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화교들에 함께 어울릴 공간 제공과 생계지원금 후원”

[인터뷰] 설립 19년째인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

림일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3/06/07 [17:04]

“탈북화교들에 함께 어울릴 공간 제공과 생계지원금 후원”

[인터뷰] 설립 19년째인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

림일 객원기자 | 입력 : 2023/06/07 [17:04]

북한에서 인권은 일제의 식민지서 짐승처럼 살던 인민들이 민족의 영웅김일성 장군이 이룩해준 해방을 맞아 생겼다고 교육한다. 인민이 주인이 된 사회주의국가서 문명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참된 인권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런 훌륭한 사회주의 제도를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위대한수령님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아도 죽어도 오직 수령을 위해서, 무엇을 해도 당과 국가의 번영을 위함이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사회에서 살던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야 비로소 인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인권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개인에게 차려진 고유한 권한, 즉 말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고 자유롭게 유동할 수 있는 권리 등이다.

인간으로써 응당 누려야 할 이런 권리도 모르고 살았던 탈북민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혜택을 준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탈북난민인권연합 김용화 회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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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난민인권연합은 어떤 단체인가.

북한도 엄연히 UN에 가입한 국가라면 35천 탈북민은 전부 난민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난민은 종교 및 정치적 박해를 피해 자국을 탈출하는 사람으로서 정확히 탈북자에게 맞는 소리이다. 탈북화교, 여러 가지 사안으로 탈북민 인정을 못 받은 탈북자들을 물질, 정신적으로 돕기 위해 2005년에 서울에서 설립했다.

 



 

- 조직구성과 설립 목적은.

탈북난민인권연합은 해외난민들의 인권지위와 보호·구출을 위한 여론조성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홍순경 전 태국북한참사, 상임이사는 남윤정 서울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이다. 10명의 직원이 자원봉사로 일한다.

현재 중국과 제3국에 떠도는 불법체류 신분의 탈북자들이 대략 20~30만으로 추정한다. 인민생활을 나몰라하는 북한독재정권이 버린 탈북자들을 구출하고 그들이 남한에서 정착을 잘하게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아무래도 탈북자를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탈북민들 자신이다. 동변상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 과거 성과가 있었다면.

지난 19년간 우리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나서서 구출(중국에서 제3국을 거쳐 남한으로 입국한 사례)한 탈북민은 대략 6.000명 이상이다. 이 중에 상당수가 어린이, 여성, 노인 등이며 가족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것은 정부가 소리 소문 없이 은밀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민간단체가 나서서 하니 기가 막히다. 그래 가지고 언제 통일을 하겠는지 남한정부의 태도를 보면 가끔은 답답할 때가 많다.

 

탈북난민인권연합은 탈북민 인정을

못 받는 이들 물질적 정신적으로

돕기 위해 2005년 서울에서 설립

해외난민들 인권지위와 보호·구출

위한 여론조성 등을 목적으로 활동

 

- 남한의 정권마다 특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긴 하다. 2011년부터 4년간 정부에서 탈북자 브로커비용 1인당 200만원씩 간접적으로 보조해주던 시기가 있었다. 탈북자의 북송위험을 돈으로 막은 것이다. 그때가 탈북자입국 최고 전성기로 연평균 2.000명 이상 입국하였다.

문제는 5년마다 바뀌는 정권 따라 정책도 다른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입국한 탈북자는 고작 수백 명. 물론 코로나19라는 특수사정도 있었지만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중국내 북송대기 중인 탈북자 전부를 수용할 수도 있다.

- 결국 탈북은 돈 문제라는 소린가.

당연하다. 돈만 있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수백 수천 명씩 데려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휴전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남북협력 및 통일기금으로 수조원이 쌓여있다. 이런 돈으로 외국에서 난민으로 전락한 우리 탈북동포들을 데려오면 좀 좋겠는가?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권이 이런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 북한의 화교는 어느 정도 있나.

북한에는 공식적인 통계가 없지만 대략 5만 명의 화교(중국 국적의 북한영주권을 갖고 있는 중국사람)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 2009년 북한당국의 무리한 화폐개혁 때 불이익을 당한 화교 2만 여명이 중국으로 넘어온 숫자를 빼고 남은 숫자다. 북한의 화교들은 양국의 공식허가를 받아 비교적 자주 양국을 드나든다.

 

돈 있으면 수백 명씩 데려올 수 있어

남북협력·통일기금으로 외국서 난민으로

전락한 탈북동포들 데려오면 좋을 텐데

남한 정치권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

 

정부가 결심하면 중국내 북송대기 중인

탈북자 전부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

 

- ‘탈북화교는 누구를 말함인가.

화교의 자녀가 북한을 벗어날 때 생기는 존재들이다. 우리(탈북민)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에서 태어난 것은 탈북민이 맞는데 현실은 애매모모하다. 우선 중국정부는 화교의 자식은 북한주민이라 하고 남한정부는 탈북민이 아니다고 한다. 어쩌면 정치적 문제라고도 보여 진다. 중국정부는 북한의 탈북민 송환(북송)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것이고 남한도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확실한 결정을 못하는 것이다.

 - 대표적인 사례를 말해 달라.

지난 2009년 화교 공혜림(당시 32, 여성) 씨가 남한에 입국하였다. 한국정부서는 외국인수용소에 보냈고 2년 후 중국으로 추방했다. 그녀는 다시 북한으로 추방되었고 결국은 고향에서 공개총살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한 사실이다.

화교 김화걸(62, ) 씨는 한국에서 외국인수용소 수감을 마치고 중국에 가서 또 수감되었고 다시 한국으로 추방되어왔다. 끝내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서 지금은 아무 일도 못하고 그냥 허송세월만을 보내고 있다.

