북한의 김정은이 7(보도기준) 홍수피해 현장인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를 시찰했다.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사진은 그가 흙투성이가 된 검정색 승용차(SUV)인 일본산 도요다 렉서스의 운전석에 앉은 모습이다. 북한 역사상 수령(대통령)이 승용차 운전석에 있는 모습 공개는 처음이다. 그것도 쩍하면 욕질하는 적대국 일본의 승용차다.

북한산 첫 승용차는 1980년대 백두산평양모델이다. ‘백두산은 독일차 벤츠190’, ‘평양은 옛소련차 라다의 외형을 모방했다. 아주 형편없이 한심한 완성차로 제2경제위원회 소속 군수공장에서 2년간 100대 정도 생산하고 중단했다.

북한의 초대 수령 김일성은 생전에 미국산 포드를 즐겨 탔다. 언젠가 평양을 방문한 어느 외국정상이 그에게 왜 당신은 미국을 그렇게 욕하면서 정작 미국차를 애용하는가?”고 물었는데 나는 미국을 내 엉덩이에 깔고 다닌다고 했다고 한다. 변변한 승용차 한 대도 생산 못하는 낙후한 자국경제 수준의 실정은 애써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1980년대 사회안전부(경찰)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조선인민의 철천의 원수 미제국주의자들의 상품인 청바지를 입는 시민들을 철저히 단속하라고 했다. 장본인들을 대중 앞에 세워 비판을 주거나 심한 경우 평양에서 추방시켰다.

북한의 2대 수령 김정일은 독일산 벤츠를 무척 좋아했다. 그의 집권시절에 각 도당책임비서(도지사)와 내각 상(장관), 중앙당부장들이 타는 관용차에 자기 생일(216)의 숫자를 앞에 넣은 <2·1600XXX> 번호판을 단 차가 전부 벤츠였다. 그는 영화예술 분야에 취미가 많았는데 제 마음에 드는 배우들에게도 벤츠를 선물로 하사했다.

김정일은 2006년 여름 원산-평양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차를 앞지른 일본산 차량을 보자 저 놈의 일본차를 보면 눈에서 불이 인다며 일본산 차량 전부를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수년간 북한에서 일본산 차량은 찾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다.

전형적 독재국가 북한에서는 수령의 개인 기분에 따라 국가정책이 좌우지된다. 수령과 인민은 철저하게 별개 관계이다. 혁명의 수뇌부이고 인민주권의 대표자인 수령은 어떤 법에도 예외이며 인민은 수령의 지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집행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반동분자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공민의 자격이 박탈된다.

자신은 전용기와 열차, 승용차서부터 집무실과 자택, 별장 등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과 제품을 외국의 최고제품으로 사용하는 북한의 수령이다. 그러면서 인민들은 외제물품에 눈길도 주지 말라고 하니 그보다 더 뻔뻔한 괴짜가 있을까.

인민의 어버이로 자처하는 김정은이 그 인민이 일생동안 한 번 타보기는커녕 구경조차도 힘든 십 수만 달러짜리 고급외제승용차를 운전해서 황해도 홍수피해 현장을 시찰했다. 그를 감격스럽게 맞는 지역주민들의 모습은 앙상하고 검게 그을린 피부이다. 그들을 애써 격려며 국무위원장 양곡과 물자를 특별히 공급하라고 지시한 김정은이다.

기가 막히다. 평소 열심히 일한 근로소득의 과반을 당국에 고스란히 바치고 이번처럼 자연재해나 맞아야 그것을 수령의 선물로 받을 수 있는 북한주민들이니 말이다. 당연히 제 것인데도 수령이 줘야 갖는 천하의 불쌍한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분단 이후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100년을 향해 거침없이 지나는 시간 속에 북한동포들의 고통과 불행은 계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다. 희대의 독재자 김정은 3대 독재정권이 종식되고 2천만 동포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사람답게 사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자유통일의 그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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