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민이 북한주민들에게 자유라는 희망을 보여 주다

한미옥 전국지방선거 인천광역시의회의원 후보

림일 기자 | 기사입력 2022/05/18 [12:47]

[인터뷰] 탈북민이 북한주민들에게 자유라는 희망을 보여 주다

한미옥 전국지방선거 인천광역시의회의원 후보

림일 기자 | 입력 : 2022/05/18 [12:47]

61일은 제8회 전국지방선거의 날이다. 남한의 지방의회에 해당하는 북한의 도··군 지방인민회의 대의원선거는 4년에 한 번 진행된다. 후보자는 100% 노동당에서 추천받은 이들로 다른 후보는 없고 단수후보뿐이다. 북한주민들은 선거당일 투표장소에 가서 선거요원이 주는 투표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간다. 그 곳은 가림 막도 없으며 행사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령(김일성·김정일) 사진에 인사 하고 받은 투표지 선거함에 넣고 나오면 끝이다.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 자유롭고 비밀스러운 선거 문화를 보며 놀라움과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이번 제8회 전국지방선거에 탈북민 사회에서 다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탈북민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선거 출마자가 탄생했다. 올해로 남한생활 10년 차인 탈북여성 한미옥 경기여명연합회장이 소속정당 남북통일당최고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인천광역시 의회의원선거 단독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인천시 논현동서 인천시의원 기호4번 한미옥 후보를 만났다.

- ‘남북통일당을 소개해 달라.

탈북민역사에 당사자인 탈북민들이 직접 만든 첫 정당이다. 20202, 서울 영등포 전경련회관서 탈북단체장 및 탈북민 200명이 참여 남북통일당창당발기인대회가 진행됐다. ‘남북통일당은 전국 5개 지부가 있고 회원은 5.000명 전부 탈북민이다. 그해 3월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 창당 준비는 어떻게 하였는가.

언제까지 남한정치권의 정당에 들러리나 서는 탈북민들이 되어야 하는가하는 반응이 높았다. 하여 20201월초,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사무총장의 노력으로 여러 탈북단체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참여 고민을 하였다.

이후 2월까지 서울서 있은 1~4차 준비모임에 참석한 탈북단체장은 20, 여기서 남북통일당창당발기 취지문이 나왔고 중앙당 및 지역당 구성안 등이 토의되었다. 분명 우리만의 특성을 갖고 싶은 욕망이 컸다.

- ‘남북통일당의 의미는 뭐라고 보나?

세상이 다 알고 있듯이 북한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독재정권이다. 세계서 가장 폐쇄적인 봉건노예 국가인 북한에서 우리 동포들은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산다. 그곳에서 뛰쳐나온 3만 탈북민은 분명 2천만 인민의 대표이다. 북한주민들에게는 당과 수령,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도망간 탈북자들이 정당을 만들었다는 것자체가 매우 충격적 소식이다. 김정은 독재정권에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당사자인 탈북민들이 직접 만든 첫 정당

20202월에 서울 영등포 전경련회관서

탈북단체장·탈북민 200명 발기인으로 참여

남북통일당창당발기인대회를 갖고 출범

 

 - 이번 지방선거 출마 경위가 궁금하다.

20204, 21대 총선(국회의원 선거)남북통일당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었다. 3만 탈북민 중 누구보다 남북통일당에 애정과 관심이 많은 한 사람이다. ‘남북통일당은 중앙선관위에 공식 등록된 정당이다. 그런데 선거법에 따라 군소정당은 전국지방선거에 의회의원 후보를 내지 않으면 자동으로 등록이 말소된다. 한마디로 당이 없어지는 것이다. 탈북민과 북한주민의 희망인 남북통일당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당 지도부에 표시했다. 지도부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적극 지지해주었다.

