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는 언어 · 의식수준 비슷해져야 통일 이루어지겠다고 느꼈다”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 땅

송광호 북미특파원 | 기사입력 2022/04/11 [10:28]

“북한과는 언어 · 의식수준 비슷해져야 통일 이루어지겠다고 느꼈다”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 땅

송광호 북미특파원 | 입력 : 2022/04/11 [10:28]

 



‘아리랑 축전’행사

 

10만 명이 펼치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누구든 놀라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과연 이 거창한 행사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하는

상념에 빠져 생각이 복잡해 졌다

 

지난 2002년 5월, 북한은 ‘아리랑 축전’행사로 세계각처에서 대규모 관광을 받아들였다. 그때 30여명의 토론토교포들이 단체로 북한을 다녀왔다. 당시 토론토 A는 평소 방북을 원했던 지인이다. 마침 관광기회를 잡았다. 그는 나중 방북소감을 글로 써서 내게 전해줬다.

중국 심양(옛 이름 봉천 Shenyang)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갔다. 화창한 날씨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북한 산야는 듣던 대로 헐벗은 모습이었다. 간단한 입국수속 후 일제 닛산 대형버스를 타고 숙소 보통강호텔로 향하던 중 거대한 김일성동상이 세워진 만수대공원에 들러 일행대표가 헌화를 했다. 버스에 돌아온 후 안내원은 “경건한 수령 동지 동상 앞에서 너무 떠들고 웃는 등 경박스럽게 행동했다”는 주의를 들었다.

 

호텔음식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흰 쌀밥, 두부조림, 생선구이, 무국, 포기김치 등 별미였다. 아리랑축제기간에는 밤12시까지 야시장을 연다. 첫날밤이라 눈여겨보기만 했다. 일부 관광객은 조개구이, 빈대떡 등을 안주로 평양소주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다음날 시차관계로 일찍 깼다. 오전 5시쯤 호텔주변을 산책하다가 나물 캐는 40대 아주머니를 만났다. “무엇을 캐느냐”고 물으니 “쑥이요.”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안내원 없이 다니지 말라는 말이 생각나 곧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는 평소 우리 음식과 다름이 없었다. 이면수 조림, 국, 계란 후라이, 우유와 커피도 나왔다. 아침 8시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이라 수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몰려 있었다. 점심은 옥류관에서 순모밀로 된 평양냉면과 빈대떡을 먹었다. 개성에 가서는 한 관광객이 상점에서 4백 달러 부르는 공예품을 2백 달러밖에 없다하니, 그 값으로 흥정이 됐다.

 

이번 관광목적인 아리랑축전은 요금이 40달러, 60달러, 100달러 등 가격에 따라 자리가 구분됐다. 카드섹션을 시작으로 축전이 시작됐다. 기가 막히게 잘했다. 특히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하는 종합 마스게임(집단체조)은 세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10만 명이 펼치는 화려함과 웅장함에는 누구든 놀라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과연 이 거창한 행사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하는 상념에 빠져, 생각이 복잡해 졌다.

묘향산으로 가서 국제친선전람관을 구경했다. 전람관 주위엔 군인들 경계가 삼엄했다. 안내원은 ‘군인들과 사진을 찍거나 말을 걸지 말라’고 특별 주의를 줬다. 보현사 대웅전에서 부처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속히 통일이 오기를 기원했다.

전람관 내부에는 지미카터 부부가 기증한 미화20달러 정도 유리그릇이 있고, 금송아지로부터 각종 진기한 명품 및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선진국일수록 값싸 보이는 평범한 선물이고, 후진국일수록 값이 올라가고 있었다. 김정일 전람관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남한 재벌들의 선물이 놓여 있고, 현대 정주영 회장이 기증한 다이내스티 승용차도 전시돼 있었다.

 

평양에 돌아와 공중곡예(서커스)단 구경을 했다. 역시 곡예기술이 세계적 수준이었다. 평양에서 우연히 만난 5-6세 어린이와 사진을 찍을 때다. 어린이 얼굴이 내내 무표정이라 안타깝게 생각됐다.

떠나기 전날 한 번 더 야시장으로 가서 평양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야시장 상인들은 호객행위가 없고, 계산이 어두워 보였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다. 청구된 전화요금에 깜짝 놀랐다. 토론토 전화통화 3번(25분)에 미화 150달러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리랑축전 행사 후 안내원들에게 팁(1인당 10달러/33명)을 전했다. 누구 한명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 북한주민과는 언어뿐이 아니라, 의식수준도 비슷해져야 통일이 이루어지겠다고 느꼈다.

 

송광호 북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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