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봉] 내려가야 하는 등산

통일신문 | 기사입력 2022/09/15 [22:22]

[모란봉] 내려가야 하는 등산

통일신문 | 입력 : 2022/09/15 [22:22]

<박신호 방송작가>

참 질기고도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힌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괴롭히다 못해 이젠 창살 없는 감옥에서 7일간이나 가두기도 한다. 특별히 국가의 명령을 받지 않고 살아온 몸이 다 늙게 준수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됐다. 갑자기 내 육신이 내 육신이 아닌가 싶어졌다. 별수 없이 난생처음 독수공방 독거노인이 될 수밖에.

코로나라는 병이 심한 몸살을 앓게 하는 감기몸살과 별로 다를 게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혼자 독방만 차지하고 있으면 되는 게 아니란 게 문제다. 수시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일일이 외부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하니 이건 한 사람이 징역을 사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받는 거나 진배없다. 더구나 아내의 손만 수시로 빌려야 하니 더 괴롭다.

격리 첫날, 하루 사이에 영어의 몸이 되면서 하루의 일과가 이렇게 단순 명료할 수 있나 싶어졌다.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깨고 마음대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봐도 될 뿐만 아니라 매일 수염을 깎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스크는, 독방이지만 급식 시간과 용품 배달시간에는 비록 문밖 조달이지만 필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니 반 자유 영어생활이다.

코로나 확진이라고 특이할 건 없는 것 같다. 체온이 38도선을 넘으면서 온몸이 심한 감기몸살에 시달릴 때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80대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숫자가 매일 늘고 있다는 소식이니 겁이 안 날 수가 없다.

침상에 누워 천정만 보고 있노라니 은퇴 무렵이 떠올랐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자 직장동료들의 표정도 마냥 즐겁지만 않아 보였다. 겨우 나이 60안팎인데 앞으로의 진로를 고심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 술자리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10명이 결집해 은퇴 후 주말마다 등산가기로 결정했다. 처음 등산 말이 나왔을 때, 질질 땀을 흘리며 그 고생을 해가며 산을 오르는 짓을 하자니? 나는 무덤도 언덕처럼 높아 보여 올라가지 못한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구나 하루 15시간은 예사로 사무실에서만 근무했던 몸이 중노동에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등산 첫날, 초보 티가 뚝뚝 떨어지는 새 등산복 차림으로 관악산 입구로 나갔다. 특별히 등산베테랑 동료가 날 전담했다. 올라가지 않을 기세만 보이면 등을 밀었다. 울다시피 정상에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니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마저 혼미했다. 아예 드러눕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하산하잔다. 천근만근 몸을 일으켜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잉?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베테랑 동료가 올라갈 때보다 더 걱정하며 곁에 바짝 붙었다. 등산사고는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더 많이 발생한다면서 천천히 가라고 성화다. 그러나 마나, 격리 생활을 하는 동안 머리는 낡은 필름들로 꽉 찼다. 초보 등산 필름도 돌아갔다. 무심히 돌려보다가 멈췄다. 문득 내가 등산을 건성으로 다닌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등산을 처음 했을 때다.

“도루 내려갈 산을 왜 기 쓰고 올라와 이 고생이야?”

“내려오는 걸 배워야지”

“내려오는 걸 배워?”

“인생에 올라가는 길만 있나? 내리 막 길도 있잖나”

“그걸 왜 굳이 땀 빼면서 등산에서 배우나?”

“정답은 자네가 찾아 봐”

내 인생의 정상은 언제였었는지 되돌아본다. 공직생활 기간이었나?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집필하던 기간이었나? 아니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위태위태하게 하산 중이지 않은가. 삐끗하면 골절상을 입을 수 있고 심하면 벼랑 밑으로 추락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난생 처음으로 80세를 넘기며 큰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공식 집필 생활도 마무리가 났다. 내려가야 하는 등산길에서도 막바지에 올라선 거다. 올라갔으니 내려가야지. 언제 다 내려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천천히 내려갈 거다.

 

  • 도배방지 이미지

북한의 강...대동강의 풍치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