선거구 지역은 지난 12일 인천광역시의회의원선거 남동구 제3선거구에 등록했다. 해당지역은 남동구 논현1·2, 고잔동이다. 주민은 대략 41.000여 세대에 달하며 유권자는 약 7만 여명으로 추산한다.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50%만 돼도 많은 것이다. 남한에 입국해서 받은 첫 주거지가 인천 논현동이다. 올해로 10년째 사는데 제2고향이나 다름없다. 고향 주민들을 위해 힘껏 일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할 것이다. 슬로건은 인천의 새바람! 시민의 효녀!”이다.

- 지역에 탈북민은 대략 어느 정도 있나.

탈북민 지성호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인천광역시에 2,934명이 있고 이중 남동구에 1,957명의 탈북민이 있다. 전국서 서울, 경기 다음으로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탈북민은 2천만 북한동포 대표라는 점에서 분명 상징성이 있다. 통일의 협력 대상은 김정은 독재정권이 아닌 북한주민과 탈북민이다.

 

인천시의회의원 남동구 제3선거구에 등록

남동구 논현1·2, 고잔동...41.000여 세대

유권자는 약 7만 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어

 

남한입국 후 받은 첫 주거지가 인천 논현동

10년째 살고 있는데 제2고향이나 다름없어

주민들 위해 일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할 것

슬로건 인천의 새바람! 시민의 효녀!’로 정해

 

- 어떤 선거 공약을 하였는가?

우선 각 동마다 무료급식소를 설치하고 모든 초등학교에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교실을 확충하겠다. 내가 초등학생을 키우다보니 엄마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무주택자, 주거취약 계층을 위한 임대아파트 건설을 더 많이 유치하겠다. 탈북민, 이산가족, 다문화가정 지원정책을 개선하고 노인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겠다. 독거노인, 장애인에게 주1회 가정방문 및 도시락 제공하며 영세자영업자 지원제도를 마련하겠다. 서해지구 바다 쓰레기수거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겠다는 생활에 필요하고 실행 가능 한 것을 공약으로 걸었다.

또 대로와 이면도로변에 붙일 현수막(90cm×5m) 40개를 만들었다. 포스터 93장 인쇄했는데 이중 63장은 등록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거기서 일괄적으로 묶어 홍보한다. 벽보포스터(50cm×10m) 60장 만들었으며 명함 5,000장 발행했다. 거리에서 홍보할 때 어깨에 두를 선거 홍보띠 10개를 준비했다.

- 탈북민사회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나?

북한서 함께 탈북한 부부가 남한에 와서 이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유는 동사무소에서 받는 생계비 때문이다. 이혼한 아내와 아이는 한부모 가정이 되어 생계비를 탄다. 이런 위장이혼이 정작 경우에 따라 진짜이혼이 된다. 법적으로 남남인 남녀가 다른 이성을 자주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눈이 맞아 빚어지는 현상이다. 북한에서 우스갯소리로 식량난에 여기저기 떠돌다가 눈이 맞아 동거하는 성인남녀를 ‘8·3부부’(가짜부부) 라고 한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생계비 때문에 진짜부부가 ‘8·3부부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문제의 본질은 탈북민 정착지원 행정서비스를 남한사람과 똑같이 적용해서 그렇다. 그러니 북한서보다 더 잘 살겠다고 목숨 걸고 찾아온 자유의 땅, 이 좋은 곳에서 이혼부터 하고 살아야 하니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혼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당사자인 본인(부부)들은 물론 아이들이 받는 영향과 마음의 상처도 내심 깊을 것이다.

 

무주택자, 주거취약 계층 위한 임대아파트

건설 유치에 최선...탈북민, 다문화가정 등

지원정책을 개선하고 노인일자리 많이 창출

독거노인, 장애인 주1회 방문, 도시락 제공

생활에 필요하고 실행 가능 한 것으로 공약

 

-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탈북민은 주거지 걱정만 없어도 70%는 정착했다고 본다. 현재 탈북민은 정부가 제공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사는데 월수입이 500만 원 이상이면 나가야 한다. 요즘 공사장서 한 달 일해도 500만 원 받는다. 기술직이면 더욱 그렇다.

