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자유롭고 유족… 삶의 매순간 감사함 갖는 것 행복”

[인터뷰] 이연아 前 함경도 방송위원회 방송원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4/29 [04:04]

“탈북민들 자유롭고 유족… 삶의 매순간 감사함 갖는 것 행복”

[인터뷰] 이연아 前 함경도 방송위원회 방송원

통일신문 | 입력 : 2021/04/29 [04:04]

▲ 이연아 前 함경도 방송위원회 방송원


북한TV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동정을 전문 보도하는 아나운서는 리춘희씨다. 소속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텔레비전총국 방송원으로 현재 70대 후반의 나이다. 단호함을 한껏 뽐내며 강한 힘이 들어간 목소리인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생전에 문화예술 분야를 전문 지도하던 김정일은 “당의 결정관철에 떨쳐나선 인민들 앞에서 방송원은 언제나 빠르고 강하며 전투력 있는 방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시는 곧 국가의 법으로 절대 관철의 대상이다.

당과 수령, 국가와 사회 홍보(선전)의 최전방에서 체제를 상징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의 방송원들이다. 출중한 외모는 기본이고 목소리도 좋아야 하지만 그보다 출신성분이 양호해야 한다. 노동당 정치선동원이기 때문이다.

다소 희귀한 직업에서 근무하는 북한 방송원들은 과연 어떻게 뽑히고 어떤 대우를 받을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취재하기 위해 과거 북한의 도(道)방송위원회 방송원으로 근무했던 이연아 탈북여성을 인천 소래포구역 근처에서 만났다.

진행 |림일 객원기자

 

- 도(道)방송위원회는 어떻게 취직했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OO기능공학교에서 의류제작 일을 배웠다. 2003년 지인을 통해 도(道)방송위원회 방송원 입직심사를 보아 합격했다. 인물 및 신체검사는 기본, 실기시험은 소설낭독이다. 지정시간에 오독 없이, 감성과 표정도 적정히 맞춰야 한다. 도방송위원회 방송원 입직 비준은 도당위원회 간부부에서 한다.

더 자세히 소개하면 도(道)당 선전부 직속기관인 도방송위원회에는 위원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45~50명이 직원이 있다. 그중 방송원은 도(道) 내 13개 군(郡)에 한 명씩, 기자는 1~2명씩 배속되어 있다. 나머지는 편집기술 및 관리직원들이다.

직원들은 대부분 도(道)급 사범대학의 어문학부 혹은 외문학부를 졸업한 사람들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충분히 갖추었다. 방송원은 무급, 5급, 4급, 3급, 2급, 1급으로 되어있으며 그 위에는 공훈방송원, 인민방송원이 있다. 입직해서 2년이 지나면 5급 시험을 볼 수 있으며 방법은 논문과 실기시험을 병행해서 본다.

 

- 방송 규정이나 내용은 어떤 것이 있나?

전체 방송물의 95%는 평양에서 유·무선으로 송출되는 중앙방송을 직접연결 혹은 재방송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북한의 라디오방송은 새벽 5시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시작하여 밤 12시 수령의 만수무강 찬가로 종료한다. 방송프로그램 대부분이 수령의 동정과 당정책, 체제홍보에 초점이 맞췄다. 정시보도 시간에 다루는 소식은 수령의 혁명 활동 소식이나 관련 내용이다. 음악, 시, 희극, 탐방기, 경제 및 체육소식 등 모두 체제찬양과 연계되어 있다.

 

- 지방 방송은 언제 얼마나 하는가.

아침 6시, 그리고 오후 2시에 각각 20~30분 정도 한다. 지방소식 시간 1순위가 정치보도인데 수령이 언제 우리 지역의 어느 단위를 현지지도 한지 몇 주년 행사가 있었다, 도내 인민들의 충성의 결의모임이 있었다는 등이다. 2순위가 지역경제소식이고 3순위는 사회, 문화소식 소개시간이다. 2주에 한 번 정도 비판방송을 5분 정도 하는데, 주로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비문화적인 행태를 보도한다.

 

2003년 지인통해 방송원 입직심사 보고 합격

인물 및 신체검사 기본, 실기시험은 소설낭독

지정시간 오독 없이 감성과 표정을 잘 맞춰야

방송원 입직 비준 도당위원회 간부부서 결정

 

전체 방송물 95% 평양에서 유·무선으로 송출

중앙방송 직접연결 혹은 재방송이 기본적 원칙

라디오방송 새벽 5시 ‘김일성장군 노래’로 시작

대부분이 수령의 동정과 당정책, 체제홍보 초점

 

- 방송원의 특혜는 있는가?