-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

탈북화교 A 씨는 지금까지 10년 정도 무국적자이면서 체류자격은 ‘F1 비자’(친척방문 비자) 수준으로 되어있다. 이 비자로는 은행계좌 개설은 물론이고 취업이 불가능하며 의료혜택 등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일당노동(노가다)은 가능하나 그것도 악덕 업주에게 악용되면 일하고도 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A씨는 현재 알코올 중독자로 산다. 동물에게도 철저한 보호법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탈북화교들이 현재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산다. 과연 북한서 화교자손으로 살다가 남한에 온 탈북화교들에게는 희망이 없는지 궁금하다.

- 탈북화교 문제 복안이 있는가.

탈북화교가 남한에 위장입국 해서 탈북민 보호신청을 해도 정부는 해주지 않는다. 외국인수용소에 1~2년 수감되었다가 다시 중국으로 추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다시 묻는다. 북한으로 가겠냐? 한국으로 가겠냐?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국적은 못주더라도 영주권 같은 것을 주어서 최소한 일하고 의료혜택 정도는 받게 해주었으면 한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은 엄연히 사실이 아닌가.

 

화교 자녀는 북한 벗어나서 생기는 2

탈북민 시각으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은

탈북민이 맞는데 현실은 애매모모 해

중국정부는 화교 자식은 북한주민이고

한국정부는 탈북민 아니다하고 있어

 

한국정부가 이들에게 국적은 못주더라도

영주권 같은 것을 주어서 최소한 일하고

의료혜택정도 받을 수 있게 했으면 기대

 

-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국내에 대략 100만 명이 넘는 조선족(중국에서 태어난 한인)이 체류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 동북3성 사람들이다. 이들은 남한에서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충분한 인권을 누리며 돈을 벌고 있다. 우리 탈북민들이나 국내 체류 조선족에 비교해도 지금의 탈북화교들에 대한 처우는 정말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 일리가 있는 소리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한국정부에서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교포가 한국에 불법 체류했던 것을 단속해서 일본으로 보내지 북한으로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탈북화교를 북한으로 돌려보낸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한국정부가 탈북화교에 대해서 인정을 안 해주는 것은 지나친 중국의 눈치 보기라고 보여 진다. 특히 한국은 5년마다 정권이 바뀌니 그것도 사실 문제다. 특히 문재인 정권이 북한 김정은 정권만큼이나 중국눈치보기에 급급했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534, 평남 순안(현재 평양시 순안구역)에서 출생했다. 형제는 6남매 중 넷째. 영예(상이)군인 출신의 부친은 조선민항(지금의 고려항공, 인민군에서 운영함) 순안비행장 기술과 세포비서였고 모친은 비행장합숙 식모이었다.

196910월 순안비행장 기능공학교(6개월)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했다. 신병훈련 후 정주자동차운전병학교(1)를 졸업, 소위계급을 받고 4군단 27사단 차기수(중위, 차량관리지도)로 근무하였다. 군단에는 차량관리과장이 있다. 군단사령관은 전용차량이 2, 정치위원은 1대 있었다.

 

어떤 한국인에게서 받은 30만원으로

300kg 쪽배 구입... 18일간 서해바다

노 저어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 도착

1995625일 오전 10시쯤 가까운

해안파출소 찾아 북한에서 왔다자수

 

- 군에서는 언제 제대하였는가.

1980년 가을에 제대하여 함흥철도안전부 승무지도원(철도경찰, 상위)이 되었다. 한 개 열차에 오르는 승무안전원(철도경찰)은 조장(대위)5명이다. 열차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범죄가 단속대상이 된다. 공민증(주민등록증), 통행증 검열은 기본이고 도둑, 패싸움, 사회질서 위반자 등이다. 보통 한 개 열차에 법규위반자 30~40명 있는데 그걸 단속하자면 피곤하다. 일부는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 탈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89평양세계청년학생 축전을 1년 앞둔 1988년 봄, 내가 승무했던 소련(러시아)서 들어오는 군수열차 7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전부 당위원회서 추궁, ‘동지비판’(사상투쟁)을 받게 되었다. 출당, 제대는 기본이니 조용히 외국(중국)서 자살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1988725, 압록강을 넘어 길림 연길로 갔다.

연길서 11개월간 걸어 선양, 천진, 곤명을 거쳐 베트남 하노이로 갔다. 하이퐁항서 한국무역선에 승선하려다 체포돼 2년간 수감, 북송직전에 탈옥했다. 라오스로 밀입국하다가 체포되어 9개월 수감, 탈출하여 중국 산둥성 하이양현으로 갔다.

- 그 후 행적은 어떻게 되는가.

거기서 어떤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30만원으로 300kg 쪽배를 샀다. 그것을 타고 18일간 망망대해 서해바다를 노 저어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도에 도착했다. 1995625일 오전 10시 경. 가까운 해안파출소에 찾아들어가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왔다고 자수했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한국 밀입국용으로 위조한 중국신분증 때문에 20여 차례 재판을 받고도 탈북민 인정을 못 받았다. 하여 3년간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었다. 1998년 병보석으로 나와 명동성당으로 가서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들의 보호를 받았다.

그해 4월 일본으로 밀항, 체포되어 오무라수용소에서 3년간 옥살이했고 변호사 4명의 도움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일본인 2천여 명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탄원편지를 써서 한국입국이 허용되었다. 2001년 국회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비보호 탈북민 중에는 30여명의 탈북화교가 있고 이중 11명이 우리 단체가 돌보고 있다. 이들에게 함께 어울릴 공간 제공과 소정의 생계지원금을 후원한다. 최소한 남한에서 통일이 되는 날까지 참된 인권을 누리며 살게끔 해주는 대한민국 정부였으면 정말 좋겠다. 70세가 넘었지만 적극 노력하겠다.

 

림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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