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김정은의 북한 통치 10년

여전한 정보통제 강화…아직 멀리있는 경제발전의 길

홍성창 국내외출판국장 | 기사입력 2022/01/06 [03:52]

[기획기사] 김정은의 북한 통치 10년

여전한 정보통제 강화…아직 멀리있는 경제발전의 길

홍성창 국내외출판국장 | 입력 : 2022/01/06 [03:52]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0년 전인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다. 3남 김정은은 그해 말 군 최고사령관이 돼 북한의 통치를 이어받았다. 핵개발을 서두르지만, 미국과의 직접 교섭은 좌절되었다. 경제악화에 시달리면서도 핵에 집착하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로 향할까.

2021년 1월 위원장 직함을 부활시킨 김정은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했다. 당 회의장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떼어내고 당 규약에서 신격화된 선대사상을 깎아냈다. 정부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는 내부에서 김정은 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체중 급감도 장기통치를 의식한 다이어트라는 분석이 많다. 27세에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 위원장은 당초 권위 부여가 필요했다. 건국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왕년 모습을 닮기 위해 의도적으로 체중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실부인이 아닌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콤플렉스도 있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폭식도 영향을 줘 19년 시점 김정은 위원장의 체중은 140kg으로 10년도 안 돼 약 2배로 늘었다.

다만 통치가 장기화되면서 할아버지의 체형을 닮게 할 필요성은 낮아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

체중급감… 장기통치 의식한 다이어트

 

비만으로 건강을 해치고는 온갖 결재가 집중되는 독재자의 일을 오래 할 수 없다. 한 관계자는 최근의 체중 감소에 대해 “장기정권을 위해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생각한 감량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내부에서 권력투쟁도 벌어졌다. 전반기는 군에 영향력을 가지는 선대로부터의 실력자를 연달아 숙청했다. 후견 역이었던 이영호 총참모장을 실각시켰고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이복형 김정남을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해 체제를 위협하는 불안의 싹을 잘랐다.

우수한 실무자는 등용하고도 잦은 인사로 고정된 측근은 두지 않았다. 신임하는 사람은 피를 나눈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국제무대에 우뚝 섰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지렛대로 미국으로부터 체제유지 보장 및 경제제재 해제를 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다만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없이 미국이 양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시 탄도미사일 실험을 재개했다.

지도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인공위성이라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선언해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 이후 핵실험을 4차례 실시했다. 한미 당국이 파악한 미사일 발사는 120차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의 대통령 선거와 11월의 미 의회 중간 선거 등 관계국의 정치 일정이 계속 된다.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를 주시하면서 다음 협상 때 카드가 될 전력 증강을 꾸준히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전망된다.

 

파악한 미사일 발사 120차례 이르러

국가비상방역사업 유지하기 위해 총력

 

11월 중순에 중국 단둥 시와 북한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의 중국 쪽으로 열차가 건너가고 인부들이 다리를 보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국 정부는 북-중 육로무역이 11월 중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12월 하순 코로나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형이 출현해 북한은 다시 국경을 굳게 닫았다.조선중앙통신은 “국가비상방역사업의 완벽함을 철저히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중 무역은 공해 상에서 선박의 화물을 옮겨 싣는 방식으로 세세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행 추산으로는 북한의 2020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기근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나 되는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의 시기인 1997년(6.5%감)에 뒤를 잇는 침체였다.단지, 발밑에서 곡물 등의 물가는 안정됐다. 정면 돌파 자력갱생 같은 구호를 외쳐 온 김정은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경제와 식량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버틸 여력은 있는 것 같다는 한 탈북민의 말이다.사람들이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산다는 의식을 가진 영향도 있다고 한다. 계획경제와 배급제는 파탄 나고 지도부는 배급 대상을 평양에 사는 당 고위 간부들로 한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암시장을 합법화하고 유능한 인물에게 기업경영을 맡겨 시장경제화를 추진했다. 전국의 종합시장은 400이 넘고, 일반 주민은 거기서 생계를 이어간다. 신흥 부유층도 태어났다.

경제는 2016년까지는 성장기조에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오산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 6차 핵실험 이후 석유공급을 제한하는 제재를 결의했다.외화 감소는 현저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한 외환은 대중 수출이 늘면서 1997~2003년 연 3억~4억 달러 규모로 확대됐다. 하지만 제재가 직격탄을 맞은 17, 18 두 해는 각각 10억 달러 이상 줄었다.

 

해외여행객 겨냥 관광시설 잇달아 건설

10년이 지나도 못 그린 경제발전의 길 

 

김정은 위원장은 18년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화를 시작할 무렵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룬 중국이나 베트남을 성장 모델로 여긴 적이 있다.

해외 여행객을 겨냥한 관광시설을 잇달아 건설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했다.북-미 협상이 무산되면서 그 구상도 허물어졌다

북 지도부는 대외 개방에 따른 자유주의 사상과 정보의 유입이야말로 독재체제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이라고 보고 정보 통제를 강화한다. 지난해 이후 한류 드라마를 퍼뜨릴 때 최고형을 사형으로 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을 잇달아 제정했다. 

국제사회를 외면한 채 체제유지를 위해 사람들을 억압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10년이 지나도 경제발전에의 길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홍성창 국내외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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