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한이 잘하는 점 있어도 인정 안 해… 마치 절대 악같이 생각”

토론토 송광호 특파원 | 기사입력 2021/12/02 [02:57]

“한국, 북한이 잘하는 점 있어도 인정 안 해… 마치 절대 악같이 생각”

토론토 송광호 특파원 | 입력 : 2021/12/02 [02:57]

 



김련희 씨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잘못 왔다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송환의사를 밝혔다.

한국이 싫고,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평양가족과 안 떨어지겠다는 게 단하나 이유다. 평양에 생존해 있는 부모님과 남편, 외동딸이 사무치게 그립다. 혈육과 함께 있겠다는 일편단심이 그녀에게 전부다.

처음부터 그녀는 중국 땅에서 브로커 꼬임에 잘못 들어온 경우였다. 김련희 자신의 판단미스로 발생한 사고였다. 브로커는 “한국에 가면 두 달 만에 큰돈을 벌 수 있다. 여기서 무슨 돈을 벌 수 있느냐. 한국에 가서 돈 만들어 곧 북으로 되돌아가면 된다.”는 말을 믿었다. 그때 브로커에게 쉽게 자신의 여권을 내준 것이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곧 실수를 깨닫고 여권회수를 원했으나, 브로커는 “이미 내 손에 여권이 없고 다른 데로 갔다”고 돌려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그해 9월 김 씨는 다른 탈북자 7명과 함께 한국에 닿자마자, 즉각 북한 송환을 요구했다. 한국정부는 갓 입국한 탈북자를 그대로 놓아줄 리가 없다. 그녀는 조사와 심문을 거듭 당하며 고통의 시간이 쌓여갔다. ‘보호관찰 대상자’로 찍혔다.

 

-평양 어디에 사셨나요? 평양도 서울 강남처럼 중산층이상 거주지로 알려진 동네가 따로 있는지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중구역에서 태어나, 나중 중구역 다른 동네 (교구동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특권층 동네는 따로 없습니다. 다만 직업별 아파트 구분이나, 평양아파트 입주순위는 있어요. 첫째가 항일유가족의 4대 자손까지, 2째 영예군인가족, 3째가 당시 철거민들, 4째가 건설참가자 노동자들과 일반 사람들입니다. (김련희씨 남편은 의사이며, 영예군인이다). 특권층을 말한다면 항일유가족이 되겠지요.

내가 살던 아파트는 20층짜리인데 몇 층에 누가 사는지 전부 알아요. 온 아파트가 한 집처럼 친구처럼 지내요. 또 아파트 배정은 주택배정과에서 하는데 입사증이 꼭 있어야 해요. 부동산업자는 없어요, 개인으로 집을 사고 팔수 없습니다.”

 

-한국에 오신지도 10년이 지났는데, 평양생활과 차이점은 어때요?

“한국은 막 살기는 좋은 것 같아요. 생의 가치나 무게라 할까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아요. 저는 정치를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평양생활은 사는 느낌이 단단해요. 북 주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자주권을 지키는 거예요. 자주권은 인생의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은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북에서는 남쪽을 같은 동포로 영리한 민족으로 평을 하는데, 한국은 북한이 잘하는 점이 있어도 인정 안 해요. 마치 절대 악같이 생각해요.”

 

-김련희 씨는 (노동)당원입니까. 당원과 일반 주민은 많이 다릅니까?

“저는 당원이 아니에요. 당원이 되면 명예와 긍지를 갖습니다. 1995년부터 98년까지 (고난의 행군시기) 많이들 굶어 죽을 때 당원들이 가장 많이 죽었어요. 남부터 위하다가 먼저 죽었지요. 당원이 되기 위해 군대에 많이 갑니다.

제 남편도 군의관으로 지방에서 10년간 가족과 함께 근무했지요. 나중 차량사고로 제대해 영예군인칭호를 받고 평양에 돌아왔어요. 영예군인은 당의 배려와 국가적 혜택을 많이 받아요. 북 관광, 문화시설 등지 어디를 가나 ‘의사, 교원, 영예군인은 우선 봉사합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지요. 영예군인을 우대하는 기풍이 서 있습니다. 제겐 가족만이 힘이에요, 함께만 있으면 되요. 억만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게 가족이에요.”

 

-과거 평양에는 늘 전기가 부족했던 걸로 알아요. 지금도 그렇습니까?

“예전엔 그랬지요. 전기는 지난 2008년부터 향상되기 시작했어요. 아침저녁 1시간씩 절전되는 등 매년 좋아지다가, 2012년부터 경제가 안정되면서 완전히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평양에 전기가 남아돌아 중국에 수출한다고 해요.”

 

-남북한이 특히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은 어디에나 간판이 많고 도로가 아주 좋잖아요. 사회구조는 완전히 다르지요. 북에선 모든 공민(주민)이 한명도 빠짐없이 조직생활을 합니다. 대개 모든 조직에서 주1회 생활총화를 해요. 총화방식은 보통12명 남짓 모여서 자아비판이나 상호비판을 하지요. 서로 부족한 점을 조언해 주지요. 비판은 직위 상관없이 하고, 실생활에 반영해요. 그래야 발전할 수 있지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자신이 제일 모르잖아요.

제가 남쪽에 와서 이질적인 것이 일상생활에서 총화나 교육, 학습 등이 전혀 없는 게 달랐어요. 상대에게 잘못을 전달 안 해 주니, 남쪽사람들 행동 요소요소에서 개인주의, 공명주의가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아마 생활 ‘총화’가 없으니 그런가보다 싶기도 했어요.”

그녀는 40년 평양생전 공산국가에서 획일적으로만 살아왔으니, 삶의 방식이나 세상시각이 자유로운 자본국가와 다를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지난 2017년에는 그녀를 돕는 남쪽의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에서 김련희 저서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어 냈다.

최근 어디선지 내년 3월대선 즈음해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이명박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것이라는 소문이 귀를 스쳤다. 김련희씨도 제발 고향가족 품에 안겼으면 좋겠다. 대통령 사면여부와는 별도로. 하루속히 그런 기회가 오길 학수 기대한다.

토론토 송광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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