특별히 없다. 있다면 사람들이 다소 부러워하는 눈빛, 일종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도당위원회 간부들은 평소에 주민들에게 의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유독 방송위원회 사람이나 방송원 앞에서는 점잖은 모습을 보인다. 방송녹음 및 편집을 오전에 마치면 오후에는 ‘장사’를 하라고 자유시간을 몰래 준다. 특혜라면 그것이다.

 

- 기자들이 편법 행위를 많이 하겠다.

고난의 행군시기(1990년대 중후반, 대략 300만의 인민이 굶어죽은 북한경제가 최악의 단계로 추락된 시기)부터 사회의 모든 직장에서 부식물은 고사하고 식량배급도 제대로 주지 않으니 기자들도 편법(위법)을 안할 수 없었다. 기자들은 상급의 지시로 기획 현장취재를 많이 하는데 주로 수산(축산)사업소, 식료공장, 협동농장, 외화벌이사업소 등 소위 ‘먹을알 있는 곳’이 우선이다. 취재를 나간 기자는 자기 몫은 물론이고 상급간부들 몫도 챙겨온다.

 

-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알았나?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지인이 소련(러시아)으로 벌목을 하려가면서 맡겨두었던 라디오가 달린 녹음기가 있었다. 부모님들이 직장에 나가고 혼자 있던 어느 날, 부풀었던 호기심에 라디오를 듣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분명 조선말(한국어) 방송인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귀에 설은 억양이었으니 말이다. “모스크바에서 동포 여러분에게 보내는 방송입니다” “연변에서 보내는 조선말 방송시간입니다”고 분명히 들었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며칠 동안 들어보니 그것이 소련과 중국에 있는 한민족동포들을 위한 방송이었던 것이다.

 

- 어떤 생각이 들던가?

우선 당국에서 선전하는 대로 “썩어빠진 남조선 사회가 아닌 것 같네!” “남조선이 못살고 무서운 사회라면 어떻게 올림픽을 개최하였을까?” 등 아리송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누구에게 함부로 물어보거나 당국에 항의하는 일은 상상도 못했다. 우선 순진한 소녀, 고등학생이었으니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또 다른 기회라면 방송원으로 일하면서 ‘특혜’를 받아 오후에는 개인장사를 했다. 속으로 자문자답했다. 인민들이 장사를 해서 배불리 먹고 일하면 당에 더 충실하겠는데 왜 당국에서는 한사코 통제할까? 아! 인민들이 배부르면 당에 지시도 잘 안 듣고 심지어 거역할 수도 있겠으니 그러겠구나. 그래서 ‘장마당’을 ‘혁명의 장애물’ 이라고 하겠지.

 

특혜가 있다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눈빛

방송녹음·편집 마치면 오후 ‘장사’ 하라고

자유시간 몰래 주는데 그것도 일종의 특혜

 

호기심에 라디오를 듣던 중 이상한 소리 들려

조선말(한국어) 방송인데 귀에 설은 억양에 놀라

모스코바, 연변에서 보내는 조선말 방송시간으로

소련과 중국에 있는 한민족동포위한 방송이었던 것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처녀방송원은 결혼을 하면 대부분 출산이요, 유아요 하면서 사직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나도 25살 때 결혼을 앞두고 사직을 하였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겼다. 결혼할 남자의 여동생이 먼저 탈북을 하여 남한에 왔던 것이다. 예비 시누이인데 글쎄 어느 날, 브로커를 통해 남한에서 자신의 결혼식 사진을 보냈던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눈이 확 뒤집혔다. “그래, 이거지.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을 이렇게 해야 후회가 없지!” 하고 탈북결심을 굳혔다.

 

- 남편 될 사람은 동의했나.

싫다고 하더라. 아마 여동생에게서 “오빠! 남조선은 우리 여자들은 살기 좋은데 남자들은 살기가 보통 힘든 곳이 아니다.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는 내용의 정보를 알은 모양이다. 거기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우리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가서 결혼식을 하자” “아니다. 못 가겠다” 하며 몇 달간 옥신각신하였다. 그러나 끝내 입장이 달라 “그러면 너는 여기 고향에서 살고 나는 남조선으로 가서 살겠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2011년 12월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1주일 지나 태국을 거쳐 다음해 1월 한국으로 왔다.

