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사역 통일준비 사역으로 받아들인 다는 것, 우리의 사명”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대담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1/05/14 [05:29]

“탈북민사역 통일준비 사역으로 받아들인 다는 것, 우리의 사명”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대담

통일신문 | 입력 : 2021/05/14 [05:29]

북한은 1945년 해방 후, 김일성 독재정권에서 종교를 “혁명투쟁의 장애물이며 아편이다”는 명분하에 대대적인 탄압을 실시했다. 목회자들을 수용소로 보냈고 작은 교회는 헐어버리고 큰 교회는 ‘인민위원회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70년대부터 사실상의 김정일 정권에서도 종교는 허용하지 않았다. 80년대 말, 평양에 성당 1개를 포함해 교회 3개가 세워졌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관광객, 남한방문단에 보여주기 위해 당에서 전략적으로 짓고 관리하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에서도 종교탄압은 똑같다. 중국에서 공안에 단속되어 북송된 탈북자가 받는 처벌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중국에서 성경책을 보고 교회에 갔었다”는 고백이다. 거의 무기징역인 ‘정치범’으로 규정하여 엄격하게 처벌 한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민들은 자기에게 맞는 종교를 가진다. 또한 이들을 적극 교회로 이끌며 바른 신앙인으로 이끄는 목회 사역자들이 있다. 인천 남동구에서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왼쪽부터 김아영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장, 정덕현 하늘꿈교회 담임 전도사, 김경숙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 총무, 권보연 하늘꿈교회 선교사     ©통일신문



대담 |림일 객원기자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 임원 및 사역자들

김아영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장

김경숙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 총무

정덕현 하늘꿈교회 담임전도사

권보연 하늘꿈교회 선교사

 

김경숙 총무= 중국에서 숨어 다닐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열차를 타고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던 어느 날, 공안의 단속에 걸렸다. 탈북민 신분이라 평시 공안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던 나였다. 중국에는 자기나라 글(한자)을 모르는 소수민족이 많다. 나는 어릴 때 머리를 다쳐서 글을 모른다고 변명했다. 공안은 나를 꼼꼼히 검열하면서도 쉽게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욱 태연하고 완고한 자세를 보이며 벙어리 시늉으로 맞섰다. 하도 배짱이 두둑한 나의 당당한 모습에 공안도 깜빡 속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로는 ‘운이 좋다’고 하지만 내가 신앙인이 되어 보니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 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담대한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단속에 걸려 북송되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일정한 시간을 내 제대로 성경공부를 하고

양육훈련을 받는 것 필요…그런 염원에서

설립된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이며 이것을

모체로 전국에 많은 지회가 설립되길 기대

 

정덕현 담임전도사= 탈북민들의 남한 입국은 종교계에서 다소 신선하고 기회적인 풍경이다. 온갖 막말, 가짜뉴스, 편법, 성폭력, 동성애, 부동산투기 등 우리사회 일부는 너무 세상적인 것에 변질되어 있다. 그나마 종교단체들이 나서서 정화시킨다. 한국교회는 순수하지 못하며 기존의 골수적인 상태에 많이 침체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3만 탈북민들을 보면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리라고 본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이 보내주신 통일천사, 사랑과 믿음의 선물이다. 그들을 보며 우리는 여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다는 것 하나만도 정말이지 평생토록 감사할 일이다. 한국교회는 탈북민 사역을 통일준비 사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아영 회장= 오빠네 가족과 어머니가 먼저 남한으로 왔다. 그들을 따라 ‘남조선으로 갈까?’ 했지만 가족생각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홀몸이라면 당장 떠났겠지만 남편과 아이들, 시집까지 생각하니 쉽게 결심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중 두 아들이 각각 10살을 넘기면서 많이 고민했다. 내가 월남한 할아버지 때문에 고향에서 청춘의 꿈을 피우지 못했듯이 내가 낳은 아이들이 탈북한 자기 외할머니와 외삼촌 때문에 미래가 어두울 것 같았다. 오랜 시간동안 고민 끝에 2012년 9월 남편과 두 아들, 우리 4식구가 탈북결심을 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은 공안의 불시순찰로 인해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곳이기에 심양과 북경으로 옮겨 며칠씩 보냈다. 중국에서 숨어 다니는 불안한 나날, 왠지 모를 마음속 평안함 같은 것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지켜주셨다.

