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15일 ‘통일기념식’ 펼치며 분단 기억...통일 의지 다질 것”

파주 통일촌에 ‘통일염원비’ 세운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손기웅 원장

박병직 편집홍보위원장 | 기사입력 2021/08/23 [15:43]

“매년 8월15일 ‘통일기념식’ 펼치며 분단 기억...통일 의지 다질 것”

파주 통일촌에 ‘통일염원비’ 세운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손기웅 원장

박병직 편집홍보위원장 | 입력 : 2021/08/23 [15:43]

 

▲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원장


파주 통일촌에 ‘통일염원비’ 세운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손기웅 원장. 

 

-8.15광복 76주년을 기념해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를 세웠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DMZ가 지금과 같이 온존하는 한 한반도의 평화안정, 남북 간 신뢰구축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신념에서 DMZ변화 운동, 구체적으로 DMZ평화적 이용을 1998년부터 시작했다. 독일에서 공부했기에 독일사례를 창조적으로 응용하기 위해 독일 통일현장을 자주 답사했다.

분단 시기 동서독 간 통과지점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했던 곳이며, 지금은 ‘접경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뤼벡시 작은 마을 쉬루툽(Schlutup)을 방문했을 때 ‘이거다’하는 마음을 굳혔다. 

1945년 전쟁에 패하면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서독 마을인 쉬루툽 주민의 어느 누구도 그 분단이 44년이나 지속되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1948~49년 베를린 봉쇄 사태가 일어나고, 1949년 동서독이 각각 건국하고, 저 멀리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와중에 전 유럽이 동서방의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각각 편입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나서야 비로소 분단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은 뜻을 모아 1956년 염원비를 세웠다. 비석에 ‘SLUT UP getrennt(열려라 분단)’을 새기고, 그 밑에 철조망과 ‘1945 - ’를 넣었다. 철조망으로 분단된 조국이 언젠가는 열릴 것을 소망하면서 1945 옆을 공란으로 비워둔 것은 다시 하나로 되는 그 해의 숫자를 넣기 위해서였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 3일에는 꿈같은 통일이 이루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마침내 ‘1989’를 새겨 넣을 수 있었다.

 

▲ 서독 접경마을이었던 쉬루툽에 세워진 통일비의 과거와 현재


8월 15일 광복일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선열들 피를 뿌리고 목숨 바쳐 노력했던

조국을 온전히 완성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날이지만 아픔을 딛고

통일 반드시 이끌고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통일염원비에 새기는 각오하는 날이 돼야…

           

-제막한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는 독일사례와 어떤 차이점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나?

‘열려라 통일염원비’의 앞면은 독일 사례와 유사라지만 우리만의 뜻도 심었다. 남북한이 공히 민족의 유산으로 감사해 하는 ‘훈민정음체’로 ‘열 려 라’를 크게 새기고 그 밑에 철조망과 분단을 새겼다. 철조망에는 8개의 가시를 새겼는데, 한반도 전국 8도를 상징한다. 8도 강산이 처절히 분단되었다는 의미다. 그 아래 독일과 같이 분단해 1945를 새기고, 통일된 해를 새기기 위해 옆을 비워두었다.

‘열려라 통일염원비’뒷면에는 완전히 저의 생각과 의지가 들어 있다. 통일염원비를 반드시 세워야겠다는 마음은 지난 해 분단 75년을 맞으면서 굳어졌다. 

광복일은 바로 분단일이다. 36년의 질곡으로부터 빼앗긴 땅과 주권을 완전히 되찾은 줄 알고 우리는 ‘대한독립 만세’를 환희와 감격에 외쳤다. 그러나 분단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일제 식민지 36년의 두 바퀴를 돌고도 더 지나면서 우리는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통일의 그날까지 8월 15일 광복일은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한, 선열들이 피를 뿌리고 목숨을 바쳐 노력했던 온전한 조국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며 부끄러워해야 하는 날이다. 통일을 반드시 이끌 것을 다짐할 뿐만 아니라, 그 실천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각오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뒷면에 분단 75년을 상징하는 철조망과 가시 75개와 ‘2021.8.15’을 먼저 새겨놓고, 8월 15일 정오 ‘열려라 통일염원비’를 제막하는 현장에서 분단 76년째를 알리는 철조망가시 하나를 ‘2021.8.15’ 아래에 더 새겼다.

앞으로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매년 8월 15일 정오에 ‘통일염원식’을 가지며 또 하나의 철조망가시를 새기고,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통일의지를 다질 것이다. 마침내 통일이 되면, 철조망가시에 마침표를 새기고, 앞면 1945 옆에 통일 해를 새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통일기념비’가 된 통일염원비 앞에서 매년 8월 15일 정오에 ‘통일기념식’을 가지며 분단을 기억하고 통일의 기쁨을 나눌 것이다.

 

-‘열려라 통일염원비’를 독일과 함께한 이유를 이제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제가 이러한 뜻을 가지고 우선 저의 한국평화협력연구원과 [한-독통일포럼]을 함께 운영하는 한스-자이델재단의 베른하르트 젤리거 소장에 통일염원비 운동을 제안했고, 흔쾌히 동참을 약속받았다. 이어 ‘쉬루툽 접경박물관 재단’에 협력을 요청했고 역시 동참의사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한국과 독일 간 가장 격이 높은 교류모임인 [한-독포럼]의 독일측 대표인 하르트무트 코쉭 의장에게도 도움을 요청했고 수락을 받았다.

