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에서 평소 눈에 거슬리던 선교사부부 제거작업 단행 ‘짐작’”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9] 한국계 의료선교사 부부 피살 사건 (하)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4/17 [15:25]

“북측에서 평소 눈에 거슬리던 선교사부부 제거작업 단행 ‘짐작’”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 19] 한국계 의료선교사 부부 피살 사건 (하)

통일신문 | 입력 : 2021/04/17 [15:25]

 이주헌-이계월 합성 


현지에서 예카테리나 (일명 카추샤)라는 당시 84세의 고려인 노인을 만났다. 남봉식 이라는 같은 80대 노인이 “자신은 이주헌 선교사 침례교인(고려인)”이라며 그 카추샤 노인을 소개했다. 남 노인은 해방 때 입대한 소련군을 따라 북한 기술자로 들어갔다가 58년 소련파 숙청 때 병을 핑계대고 하바롭스크로 나와 정착한 고려인이었다.

 

하바롭스크에서 피살된 이주헌 선교사 사건

열쇠 탈북자 송창근 쥐고 있어… 러시아 검찰

북측에 인계… 사건 실마리 풀 수 없게 된 것

‘이주헌 피살사건’ 미궁 속에 유야무야 종결

 

카추샤노인은 그녀 집을 방문한 내게 “한국기자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나는 이주헌 선교사로 인해 침례교인이 됐고, 송창근 등 탈북자 관련해 일부내용을 잘 안다.”고 말해줬다. 당시 “송창근을 한때 내 집을 은신처로 6개월간 숨겨줬다 내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송은 성격이 아주 포악하고, 자신이 탈북자라면서도 겁 없이 밖으로 쏘다니고, 다른 탈북자얘기가 나오면 ‘그놈들 다 잡아 죽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또 “피살사건 관련한 다른 얘기도 들려주겠다.”며 그간 탈북자 관련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내가 옛적 ‘이주헌 피살사건’을 새삼 거론하는 것은 당시의 이 비극이 미궁 속에 유야무야 종결돼 버린 아쉬움 때문이지만, 그보다 카추샤 노인이 말한 내용이 완전히 묻혀 버린 이유도 있다. 사건관련 해 카추샤 노인이 실지로 겪은 당시 일 등과 현지에 벌어졌던 사항을 짧게 밝힌다.

 

그전 이 피살사건을 다루며 한 가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옛 김형욱 실종사건이다. 김형욱은 박정희 정권시절 6년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그는 73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 하원청문회에 박통에 불리한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당시 박 정권 눈에 가시였다. 미 한인사회에서도 평판이 나빴다. 할 일없이 늘 카지노나 드나들며 하루에 엄청난 숨겨 나온 돈만 낭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열심히 어렵게 살고 있는 교포사회에 좋은 인상을 줄리 없었다. 그럴 즈음 프랑스대사관의 ‘이상열’ 공사로부터 ‘며칠 놀러오라’는 카지노초대를 받고 파리에 갔다가 실종된 것이다. 전부 일반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상열은 김형욱의 심복이었다. 그 때문에 김형욱은 그를 완전히 믿다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김형욱 실종 열쇠는 이상열이 100% 갖고 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함구하고 세상을 떠나, 실종사건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나는 지난 1987년 미 뉴저지를 방문 중 우연히 사건내용을 듣게 됐다. 박통당시 중정 대공수사국장을 지낸 S씨로부터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박정권 시절 세계 곳곳에 ‘중정선박이 상선으로 가장해 정박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예로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됐을 때 옮겨간 데가 역시 상선을 가장한 중정소속 배였다’고 지적했다. 김형욱 역시 납치돼 파리 세느 강변 중정선박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 세느 강 이후 일은 이상열 공사가 내용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생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김형욱을 한국으로 데려갔을지 모른다. 이상열의 경우 비록 김형욱이 악명 높은 존재이긴 했으나, 그를 굳게 믿고 온 옛 상관을 죽게 만들었으니 마음이 늘 편치는 않았으리라.하바롭스크에서 피살된 이주헌 선교사 사건도 열쇠는 송창근이 쥐고 있었다.

러시아 검찰이 북한 측에 그를 일찍 인계한 탓에 사건 실마리를 풀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하바롭스크 내 취재를 종합해 본 결과역시 추정에 불과하다. 북한 측은 그들의 정보원이면서도 믿기 힘든 (송창근은 북 정보원노릇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한국에 망명할 뜻을 갖고 있었다.) 그를 앞세워, 살인청부 조선족 2명과 함께 이 선교사집에 찾아가 문을 열게 한 다음 송창근을 현장에서 쫓아버린 것이다.