 

일부 교회들에서 탈북민 전도에서 물질을

앞세우는 것은 결국 그들을 바른 신앙으로

키우는데 장애물…물론 가족형제 이별하고

빈손으로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에게

물건 귀하지만 남한에도 어려운 사람 많아

 

권보연 선교사= 탈북민들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친지들에 대한 죄책감과 탈북당시 알게 모르게 받았던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로 인하여 번뇌를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신변보호 차원에서 ‘경계심’이 있는데 적어도 교회에서 만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운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다. 일부 교회들에서 탈북민 전도에서 다소 물질을 앞세우는 것도 결국은 그들을 바른 신앙으로 키우는데 장애물이라고 본다. 물론 가족형제 이별하고 빈손으로 남한에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탈북민들에게는 물건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귀할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남한에는 탈북민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이 있다.

 

김아영 회장= 수개월 전 인천에 사는 탈북여성 A씨가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 어린 아이까지 남겨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다. 2년 전에는 온 남한사회에 떠들썩했던 탈북여성 한성옥 모자 아사사건도 있었다. 지옥의 북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온 탈북민이 남한에 와서 죽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쩌면 먼저 온 선배들의 책임도 다소 있다고 본다. 이 사회를 잘 모르는 후배들을 잘 안내하여 따뜻이 다가가 손을 내밀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교회로 이끌었으면 최소한 그런 비극적인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평일 일정한 시간을 내서 제대로 된 성경공부를 하고 양육훈련을 받는 것이 좋다. 그런 염원에서 설립된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이며 이것을 모체로 전국에 많은 지회가 생겼으면 한다.

 

통일이 되었을 때 탈북민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자신들의 밝은 모습 보여주는

것만도 성공…그것이 곧 전도이고 사역

그러기 위해 복음으로 준비하는 것 우선

탈북민 하나님 만나는 것 정착의 지름길

 

정덕현 담임전도사= 탈북민 사역에서 무엇보다 1:1 양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 속 깊이에 담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을 가까이 열지 않던 분들도 꾸준하게 마주 앉아 성경을 가르치고 찬양을 하다 보니 그들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일이 되었을 때 탈북민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자신들의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도 성공이고 또한 그것이 곧 전도이고 사역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이 복음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탈북민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정착의 지름길이다. 인간은 어쩌면 무한히 강하지만 동시에 무한히 나약한 존재이다.

 

김경숙 총무=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성령님이 이미 내 마음에 있는 것을 계속 밖에서 찾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불평불만, 시기질투, 의심 등이 나왔다. 그게 곧 마귀한데 영혼이 빼앗겼다는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성령님을 접하고부터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오늘도 귀한 하루를 허락해준 하나님께 감사부터 나온다. 하루 일과를 주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제자훈련 초급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확신, 성령 받은 확신, 기도응답을 받은 확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다.

 

제자훈련 초급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하게

하나님의 구원 받아…나의 죄 사하여 주신

확신, 성령 받은 확신, 기도응답을 받은 확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이 후회돼 전도에 나의 마음 전하기도

 

권보연 선교사=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는 ‘노동당10대원칙’이 있다. 마치도 성경의 10계명 같이 말이다. 또한 북한의 통치자들을 ‘백두산 3대장군’(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이라고 한다. 마치 성경의 성삼위일체와 유사하다.

북한은 종교를 모방하여 독재사회를 만든 사악집단이다. 김일성이 하나님, 김정일이 예수님이고 노동당이 곧 교회나 마찬가지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세뇌되었던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종교생활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탈북민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져야 할 중요한 인식 중의 하나가 교회는 물질적인 도움을 받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는 곳이다. 어쩌면 물질행복과는 비교도 안 될 커다란 영혼구원, 영혼축복을 받는 주님의 집이다.

