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쩌다 나라 걱정하는 말만 하면 아내는 곧바로 ‘애국자 나셨네’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도 자주 해서 그만하라고 했더니 근래에는 안 하지만 내색은 여전히 애국자 났네, 하는 표정이다. 어디 나만이 애국자겠는가. 우리 국민이 다 애국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겉으로는 정부나 지도자가 나라 살림을 잘 못하면 습관적일 정도로 욕부터 하고 보는 국민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둘로 보면 애국자가 많다. 많은 외국인이 증언하고 있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단시일에 자유민주주의 나라를 이룩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나라는 한국뿐이다”
“바로 코앞에 북한이라는 공산주의 적과 대치해 있으면서도 날로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한편 조언도 하고 있다. “당신들은 너무 겸손하다. 이젠 자긍심을 가지고 더 당당해도 좋다”
필자는 일제 강압기에 소학교에 들어갔고 6, 25 전쟁 발발 직전에는 중학생이 되었으며 서울 수복 직후에는 송진이 흐르는 목총을 어깨에 메고 군사 훈련받으면서 휴전 협정을 반대해 북진 통일을 외친 세대다. 나라 사랑을 누구보다 더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후배들은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 걸 느낀다. 우선 나이 많은 세대면 낡은 세대로 치지도외 하려고 한다. 한 수 접으려고 한다. 그러니 충돌하기 십상이다. 연륜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건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핸드폰을 들면 통화보다 카톡으로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나 카톡도 나름이다. 친목 단체가 여럿 있어 그룹 채팅을 하다가 보니 수시로 딩동거려서 견딜 수가 없어 불편했더니 묵음으로 하란다. 그랬어도 신경이 자꾸 가 아예 단절했더니 항의성 카톡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엊그제부터 카톡에서 비밀로 나갈 수 있게 돼서 여간 홀가분하지 않다. 하지만 몇 사람과는 계속 카톡을 하고 있는데 엊그제 재밌는 카톡이 한 통 왔다.
“지금 떠도는 소문 중 이름난, 놈, 년들?”이란 제목의 카톡이다. 지우려다가 읽어 갔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그대로 적힌 대로 옮길 수는 없는 내용이라 이름은 생략하고 몇 가지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문제 많은 놈 000’이라고 써 놨다. 이런 식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죄명 많은 놈 000’ ‘세상에서 제일 독한 년 000’. 이런 식이다. 이름까지 밝히면 더 흥미진진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곧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이란 글과 이름을 빼고 더 옮기면 ‘못된 놈 000’ ‘괴팍한 놈 000’ ‘간사한 놈 000’이 있는가 하면 ‘싸가지 없는 놈’도 있고 ‘밥맛 없는 놈’에 ‘거짓말 잘하는 놈’에 최근 화제에 오른 국회의원에게는 ‘욕 나오게 하는 놈’이라고 했다. 대게는 짐작 가는 대상이다.
이런 글을 댓글이라고 해야 하는지, 좋은지 나쁜지 따지기 전에 잠시 생각하게 하는 카톡임은 분명하다. 특히 입법기관이라며 서슬이 시퍼런 젊은 사람이 어쩌다 돈독에 올라 치명적인 댓글 대상이 되고 고약한 처지에 오르게 됐는지 모르겠다. 우리 세대처럼 일찍이 나라 사랑의 새마을 교육이라도 받았더라면 이런 비극에 오르지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한둘이 아닐 테고 그만 밖에 안 되는 그릇인 것을.
날 보고 입버릇처럼 애국자라고 말하던 아내가 어느 날 수십 장이 되는 A4용지를 건네주며 한 번 읽어보란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은 글인데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라며 내민 글을 읽었다. 멈칫하기도 하고 잠시 음미하기도 하며 다 읽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자서전처럼 남겨 두고 싶은데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판매하는 책으로 말고” 첫 책, 첫 장, 첫 글 한 편을 감히 소개하고 싶다.
[봄과 여름 사이] 꽃도 피우고 버거운 옷도 벗겨주고 푸른 잎, 오색 꽃 온 세상을 채우곤 심술궂은 봄바람이 입혀놓은 꽃잎을 마구 벗겨도 미움 없이 내 몸도 내어주리. 봄이여. 네 자리 채워 줄 여름이 오면 잘 있다 가니 봄을 즐긴 놀이터에 화려한 여름옷을 무거운 도톰한 옷을 시원한 파도 날개로 감싸 주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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