 

- 사회생활을 특이하게 시작한 줄 안다.

북한에서 임신한 아기를 남한에서 낳았다. 탈북노정에 육체적으로 힘든 고비가 다수 있었지만 아기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건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남들은 대부분 아이가 태어난 후 이혼, 혹은 사별해서 한 부모가정이 되는데 나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부모가정이 되었다. 2년간 집에서 유아를 하면서 한 부모가정의 시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톡톡히 체험했다. 물론 지금도 한 부모가정이다.


사회활동은 2014년부터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의 유일한 탈북민이기에 여러 군데서 섭외요청이 들어오며 고정프로그램도 맡아 진행 중이다. 2015년부터 4년제 대학을 다녀 졸업했다. 유아를 하며 일도하고 공부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너던 그 정신으로 지금도 살고 있다.

 

결혼을 하면 대부분 사직을 하는 것이 보통

결혼 앞두고 사직… 그런데 특별한 일이 생겨

결혼할 남자 여동생이 탈북해 남한에 왔던 것

탈북결심 굳혔지만 남편 될 사람과 입장 달라

2011년 혼자 태국 거쳐 다음해 1월 한국 입국

 

- <희망인의집> 단체를 소개해 달라.

올해 1월, 탈북민 한 부모가정을 포함한 다문화가정을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단체이다.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인 한 부모가정, 다문화가정을 보다 양지쪽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나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다문화가정 및 한 부모자녀들과 부모가 부딪치는 정서적인 문제들은 다소 심각하다.

 

- 이 대표의 단체 운영관은 뭔가.

회원들에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절대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시련이 있다. 어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있는 것에 만족을 하면서 당당히 사는 것도 멋진 모습이라고 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온갖 비일비재한 일이 허다하다. 엄연히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세상은 각자가 보기 탓이다. 어렵다하면 어렵고, 아니라하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강자가 되어야 한다.

 

- 고향이 어디인가.

북한에 있는 친인척의 안전을 위해 지역이름 등 구체적인 소개는 불가하다. 1983년 5월 함북도 OO시에서 지방재정기관(은행) 초급일군인 아버지와 OO병원 내과의사인 어머니 사이에 외동딸로 태어났다. 5살 때 유치원 선생님이 부른 성인노래를 몰래 귀로 익혀 부모님 앞에서 불렀다.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날보고 ‘음감’(소리감정)이 좋다며 아버지에게 “연아는 음악 분야로 공부시키자”고 하시었다.


또 다른 특기가 있다면 10살 때부터 소설책 보기를 무척 좋아했다. 낭독을 할 때 시간이 길어져 힘들어서 쉬려고 중단했으면 했지 오독으로 멈춘 적이 없었다. 소녀시절 유명한 작가가 되어 사회주의 ‘문학의 나라’ 러시아로 유학을 가는 것이 꿈이었다. 인민학교(남한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도 모르게 대중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원정(소풍)을 가서 학급별로 오락회를 할 때면 제일 선참으로 나서서 노래를 하고 시낭송을 하였다.

 

북한에서 임신한 아기를 남한에서 낳아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한 부모가정 돼

2년간 아기 돌보면서 한 부모가정의

시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톡톡히 체험

 

탈북민 한 부모가정을 포함한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단체

‘희망인의 집’설립… 소외계층인 한 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돕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 필요

 

-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시절 문학시간에 동요 동시를 잘 썼다. 문학선생이 나를 4개월간 매주 2시간씩 개별지도를 해줬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썼던 시 몇 줄이 생각이 난다. 학교길 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 피었네 / 아버지 원수님 사랑을 가득 담아 활짝 피었네. 항상 학교에서 진행된 산문·시 창작경연에서 우승을 했다.

 

- 탈북후배들 하고 싶은 말은.

탈북민들은 본인의 결심에 따라 무사히 이 땅에 온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 과거를 빨리 잊어버린다. 사실 우리가 남한에서 아무리 어렵게 정착하며 힘들게 산다고 해도 북한생활에 비하면 배부른 흥정이다. 탈북민들은 남한에서 북한의 도당책임비서(남한의 도지사)보다 훨씬 자유롭고 유족한 생활을 하니 말이다. 삶의 매순간 순간마다 감사함을 갖고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6·25 참전 유공자 … ˝늘 건강하세요˝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