탈북민은 임대아파트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온갖 편법을 쓴다. 남의 통장을 빌려 돈을 맡기든지, 자동차도 타인 명의로 등록하든지, 어디에 투자하든지 등 갖은 방법이 등장한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별의별 사기꾼들이 다 기승을 부리고 또 말려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민들은 남한의 법을 잘 모르니까.

그로 인한 후과는 크다. 고소고발 당하고 변호사를 사야하고 여기 저기 불려 다녀야 한다. 종당에는 벌금을 내야하고 주거지에서 강제퇴거를 맞기도 한다. 탈북민들은 열심히 살려고 했다가 임대아파트 퇴거문제가 발생하니 한숨을 쉬는 경우가 많다. 결국은 일부 사회정책이 탈북민들을 정착 못하고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특례조항을 만들어 탈북민에 한에서는 주택거주 문제를 양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 태어난 고향은 어딘가.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19721월에 태어났다. 형제는 6남매 중 넷째, 부친은 조선인민군 OOO군부대 노무자, 어머니는 부양(주부)이었다. 부친의 직무특성상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주로 함경남도 북청군, 리원군 등에서 살았다. 부친은 내가 16살 때 불치병으로 사망했고 언니와 오빠는 학교졸업 후 사회합숙생활을 했다. 또 다른 오빠는 장애인이었기에 사실상 내가 세대주(가장)나 다름없었다. 고등중학교 3학년 때 중퇴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였다.

- 탈북 경위가 궁금하다.

19965월 중순, 혜산 지역서 압록강을 넘었다. 첫 탈북이고 연길에서 4개월 별장관리 일을 했다. 이후 도시에서 식당일을 했고 20044월 공안단속에 걸려 북송되었다. 도문, 온성보위부, 단련대(강제노역장), 청진집결소를 거쳤다. 20049월에 대홍단 지역에서 두 번째 탈북, 2년 뒤 중국공안에 의해 체포 및 북송되었다. 20072월 무산에서 다시 탈북했으나 7월에 세 번째로 북송되었다. 이때는 재판에서 3년 징역형을 받고 함흥9교화소에 수감되었다.

지옥 같은 함흥9교화소에서 20109월 당창건기념일(1010)에 즈음해 대사령(사면)을 받아 출소했다. 단지 살려고 세 번 탈북 한 것이 모두 체포·북송되었으며 3년 가까이 짐승처럼 노역을 치렀다. 이때부터 내가 태어난 그 제도가 실제는 인민에게 고통을 주는 참 나쁜 사회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다행히도 첫 탈북 후 중국서 8년간 숨어살며 기독교를 믿었고 그 신앙으로 북한교화소서 견뎌냈다. 20111월 무산서 국경을 넘어 연길로 다시 갔다. 거기서 3년간 숨어 살다가 태국을 거쳐 201311월 남한으로 왔다.

 

함남 정평군에서 19721월에 태어나

살려고 세 번 탈북 했으나 모두 체포

북송...3년 가까이 노역 치르고 깨달아

무산서 국경 넘어 연길서 3년 숨어 살다

태국을 거쳐 201311월 남한에 입국

 

 -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인데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나?

선거는 돈이다. 광고를 하고 명함을 돌리고 무엇을 하려해도 돈이 든다. 그런데 선관위에 신고한 총재산이 35백만 원 정도인 내가 남들처럼 크게 선거운동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선거유세차도 준비 못했다. 519일부터 시작되는 공식선거운동에 그냥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한 표를 부탁하겠다.

특히 하고 싶은 말은 7천만 민족의 숙원인 한반도 평화통일은 반드시 북한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독재정권과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보려고 해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북한주민들의 진실한 마음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녘의 2천만 우리 동포에게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 꼭 인천시의회의원이 돼야 한다. 열과 성의를 다해 뛰는 기호4번 한미옥 후보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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