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쪽지를 짓밟아도 괜찮은가?

박신호 방송작가 칼럼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4/17 [16:05]

[모란봉] 쪽지를 짓밟아도 괜찮은가?

박신호 방송작가 칼럼

통일신문 | 입력 : 2021/04/17 [16:05]

▲ 박신호 방송작가     

어머니가 들려주신 얘기다. 괄괄한 대고모가 처녀 때 길을 가려면 슬슬 눈치를 주는 남자가 많았단다. 그래도 대고모는 눈 한번 주지 않고 양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땅만 보고 걸었단다. 그런 어느 날 한 남자가 대담하게 대고모에게 다가오더니 쪽지를 내밀었다가 받지를 않으니까 양산을 든 팔오금에 재빨리 찌르고 갔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대고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집에 왔단다.

 

“대고모님이 그렇게 인기가 있으셨어요?”

 

대고모의 미모와 최종 출신 학교를 알고 있던 터라 당시 엘리트의 연애사가 궁금했다.

 

“00 주식회사 사장 비서이기도 해서 대단하셨어. 시집을 갔으면 떵떵거리고 사실 수 있었지”

“근대 왜 결혼을 하지 않으셨죠?”

“그러게 말이야.”

“신여성이라서 남자들이 시답잖아 보였나요?”

“그렇지도 않으셨어. 언젠가 보니 남자가 보낸 쪽지를 다 가지고 계시더라.”

 

대고모는 19세기분이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소극적인 소통과 접촉만 허락하는 봉건적인 사회상에 몹시 답답해하신 것 같다. 그랬기에 당신 뜻대로 사실 수 없어 얼굴조차 모르는 사랑의 쪽지를 평생 지니셨나 보다. 비록 결혼은 안 하셨지만 몇 글자 쪽지에 평생 위로하고 자긍심을 가지셨을 법도 하다.

 

때로는 쪽지 하나가 크나큰 힘을 발휘한다. 최악 상황의 전쟁터에서 아내에게, 가족에게 남긴 쪽지 한 장이 한 권의 책보다 무게를 갖는다. 세상을 하직하는 이들의 쪽지 한 장에 피눈물이 묻어 있다. 또한 수십 년 산 부부일지라도 쪽지 한 장으로 돌아선다. 한낮 쪽지일망정 그 위력은 상황에 따라 말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 모두 다 그런 경험을 겪고 살며 그런 사실을 들으며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방이 차단된 곳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한 장의 쪽지는 친정엄마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만 명의 월남자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지금 무슨 짓을 했는가?

 

대북 전단 금지법을 통과했다. 그나마 가뭄의 단비 같던 전단도 주워 볼 수 없다. 뿐만이 아니라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정권은 대북방송을 차단하기 위해 10배나 소모되는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하지만 바람을 막을 수 없듯이 희망의 소리는 넘어가고 있으나 희망의 쪽지인 전단은 아예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부터 코로나19 전염으로 행동거지의 제한을 받으며 힘들게 살고 있다. 1년이 넘도록 모두 하나가 돼 방역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서서히 지치고 짜증이 나고 있다. 답답하고 갑갑해도 몸부림을 칠 곳도 없다. 게다가 백신도 언제 마음 놓고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은 일찍이 백신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전염지역과 다를 바 없는 사회다. 희망이라고는 하늘의 도움으로 풍년이 드는 것이며 국제사회의 원조이다. 그러나 풍년이나 원조는 흡족할 수 없으며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지 못한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흘러가는 일엽편주나 다름없는 고난의 행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수십 년 동안 그나마 희망의 등대가 돼 준 것은 라디오와 전단뿐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걸다시피 심야에 라디오를 듣고 있으며 새벽에 집 앞을 내다보거나 나무를 하러 가도 계곡을 헤매며 쪽지를 찾았다.

 

국제사회는 연일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인권과 연계해 계속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우리 정부도 북한 주민의 알 권리증진과 (대북) 정보 확대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노력하고 있다.” “접경 지역 주민의 생명, 신체, 평화 등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인권을 생각지 않는 대북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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