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재평가돼야

한반도 평화정착에 진일보...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이자 정의

강종필 기자 | 기사입력 2021/12/13 [11:58]

기획기사/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재평가돼야

한반도 평화정착에 진일보...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이자 정의

강종필 기자 | 입력 : 2021/12/13 [11:58]

 

 



2021년은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남북은 지난 19911213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이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해 공동 합의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이 분단 이후 최초로 상호체제를 인정하는 등 획기적인 내용을 담아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일신문>은 최근 멈춰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을 돌아보기로 한다.

 

노태우 정부는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촉발된 탈냉전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삼았다. 정부는 19909월 제1차 고위급회담을 시작해 대화의 물꼬를 텄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위해 사전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라는 절묘한 신의 한수를 뒀다. 유엔 창설이후 남북은 경쟁적으로 단독가입을 추진했으나, 냉전의 양강 미소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임을 내세워 유엔 단독 가입을 추진했다. 북한도 동시 가입이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의도라며 단독 가입이 아닌 한 유엔 가입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남북유엔동시가입이 마중물 역할

 

이에 노태우 정부는 단독가입을 과감히 포기하고 동시가입을 조건으로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었다. 마침 북한도 최대 후원국은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새로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유엔은 남북이 유엔동시가입을 신청하자 19910918일 열린 제46차 유엔총회에서 표결 없이 159개 전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을 승인했다. 이로써 남북분단 46, 유엔창설 46년 만에 각기 독립된 국가의 자격으로 유엔 회원국이 됐다.

 

노태우 정부는 이를 토대로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적극 추진했다. 남북은 지난 1990년 제1차 고위급회담이 열린 지 15개월 만에 합의서를 채택했다. 1992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서 문건을 정식으로 교환했다. 또한 그해 9월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최종적으로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했다.

 

특히 합의서 서문에는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국통일 3대원칙의 재확인, 민족화해, 무력침략과 충돌방지,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의 번영도모,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등을 규정했다.

 

또한 제1장에 규정된 남북화해 관련 내용은 획기적이었다. 분단 이후 남북은 상호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호 체제인정 및 존중, 내부문제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파괴·전복 행위금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 중지, 민족 성원 상호간의 화해와 신뢰 등에 관한 내용을 명시했다.

 

2장도 남북 불가침 조항이 명시돼 주목을 받았다. 분단 이후 북한의 무력 도발로 잦은 군사적 충돌을 빚어 전쟁 위기가 상존했다. 특히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제2의 남북전쟁이 터질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남북은 무력 불사용과 무력침략 포기, 대립되는 의견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 명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 남북군사당국자 간 직통전화 설치 등을 합의했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에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장은 남북교류협력 강화를 담았다. 그동안 남북이 정치·군사적 긴장해소에 주력했지만 이번에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강화에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민족 전체의 복리향상과 민족 공동체의 회복·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를 담았다.

 

국제사회는 남북이 기본합의서를 채택하자 남북한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군사적 침략이나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고, 상호교류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발전과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북핵 위기로 멈춰진 합의서 이행

 

합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데 있었다. 북한은 합의서 채택한지 불과 일 년 만인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합의서는 사실상 폐기됐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위기로 규정하고 강경으로 돌아섰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코자 했지만 성사직전 김일성 북한주석의 급사로 무산됐다. 또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져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남북관계개선의 청신호가 켜졌다. 남북은 이산가족 상호 방문을 성사시켰고, 2000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6·15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평화최우선 추구 '상호 존중'의 정신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정책'3대 목표로 삼았다.

 

평화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이자 정의이며, 경제적 번영을 위한 토대다. 특히

북한 붕괴 불원, 흡수통일 및 인위적 통일 불 추구(3-No)를 통해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잘 사는 한반도'를 추구한다는 데 기본합의서 정신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내년 5월 출범할 새 정부는 통일정책을 수립하기 전 남북기본합의서를 재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종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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