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5월 16일 서울 시청 앞의 밤은 해방구였다

송두록 기자 | 기사입력 2023/05/17 [14:54]

[현장] 5월 16일 서울 시청 앞의 밤은 해방구였다

송두록 기자 | 입력 : 2023/05/17 [14:54]

516일 밤 9시 경, 민주노총에서 노숙 시위를 한다는데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궁금해서 시청역에 가 봤다. 완전 해방구였다. 시청 앞 잔디밭에는 민주노총 조직원들이 돗자리, 스티로폼 또는 비닐 쪼가리 등을 붙여서 빈 공간 하나 없이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소주병, 막걸리 병을 들고서 술판을 벌이고 있고 누워 있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지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거나 아니면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내일 아침쯤이면 저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나 쓰레기 들이 짓눌린 잔디들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겠지 싶으니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이곳은 일반 시민들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던 잔디밭이다. 서울시민들이 고이고이 간직해오던 잔디밭을 도대체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 길래 저렇게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짓밟고 있나. 저런 권리가 어디서 나오나. 그리고 지키고 서 있는 경찰은 뭘 하는 자들이며, 이 잔디밭을 관리하는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다들 어디 갔나. 경찰은 신고 된 시위 시간을 어겼으면 강제로라도 해산시켜야 했고,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이들이 마음대로 들어가서 드러눕지 않도록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가관은 길 건너 덕수궁 쪽이었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경향신문사 가는 쪽으로 그 중간 무렵까지 돌담길을 따라 민주노총 사람들이 눕거나 둘러앉아서, 담배를 피워대고 소주 등을 마셔대고 있었다. 길 저쪽에서 오던 젊은 데이트족이 두려운 듯 조심조심 오는 모습이 보였고, 노인 부부가 많이 언짢은 모습으로 마치 앞개울의 징검다리 건너듯 민주노총 조직원들이 누워 있는 사이사이로 오고 있었다.

 

 

대한문 근처에서 경비하며 서 있는 경찰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아니, 저렇게 길거리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간접흡연을 시키게 하면 되겠냐고, 못하게 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기가 막혔다. 자기들은 서울 경력이 아니고, 지방 도시에서 차출되어 와서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니, 이 사람들은 한국 경찰 아닌가? 그 지방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담배를 피워대도 괜찮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더 어이없었던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그 경찰들 가운데 어떤 경관이 정 그러면 112에 신고하라고 방법을 가르쳐줬다. 그러면 경찰차가 올 거란다. 그렇게 해야겠다 싶어서 112에 신고를 했더니 신고 받은 경찰 왈, 거기서 담배 피면 범법행위라고 생각해서 신고하는 거냐고 되묻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혐오스러웠다.

 

 

길 가던 시민이 지나가다 보니 지금 이런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신고하면 그럼 곧 출동해서 범법 여부를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라고 해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건 뭐? 뭘 그런 걸로 신고하냐는 식으로 신고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듯 하니, 이는 또 어느 나라 경찰인가, 참 대단한 경찰공무원들을 모시고 사는 우리 시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담당 경찰공무원의 전화가 왔다. 근처 무슨 파출소에서 근무하는데 신고 받고 왔다는 것이다. 1분 내로 온 것이 대단히 신속해서 놀라웠는데, 그다음부터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중에 바로 앞에 있는 한 무리 중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만 가서 주의를 주고 오더니 그게 끝이었다. 달랑 두 명의 경관이 와서 덕수궁 돌담길 따라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수백 명의 민주노총 조직원들을 어떻게 단속 지도할 건가.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래서 이태원의 그 좁은 골목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구나. 지금도 이렇게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불법으로 야숙을 하고 있는데도 적극 제지하지 않고 경비선다면서 그냥 서 있기만 하고, 그러다가 112에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그때 알아서 대처했노라는 식의 치안 유지 방식이니까 그랬구나.

 

 

 

이러다가 저 사람들 가운데에서 술 먹다가 패가 갈라져서 대판 싸움판이 벌어지거나 아니면 누가 시너나 휘발유 등을 잘못 취급해서 큰 불이라도 나서 죽거나 다치면 어떻게 할 건가. 그래서 법이 있는 것 아닌가. 당장 지키기에는 번거롭더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각자가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았으면 한다. ‘악법도 법이라면서 독배를 마시고 죽어간 그리스의 현인 소크라테스가 위대하게 보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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