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엉망진창 365일

박신호 방송작가 | 기사입력 2021/12/24 [18:20]

[모란봉] 엉망진창 365일

박신호 방송작가 | 입력 : 2021/12/24 [18:20]

▲ 박신호 방송작가     

세밑이 되면 너 나 없이 한 해를 돌아보곤 한마디씩 남기기 마련인데 올해는 누구라 할 것 없이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느냐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한해 내내 그놈의 콜레라19에 휘둘리고 끌려 다니느라 혼쭐을 놓다시피 허덕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 고약한 한해였는데 더 고약한 것은 새해에도 별로 희망을 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게 다 콜레라19라는 원흉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보다도 나랏일을 위임받은 사람이 무능하면 국민이 얼마나 고생하게 되는 가를 증명해 보였다 할 것이다.

 

엉망진창의 지난 한 해, 나름 돌파해보려고 별의별 고생한 얘길랑 잠시 접어두더라도 세밑에 적어도 미래에 관한 얘기는 해야 할 터인데 누구 하나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더 악화하지나 말라는 거다. 기막힌 노릇이다. 하지만 어쩔 건가. 자신을 속여서라도 엉망진창 세상을 살 방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작년 한 해,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닥쳐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겪었건만 올해도 여전히 똑같은 재앙을 겪어야 했으니 가뜩이나 심신이 허약해진 서민들은 탈진하다 못해 자리에 눕게 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리는 소리는 평생 받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아야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단다. 선량한 서민 가장들을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집안 풍파 일으키게 하고 살맛 잃게 했다. 고약한 일이다. 그러고는 우는 아이들 사탕 한 개 집어주며 달래듯 복지, 지원 운운하며 몇 푼 흔들며 생색은 요란하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거다. 어리석게 언제까지나 누구 탓이나 하고 살 게 아니라서 내 경우, 나이 80 중턱이지만 이 기회에 오랫동안 구상하던 장편 첩보 시리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족히 몇 년은 걸릴 일이다. 하지만 집안에만 있다시피 해 근력이 떨어진 터라 쉬 피로를 느낀다. 그렇다고 마냥 허송세월만 할 수 없어 걷기도 하고 맨손 체조도 하며 근력을 키우는 한편 자료를 정리해 본다. 그러나 곧 망설이게 한다. 끈기에 자신이 서지 않아서다. 은근히 화가 난다. 건강에 자신 못한다는 건 삶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년이 되어서건 강제 은퇴 후이건 가장으로서 재취업을 못 하고 집에 있는 건 집안 식구 보기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우 60안팎에 방구석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건 인생을 헛산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들 백수가 된 게 창피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이나 공원에 가고는 하는데 그것도 한두 달이고 한두 해이지 고행 중 고행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80중반이니 면피는 할 수 있게 됐으나 꼴이 말이 아니다. 2030세대의 취업은 미래의 약속이지만 6070세대의 취업은 당장 생계문제다.

 

아무리 늙은이라고 해도 왼 종일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낮잠이나 자고 있을 수 없다. 컴퓨터 앞에라도 앉아 있으면 좀 났다. 그래서들 동네 행복센터에서 가르치는 컴퓨터 교육을 열심히들 다닌다. 배우면 배울수록 신세계를 만날 수 있으니 왜 마다할 건가.

 

하지만 의외로,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핸드폰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 심지어 전화를 걸어도 누가 건 것인지 표시가 뜨지를 않아 모른다. 카톡도, 메시지도 주고받지 못한다. 한데 하는 소리가 “고독하다”라며 때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거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번연히 1층에서는 마누라가 살고 2층에서는 아들이 살고 있으며 저는 3층에 살면서 고독 타령이다. 그럴 때마다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위 친구 인생 만년이 불쌍해 보여 눈물이 흐른다.

 

흔히들 늙으면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단념의 단서들을 잘 단다. 그러지 말자. 나는 주말이면 오는 자식들이나 손주에게 PC, HP 같은 전자제품에 대해 열심히 묻는다. 같은 걸 몇 번이나 물으면 옆에서 보던 아내는 자존심이 없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엉만 진창 세상에 모르는 게 더 자존심 상하는 건데 주저앉지 않으련다.

 

박신호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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