지난 4월 26일에 개최한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 출범식’에는 코쉭 의장과 쉬루툽재단은 동영상으로 힘을 보태주었다. 그 외 독일, 일본, 미국에서도 동영상과 격려로 응원해주었다.

한반도 분단 상황은 독일과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체제로 평화통일을 달성했고, 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합과 성장을 이룬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창조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단지 독일에서 공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해서 저는 독일사례를 탐구하고 독일과 협력하고 있다.  

 

▲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


한반도 분단 상황은 독일과 분명히 다르지만 

그러나 자유민주적 체제로 평화통일 달성했고 

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합과 성장 이뤄

창조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시사점 주고 있어

 

-‘열려라 통일염원비’를 파주 통일촌에서 세웠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통일염원비를 국민 모두가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광화문 주변, 특히 한반도 수도인 서울, 그 중에서도 8도 전국도로의 출발점인 ‘도로원표’ 곁에 세우고자 했다. 그것이 어려우면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이나 효창공원의 ‘백범김구기념관’ 광장에라도 세우기를 노력했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안중근, 김구 두 분이 가장 기다리고 기뻐할 것이 통일된 조국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광화문에는 민족의 위대한 인물상이 모셔지고 유물상이 세워져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에 더해 미래지향적인 상징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대한민국과 우리 한민족의 가장 절실한 과제가 민족과 국토의 통일 아닌가? 모든 국민이 통일을 염원하지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통일 의지가 전과 같지 않음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한복판에 분단현실을 보여주고 통일의지를 담고 각오하려는 ‘열려라 통일염원비’가 세워진다면, 좀 더 통일의식을 국민에게 환기하고 전 세계에 우리의 통일의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중심의 의미 있는 곳으로 옮겨질 때까지, 통일염원비를 잠정적으로 파주 민통선 내 통일촌의 무궁화동산에 모셨다. 역대 대통령들의 어록비, 6.25전쟁 참전 17개국의 국기가 국화인 무궁화와 함께 있는 이곳도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장소이다. 통일대교가 바로 뒤에 있어 분단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자리를 허락해준 대한민국꽃무궁화국제재단과 관계자분께 감사를 드린다.  

아쉬웠지만, ‘열려라 통일염원비’를 광화문에 모실 수 있도록 소망하는 마음으로 통일촌에 오기 전 광화문 도로원표에서 통일염원비를 트럭에 실은 채 간단한 기념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광화문 일대를 돌면서 국민의 통일기원을 담아 통일촌으로 왔다. 

 

-통일염원비에 누가 참여했는지, 경비 마련은 어떻게 했는지?

뜻을 함께하는 평생 동지인 한국평화협력연구원의 회원을 주축으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다. 이번 운동을 그야말로 순수 민간 차원의 자발과 헌신으로 이룩하고 싶었다. 발로 뛰고 부딪혀야 했지만, 많은 분들이 흔쾌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원활히 진행되었다. 한스-자이델재단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특히 황교안 전 총리님은 운동의 처음부터 관심을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찾아주셨다. 언론에서는 통일신문을 포함하여 매일경제, 시사저널, 최보식의 언론 등이 힘을 보탰다.

 

 

매년 8월 15일 오전 공식적인 경축식 거행

정오에 통일염원식을 개최하여 국민들에게 

8월 15일이 분단일임을 알리고 통일 의지를

환기하면서 스스로 통일각오를 다지게 할 것

 

-통일이 원장님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통일염원비와 통일염원식은 어떻게 되는가?

제 생애에 통일이 이뤄지지 못하면, 통일염원비의 의미를 이어받아 계속 통일염원식을 가지고 통일운동을 이끌 준비도 하고 있다. 제가 한스-자이델재단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한-독통일포럼]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통일아카데미>를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청년통일일꾼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무력 도발에 대응하는 대북 국제제재는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하는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국제정치행위다. 그 목적에 통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은 온전히 우리 몫이자 우리 임무이다. 갈등과 대립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통일 의지를 지속하고 더욱 담금질해야 한다. 

그것을 위한 계기이자 상징이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다. 매년 8월 15일 오전에는 공식적인 광복절 경축식이 거행될 것이다. 정오에 통일염원식을 개최하여, 국민들에게 8월 15일이 분단일임을 알리고 통일 의지를 환기하면서 스스로 통일각오를 다지고자 한다. 

분단이 일상화되고, 일상 속에 관심 없는 남의 얘기가 되어가는 통일을 우리의 가슴과 머리로 다시 활짝 받아들이는 변화가 ‘열려라 우리나라 통일염원비’로 있기를 소망한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통일의 길을 각오하고, 통일연구원에서 열정을 불살랐으나 이루지 못한 통일, 이제 국민과 함께 끝까지 걸어가고자 한다.

국민 여러분, 함께 하십시다.

 

박병직 편집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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