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람에게 인권이란?

그들이 ‘인권’이라는 뜻을 알게 하는 데 그것을 먼저 안,
그리고 맘껏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주기를
세계인권의 날을 맞으며 간절히 호소한다

장소연 기자 | 기사입력 2022/12/21 [14:50]

북한사람에게 인권이란?

그들이 ‘인권’이라는 뜻을 알게 하는 데 그것을 먼저 안,
그리고 맘껏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주기를
세계인권의 날을 맞으며 간절히 호소한다

장소연 기자 | 입력 : 2022/12/21 [14:50]

지난 1210일 세계인권일에 토론토 한 탈북기자가 보낸 글이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나는 두만강을 건넜다. 그때 집에는 아픈 아버지가 홀로 있었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먹을 것을 꼭 구해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다. 그날은 나의 아버지 생일이었다.

 

1997년부터 1999년 사이에 함흥에서는 특별히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초봄부터 간간히 길에 맥없이 앉아있거나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띠더니 여름에는 점점 늘어났고 죽음의 기운이 온 도시에 떠돌았다.

 

도시에 버려져 있는 시체가 너무 많아 전문 시체 처리반이라는 것이 생겼다. ‘시체처리반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체들을 거두어 자동차에 실어서 가까운 야산에 가져다 파묻는데 주인을 알 수 없는 시체들은 그냥 큰 구덩이를 파서 한곳에 몰아넣고 묻어버렸다.

 

 



함흥시내 가까운 야산들은 온통 이런 무덤들로 뒤덮였다. 친구네 집에 갈 때 꼭 지나야 하는 나지막한 산언덕에는 하루가 멀다하게 빨간 흙무덤들이 생겨났고 어떤 무덤들은 깊게 파지도 않아서 살점을 파먹으러 온 새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자주 볼수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가족도 스쳐가지 않았다. 외삼촌은 굶주림에 헤메이다 콜레라에 걸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파라티브스라는 전염병에 걸렸다.

 

나는 집에서 팔수 있는 것은 다 팔아 장마당에서 설탕과 찹쌀, 약을 사서 간신히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아지자 내가 콜레라에 걸렸다. 하루 만에 나는 뼈만 남은 사람이 되었고, 전염병의 사체 실 옆에 있는 병실에서 수없이 실려 나가는 시체를 보고 곡성을 들으며 죽음은 그렇게 나의 가까이에 맴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갖은 정성을 다해 나를 살렸다. 그 해 여름, 그 전염병동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나를 비롯해 몇 사람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는 더는 않아서 굶주리고 병에 걸려 죽기를 기다릴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열흘이면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두만강을 건너 어렵게 찾아간 중국의 친척집에서 처음들은 말은 김일성, 김정일이 죽일 놈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 소스라치게 놀랐고 심장이 떨렸다. “어떻게 하늘같은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감히 이름만 부르며 욕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의 지도자 동지께서 얼마나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애쓰고 계시는데...”

 

하지만 그 친척이 집에서 기르던 개에게 하얀 쌀밥을 아무 주저 없이 던져주는 것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애로운 어버이밑에서 쌀은커녕 개도 안 먹는 옥수수밥도 없어서 굶어죽은 수많은 사람들이 형상이 그 개 앞에서 어른 거렸다.

 

북한에서 우리는 개보다 못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정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완전히 깨닫는 데는 그때로 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야 했다.

 

그때로부터 7년 후 나는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하나원교육을 마치고 남한사회에 첫발을 디딘 다음날 나는 지인과 함께 서울 시내구경을 나왔다. 지인은 자기가 일하는 곳이 근처에 있다며 함께 가기를 권했다. 무작정 따라갔던 그곳에는 그날 마침 현판제막식이 있었다.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밖에 정성껏 만들어진 단체 현판이 붙여졌다.

 

북한인권시민연합나는 그때 그 현판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북한인권! 이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인간에게 권리가 있다? 나는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뭔가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나의 온 몸을 감쌌다북한을 위해서 북한사람들의 인간다움을 찾아주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했다. 그리고 목 놓아 외치고 싶었다.

 

콜레라에 걸려 쓰러져 시체도 못 찾은 나의 외삼촌, 말 한마디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간 아버지의 친구, 장마당에서 남들이 먹다 남긴 국수 국물을 얻어먹으려 눈이 초롱초롱해서 기다리고 있던 그 꽃제비 아이들, 중국 땅에서 돼지로 불리우면서 팔려다닌 나의 친구들, 그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에게, 또 지금도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북한사람들에게 권리가 있답니다. 옥수수밥도 없어서 굶어죽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고,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매일 닦고 절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해도 감옥에 가지 않을 권리가 있답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자유의 땅을 찾아서 갈 권리가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인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난 2011, 캐나다 연방외무부는 존 디펜베이커 자유인권보호상을 제정하고 북한시민연합에 그 첫번째 상을 수여했다. 나는 바로 그 역사적인 순간에 캐나다 오타와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있었다.

 

오는 12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의 날을 선언하면서 다시는 2차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 세계가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75년이 지난 지금, 북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가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시기 일어난 대부분의 인권침해가 타국민에게 이뤄졌다면 김정은은 자기 한사람을 위해 전 국민을 노예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인권유린의 가장 잔학한 행태는 바로 생각할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 지금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김정은의 핵무기 질주에 대항할 힘은 바로 북한인권운동에 있다. 그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주민들이 그들의 인권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될 때, 자유의 세상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김정은과 대항할 힘을 가지게 될 때, 그 핵무기는 무력화 될 것이다.

 

그들이 인권이라는 그 뜻을 알게 하는 데 그것을 먼저 안, 그리고 맘껏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주기를 오늘 세계인권의 날을 맞으며 간절히 호소한다.

 

장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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