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지역 유학생 망라… 대표조직으로 성장

재일유학생 결집해 민족의식 고취한
이옥, 유원우 10월 독립운동가 선정
독립기념관, ‘학지광’12호 등 9점 전시

송두록 기자 | 기사입력 2022/10/04 [20:07]

동경지역 유학생 망라… 대표조직으로 성장

재일유학생 결집해 민족의식 고취한
이옥, 유원우 10월 독립운동가 선정
독립기념관, ‘학지광’12호 등 9점 전시

송두록 기자 | 입력 : 2022/10/04 [20:07]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재일유학생을 결집, 민족의식 고취한 이옥, 유원우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10. 1~ 10. 31까지『학지광』12호 등 9점이 전시 된다.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의 기회가 흔치 않았던 한국인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조선인일본유학생친목회가 1895년에 설립된 이후 다양한 유학생 단체가 생겨났으나 1910년 강제병합에 저항하며 다수의 유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활동이 정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912년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在東京朝鮮留學生學友會가 출신 지방별 유학생 친목회의 연합체로 설립되어 동경지역 유학생을 망라하는 대표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기관지 ‘학지광學之光’ 발행, 운동회·강연회·웅변회 개최 등의 활동을 통해 재일한인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됐다. 특히 1919년에는 2·8독립선언을 주도해 3·1운동의 기폭제를 마련했다. 1931년 2월 스스로 해체를 선언할 때까지 유학생 단체를 넘어 독립운동단체로서 일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였고, 올해로 설립 11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옥은 189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이후 경북 안동 지역의 유력가 및 학교, 종교 등을 조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하는 조사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였고 이듬해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의 서무부장과 총무로 활동하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에는 유학생들의 피해상황을 조사·지원하기 위해 서울에 꾸려진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東京地方罹災朝鮮人救濟會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유학생 조직 재건을 위해 힘썼다. 1924년 대학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와 시대일보 이사, 신간회 간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이옥의 공훈을 기려 2009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유원우는 1901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재학 중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실행위원, 신간회 동경지회 초대총무간사로 선임되어 재일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동경 지역에는 재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를 비롯해 노동, 청년,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한인단체가 있었는데, 이 단체들의 연합체로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가 탄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간회 동경지회가 조직될 수 있었다. 1929년에는 학우회 대표로 피선되어 일본 전국에 신간회 조직을 확대하려다가 일제에 붙잡혔다. 정부는 유원우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송두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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