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선] 일사각오의 시대정신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2/06/15 [18:15]

[시 선] 일사각오의 시대정신

통일신문 | 입력 : 2022/06/15 [18:15]

<조인형 4·1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시대정신이란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방관해서는 안 될 시대적 난제(難題)에 대한 국민의 행동정신이다.

예컨대, 고려시대에 몽골군이 한반도에 침략하였다(고종 18, 1231). 고려의 무신정권은 몽골군이 해전에 약한 점을 이용하여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40여 년간 장기항전을 하였다. 육지의 처인성 전투(1232)에서는 김윤후의 화살에 맞아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이가 사살되었으며, 충주성에서는 노비들로 구성된 부대가 몽골군을 물리쳤다. 전쟁에 지친 몽골군은 고려왕 대신 태자라도 몽골에 와서 강화를 맺으면 고려의 주권을 인정하겠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제의하였다. 이 틈을 이용하여 문신들이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후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1369)하였으나, 무신 세력과 삼별초 부대는 끝까지 결사 항전하였다.

임진왜란(선조 25, 1592) 때, 일본군의 한반도 침탈 때에는 전국의 뜻있는 선조들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일본군에게 항거하였다. 특히 우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항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의 애국적 항전정신과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뛰어든 의기(義妓) 논개(論介)의 살신성인의 애국적 의인정신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우리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이것은 나라의 모든 주권을 일본에게 침탈당했다는 말이다. 조선은 일본군의 총칼 앞에 굴복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1919년 고종황제의 인산일을 계기로 3·1독립항쟁이 전국적으로 노도와 같이 일어나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감리교회에서 만세를 부르기 위해 태극기를 만들던 청소년 22명 중 19명이 일본군이 교회에 불을 질러 불에 타 죽고, 2명은 탈출 중 사망하고, 1명만 살아남은 참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3·1독립항쟁을 계기로 국외로 탈출하여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억압을 뚫고 벌린 이러한 국내외의 독립항쟁은 선조들의 일사각오의 애국정신의 발로였다. 이런 선조들의 독립항쟁을 전개하던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과 더불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의 기쁨은 잠시뿐, 남북한은 38도선을 중심으로 분단되었다.

3년간의 군정을 거쳐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해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북한은 1950년 6·25 남침으로 국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함에 따라 이 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엔군의 도움에 따른 1950년 9월 15일 맥아더장군의 인천상육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북진하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월 4일 후퇴와 진격을 거듭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남북통일이다.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제일의 걸림돌은 무엇인가? 북한 정권은 이념을 구실로 공적 국가권력의 전제적 독점, 99% 참석에 100% 찬성투표, 인간의 비판 자유와 인권의 억압, 핵무기 공포 조성 등 반민주적 독재 행위를 남북한 겨레들은 언제까지 방관할 것인가? 지금은 주권재민의 민주화시대이다. 세계적 독재자들은 물러가란다고 순순히 물러가지 않는다. 독재자들은 갈 데까지 간다.

3·1운동이나 4·19혁명 때와 같이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대응하지 않는 한, 평화통일은 결코 거저 오지 않을 것이다.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정신으로 시대정신에 응답할 때 통일의 서광이 비쳐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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