 

김아영 회장=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어떻게 이 땅까지 무사히 온지를 잘 모르는 탈북민들이 많다. 또한 물질의 유혹에 빠져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분도 많다. 당장은 작은 만족감에 도취할 수 있으나 결국 부질없는 노릇이다.

일부 탈북민들의 이러한 실태에 남한의 적지 않은 교회가 실망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탈북민 후배들의 남한정착에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우리 자체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 남한 분들이 봤을 때 “자유를 찾아 목숨까지 각오하고 온 탈북민들의 신앙생활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정덕현 담임전도사= 남한 국민들이 탈북민에게서 부러운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죽음까지도 각오한 용감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이념, 혹은 물질 등 무엇인가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총구 앞에 내 던졌던 대단한 분들이다. 어쩌면 남한 사람들에게는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한 위대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탈북민들이 목숨까지 걸고 이 땅을 찾아온 정신과 열정으로 꼭 교회로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 바른 신앙생활을 하였으면 좋겠다. 또한 탈북과정에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피로와 고통을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치유해야 한다.

 

 

 



김아영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장

1977년 8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령의 모기업소 예술선전대에서 직장생활을 하였다.

지난 2012년 11월,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왔다. 사회생활 초기 ‘결혼정보회사’를 창업하여 한동안 운영했다. 이후 2018년 5월부터 탈북민 여성들로 조직된 ‘금강산통일예술단’을 설립하여 단장으로 있다.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는 탈북민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올해 1월에 설립한 기독 탈북민들의 정기 예배모임이다. 등록회원은 50여 명이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정기 예배에는 20~30명이 참석한다.

 

 

 


김경숙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 총무

1967년 생으로 고향은 함경남도 리원군이다. 부모님이 1960년 일본에서 북한으로 온 재일동포(재일북송인) 가정이다. 1984년 리원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리원광산 생필직장에서 ‘혁명사적지 기념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지난 2006년 5월 한국으로 왔다. 이후 보험회사에서 6년간 근무하였고 이후 유럽의 A국가로 가서 3년간 살았다. 당시 탈북민사회에서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등 해외로 ‘난민 형식의 불법이민’이 유행했었다. 많은 탈북민들이 현지서 수개월 살아보고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래도 탈북민 복지만큼은 남한이 최고이다.

고향 친구의 소개로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를 알게 되었으며 올해 1월부터 꾸준히 참여해 성경공부 및 신앙교육을 성실하게 받고 있다. 지난 3월 27일 본 신우회 제자훈련 초급과정을 성과적으로 마쳐 제1호 수료증을 받았다.

 

 

 


정덕현 하늘꿈교회 담임전도사

경기도 안양이 고향이다. 지난 2019년 12월부터 ‘하늘꿈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되었다.

교회 권보연 선교사님이 탈북민 전도 및 사역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이는데서 감동을 받았다. 권 선교사님을 통하여 김아영 회장을 알게 되었고 이후 많은 탈북민들을 교회와 일상에서 허물없이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교회는 말씀예배를 위주로 성도들 간의 서로 도와주는 치유의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연만물의 이 세상과 우리 인간들을 창조할 때 서로 사랑하며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살라고 하시였다.

 

 

 


권보연 하늘꿈교회 선교사

충청북도 문산이 고향이다. 몇 년 전 금강산예술단 김아영 단장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동안 사용하던 예술단 공연연습실을 보다 크고 멋진 곳으로 새로 이사했는데 선교사님이 와서 새 사무실 입주 기도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탈북민들이 교회로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주일 개인사정으로 교회 못나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 그들도 신앙훈련과 생활을 할 수 있게 기도 예배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정덕현 담임전도사와 함께 한국탈북민 기독신우회를 창립하게 됐다.

 

 

림일 객원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함주군 평풍덕 염소목장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