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전두환 씨?

송두록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12/02 [02:19]

[통일칼럼] 전두환 씨?

송두록 논설위원 | 입력 : 2021/12/02 [02:19]

▲ 송두록 논설위원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실제가 그런가? 

여러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을 이끄는 리더,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호칭은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알려주는 지표이자 본인의 격을 말해주는 바로미터이다. 누구를 부를 때 ‘야, 이 XX야’라고 부르면 아무리 친한 사이어도 일단은 기분이 나쁜 법이다. 그 반대로 나이가 자신보다 많다고 생각할 때 예컨대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면 상대방도 옷깃을 여미면서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최근 대한민국 제11대, 제12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前 대통령이 서거했다.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당사자를 이름 뒤에 씨라고 붙여서 부르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합리적 의심을 해 본다면 이름 뒤에 ‘X’이라고 부르기는 뭣해서 그나마 높여서 불러준다는 뜻일까. 전두환 前 대통령 유족 측에서 고마워해야 하나.

 

1,000여 년 전 당시 노비 신분이었던 만적이라는 사람이 난을 일으키면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라고 외쳤다. 당시에는 몰라도 민주화된 요즘에는 정말 맞는 말이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실제가 그런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을 이끄는 리더,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저, 정치는 적(敵)이 있다. 세상의 현인들이 경쟁을 하더라도 선의의 경쟁을 하라고 가르치기는 한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추구하다 보면 욕심이 더 생기는 것이고 그렇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첨예한 이익 추구 활동이라서 통상 적을 만들어내기 쉽다. 하지만 적을 원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들면 서로가 위험하다. 

 

후삼국통일의 대업을 꿈꿨던 견훤을 보라. 기습전을 펼쳐서 신라 서라벌을 치고 들어간 것까지는 대단했지만, 역사서를 보면 궁궐에 들어가서 신라왕을 죽이고 왕비와 비첩들에게 못된 짓을 하거나 부하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다고 한다. 당연히 신라 민심이 들끓었고, 민심이 천심인지라 본인이 세운 신라 경순왕조차 그 신하들과 함께 신라 사직을 들어 고려로 귀순하면서 견훤이 아니라 고려 왕건이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자고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욕심에서 시작해서 욕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김일성이 “소년단원들은 계급적 원수들을 끝없이 미워하며 끝까지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라고 북한 어린이들에게 가르쳤다. 

 

북한 소년 소녀들이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서 한반도 공산화 통일에 나서게 하려는 욕심이 앞선 탓에 어린아이들에게 편 가르기와 미움을 가르쳤겠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협동과 단결을 가르치며 경제 건설에 앞장서서 오늘의 경제대국이자 선진 대한민국을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되지 않는가.

 

엇나간 욕심은 차이를 차별로만 보게 만든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한 동족, 한 집안, 한 친구들로 보게 하지 않고 갈라치기를 시킨다. 만적이 말했던 왕후장상론도 그렇고, 김일성이 말한 계급론도 그렇다. 

 

계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돈과 힘이 있는 저 부류는 모두 욕심쟁이들이고 그렇지 않은 우리는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주장 아닌가. 저 부류의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지금 못 살고 못 먹고 있는 것이니까 저들을 미워하고 싸워서 먹을 것을 쟁취해야 한다는 선전 선동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수순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한 죽음 앞에서조차 갈라치기하고 차별하는 것은 원수를 만들 뿐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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