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생명을 거는 게 선거인가 보다

박신호 작가 | 기사입력 2022/06/15 [18:05]

[모란봉] 생명을 거는 게 선거인가 보다

박신호 작가 | 입력 : 2022/06/15 [18:05]

<박신호 방송작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싸웠던 크고 작은 선거가 끝났다. 전쟁이 끝난 곳은 으레 여기저기 피가 흐르기 마련이니 전 국토에서 당분간 비린내가 진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처절했다. 선거가 어찌 이리도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이 됐는지, 달리 취업할 직장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난다.

 

자고로 선거는 경쟁이니 치열하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에 봐도 아무리 마음이 착하고 유해도 반장 선거 때 보면 치열했다. 상대에게 진다는 게 싫어서이고 굴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하물며 어른들 세상의 선거야 오죽하랴 싶다.

그렇긴 해도 이번 대선과 지선을 통해 벌어진 험악한 말싸움들은 끔찍스러웠다.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떨어진 한 후보는 선거라면 지긋지긋하지도 않은지 숨 돌릴 사이 없이 지선에 출마하더니 당선이 아슬아슬하다는 여론 조사를 듣고 하는 소리가, “이번에 떨어지면 ‘끽’이다”라고 했다. ‘끽’이라니? 죽는다는 뜻이 아닌가. 선거에 떨어지면 절벽에서 떨어지나? 누가 목이라도 매다나?

 

우리 집안에 대선에 출마한 사람은 없어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가 여럿 된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가족뿐 아니라 가까운 친족까지 고생하게 된다. 몸으로 떼는 선거운동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누구는 유세 다닐 때 타고 다닐 차 한 대를 대라, 누구는 현금으로 얼마를 내라, 이런 식으로 반강제 공출하다시피 했다. 그럼 할 수 없이 빚을 져서라도 배당받은 자금을 내야 했다. 다시 보지 않을 남남도 아니고, 당선되면 자식이라도 좋은데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도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랬다가 낙선하게 되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 친족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하는 걸 봐 왔다.

 

선거에는 뒤끝이 심한가 보다. 그러기에 대선에 나간 사람이 ‘끽’이란 말까지 쓴 게 아닌가 싶다. 선거에서 지면 ‘끽’이라니... 참 살벌한 직업 전선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살벌하게 치른 선거에서 당선되면 뭘 하겠다는 건가? 나라 위해, 국민을 위해, 주민을 위해 죽기 살기로 헌신하겠다는 건가?

 

할아버지가 다 큰 손주를 태우고 병원에 가면서 물어본다. “인석아, 이번에 투표 꼭 해” “싫어요” “뭐야?” “해서 뭐해요” “해서 뭐하냐니?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몰라서 그래?” 20대 녀석인데 영 관심이 없다. 50대 자식 둘이 선거 때면 나름 투표했다고 나한테 알리곤 해서 아비의 권위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갈수록 정치인들이 하는 짓이 영 제멋대로라 참다못해 참여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끽’할 소리나 듣고 있어요”

 

몇 달 시끄럽던 선거도 끝났다. 코로나 19도 가라앉는가 보다. 태양은 나날이 뜨겁다. 미루어오던 해외여행들을 가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전보다 여행비가 갑절이 든다지만 잘도 간다.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2년 반 감옥살이하느라 자동 비축했던 자금 털어서 간다는 거다. 계산서지 않는 젊은이들인 줄 알았더니 계산이 다 있었다. 보기 좋다. 하지만 ‘끽’ 소리한 후보가 국회의원이 됐으니 계산이 있어나 없었나. 민망하다.

 

2년의 공백은 길다. 아무리 수명이 늘었다지만 일생에 2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길고 긴 잃어버린 2년을 너 나 없이 이제부터라도 되찾으려고 한다. 2년이면, 특히 노인들에게는 굉장히 길고 긴 시간이다. 코로나 2년 사이에 얼마나 숱한 운명이 달리했는가. 그걸 생각해서도 앞으로는 한 시간을 열 시간처럼 활용해야 하는데 뭣부터 해야 할 건지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가에 꽂힌 파일들을 열어 본다. 언젠가 쓸 자료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다가 비닐봉지에 꾸겨 넣어 버렸다. 책 한 권정도 만들 글은 이미 기다리고 있다. 또 써서 뭐 할 건가. 더구나 온라인 시대에. 이제부터는 무한을 향해 이곳저곳 구경이나 다녀보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위로 공연을 떠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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