그날 이주헌부부가 살해당했는데, 문만 열게 만들고 사라진 송창근은 며칠 뒤 뒷 소식이 궁금해 다시 이주헌 선교사집 근처를 배회하다, 잠복근무중인 러시아경찰에게 체포당한 것이다. 카츄샤 노인에 따르면 송창근은 평소 자신의 이중적 행위 때문인지 북에서 처벌당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고 한다. 송창근은 가끔 그녀에게 “나 같은 처지는 러시아감방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평양 시민들이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하고 있다 


북 측 그들의 정보원이면서도 믿기 힘든

그를 앞세워 살인청부 조선족 2명과 함께

이 선교사집에 찾아가 문을 열게 한 다음

송창근을 현장에서 쫓아버린 것으로 보여

 

카츄샤 노인(고려인)은 처음엔 송창근이 불쌍한 탈북자라고 생각해서 6개월간 데리고 있었다한다. 집에는 백치인 외아들이 살고 있었다. 외아들은 똑똑했는데, 대학시절 뇌수술을 잘못 받아, 백치상태가 됐다한다. 아들은 송창근을 볼 때마다 무서워하고 떨어 어느 날 아들 옷을 벗겨 봤더니,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송창근이 폭행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잖아도 성격이 잔인하고 건뜻 하면 ‘탈북자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말해, 그가 진정 탈북자인지 의심하고 있던 중인데 그런 불상사도 생겨 “당장 나가라”고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남봉식 노인이 돕자고 데려온 탈북자가 H 벌목공 의사였다. 남 노인은 H 탈북의사가 외과의로 김일성 주치의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 신뢰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하여튼 H는 벌목공의사를 자원해 나왔다가 탈북자가 됐으며, 이미 두 번이나 탈출해 체포됐다고 했다.

두 번째 탈출은 북송되는 열차화장실 창문을 깨고 달아났다고 한다. H는 남 노인에게 피신처를 요청했고, 마침 송창근을 내 보낸 카추샤노인에게 부탁해 대신 H를 돕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 후 우연히 송창근이 노인 집에 들렀다 H를 발견하자 즉시 북에 신고해 버려 H는 다음날 3번째로 체포당한 것이다.

북측은 H를 북으로 이송하기위해 북송열차를 기다리는 기간, 다른 탈북벌목공인 G를 잡는데 그를 이용했다. H를 앞세우고 G집 문을 열게 만든 뒤 덮치는 계획이었다. 체포조 5명이 동원돼 G를 잡으려 했으나, G의 필사적인 반항에 부딪쳤다. 오히려 북측 2명이 G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때 부상당한 동료를 돌보는 사이 H와 G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주해 버렸다. 그 이후 H는 영영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카추샤노인은 “약 한 달간 H와 함께 있었지만, 그는 송창근과는 완전 반대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며 “나는 H를 친자식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송창근이 “이주헌 선교사가 H를 적극 돕고 있다.”고 밖으로 발설하고 다닌 점이다. 이 때문에 노인이 송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욕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주헌 심장의가 내 집에 심장병 진찰을 왔을 때 꼭 한번 H와 마주쳐 대화를 나눈 것뿐이에요, 그때 이 선교사가 H에 대한 실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의까지 잘 알고 있다고 칭찬했어요.”

그뿐인데도 송창근이 북측에 “이주헌 선교사가 H의 뒷 후원자”라고 줄곧 주장하니, 북측에서 평소 눈에 거슬리던 이주헌 선교사부부 제거작업을 단행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나마 북측은 3번째 겨우 잡은 H까지 놓치고, 동료들까지 크게 다쳐 머리끝까지 신경이 예민한 상태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 평양 조선영화사 미주교포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로부터 제65회 대한민국 인권상 표창을 받았다. 당시 외국시민권자로선 첫 대상자였다. 20년 전인 1994년 모스크바 유엔난민기구에 탈북자 등록창구를 첫 개설한 때문이다. 사실은 나보다 교류했던 월 스트리트 저널의 클라우디아 로젯 특파원 아이디어였다. 당시 탈북벌목공이 자료를 제공했다. 그때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은 내게 차후 시상범위를 외국시민권자(교포)도 포함시킨다고 말했다.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고 이주헌 심장의 선교사부부였다.

 

다음해 2014년 나는 고 이주헌 선교사부부 자료들을 수집해 제66회 인권상 표창신청을 했고, 마침내 그는 수상자들 중 한명이 됐다. 비록 그를 만난 적도, 대화 한번 나눈 적 없지만 그는 위대한 의료선교사요, 순교자 중 한명이었다. 그 역시 20년 만에 인권수상자가 됐다. 이주헌 부부 선교활동을 엮은 ‘러시아 땅에 떨어진 두 밀알’ 순교 자료집 위로 따스한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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