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시구문 밖 아기와 탈북민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1/12/02 [03:02]

[모란봉] 시구문 밖 아기와 탈북민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1/12/02 [03:02]

▲ 박신호 방송작가    

탈북민을 생각할 때마다 일본서 귀국했을 때 일들이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 판세가 급격히 일본에 불리하게 기울자 일본에 살고 있던 동포들은 하루라고 빨리 귀국할 것인지 말 것인지 용단을 내려야 했다. 마침 우리 가족은 엄마의 용단으로 조기 귀국하기로 했다.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이었다. 7년여만의 귀국이건만 짐이라고는 식구들이 짊어진 것뿐이었다. 일곱 식구가 배를 타기 위해 나라(奈良)를 떠나 기차를 타고 항구 도시 시모노세키(下關)에 내렸다. 부두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가히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옆에서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문득 탈북민들의 사연이 떠오른다. 그들이 탈북하느라 얼마나 험한 길을 걸었던가.

 

수완이 뛰어난 아버지 덕분에 부두에서 노숙하지 않고 어렵사리 관부연락선을 탈 수 있었다. 고동 소리도 요란하게 울리는 관부연락선을 탄 우리 가족은 파도만큼이나 울렁거리고 뒤집히는 속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토하느라 다들 녹초가 됐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뒤엉켜 객실에 너부러졌다. 멀미가 사람을 잡았고 간단없이 꺼지는 엔진소리에 가슴들을 조였다. 전쟁 중이라 ‘현해탄’을 건너던 관부연락선이 미군의 포격에 격침되곤 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 항해하는 내내 가슴을 조이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승선객들은 오로지 생사를 바다와 하늘에 맡긴 신세였다. 탈북민들의 탈북 과정이 떠오른다. 

 

구사일생 부산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환희의 소리 한 번 질러보지도 못하고 녹초가 된 채 돼 부산역을 향해 걸었다. 어찌 어찌해 요행히 서울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 속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오줌은 종이봉투에 담아 창밖으로 내던졌다. 거의 하루 걸려 서울에 도착한 우리 가족이 갈 곳은 외가였다. 임시 거처로 짐을 푼 외가는 일곱 식구가 당분간 얻어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다만 잠자리가 좁은 게 문제였다. 수다식구를 수용하기에는 한옥은 비좁았다. 

 

아버지는 다음날부터 집과 직장을 구하러 다니셨다. 어수선한 전시 말에 빈집이 있을 리 없고 직장이 있을 리도 없었다. 집과 직업이 없다는 건 삶을 맡길 곳이 없다는 거나 다를 게 없다. 편히 몸을 뉠 곳이 있고 끼니 걱정하지 않는 생활이 진정한 삶이라 할 게 아닌가. 문득문득 그때 생각이 나면 탈북민 생각이 난다. 

 

우리 가족이 거처하던 동네는 동대문 옆 광희동으로 통칭 ‘시구문’(屍軀門)이라 했다. 당시만 해도 시구문은 서울 변두리여서 우리 남매들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먼지가 풀풀 나는 동네에서 좁은 집에 얹혀산다는 건 불평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동네 아이들과 말이라도 하려면 일본 말이 부지 부식 간에 튀어나오지 않으면 혀 짧은 우리말이 나오니 여간 신경이 가지 않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봐가며 말을 걸어야 한다는 건 탈북민들이 초기에 겪는 시련과 다를 것이 없다. 

 

전시 막판 어수선한 시국에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서울에 본가도 있었고, 아버지가 장남이셨으니 들어가 살 수도 있었겠으나 그러자면 이미 살고 있던 아우네 식구를 내보내야 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집과 직장을 구하려고 다닌 아버지를 생각하면 탈북 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탈북민과 뭐가 다를까 싶다. 

 

귀국 직후 들은 충격적인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잠시 우리 가족이 머물던 동네엔 죽어서 나가는 문이라는 뜻의 글귀(屍軀門) 돌문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들려주신 얘기가 끔찍하다. 고칠 수 없는 전염병을 앓는 아기나 아이를, 생명이 아직 붙어 있어도 내다 버리는 곳이 시구문이었다고 한다. 버린 애들은 부모나 가족이 매일 와 죽었나 살았나 살펴보다가 요행히 살아나면 다시 데리고 간다고 했다.

 

약도 신통치 않은 세상이었고 남에게 몹쓸 병을 옮길까 봐 오죽하면 산목숨을 내다 버리기까지 했을까만 어떻게 저절로, 스스로 살아날 수 있기만 기다리고만 있었단 말인지 너무나 기가 막혔다. 북한에서 살 수 없어 한국에 탈출해 온 북한 동포도, 이웃도 생각할 겨울이 왔다. 

 

박신호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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