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끔찍하고 잔인한 드라마에 열광한 적이 있다. 넷플렉스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한 오징어게임은 한탕주의에 몰려드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징어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이지만 원칙을 벗어나거나 탈락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 핵심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단순한 원칙으로 그어져 있는 셈이다. 인간적인 고뇌나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게임의 법칙에 따라 처리된다. 또한 이 드라마가 특이했던 것은 대의나 명분도 없이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가볍게 다뤘던 드라마나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드라마에서 게임에 예외를 두거나 변칙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흥행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협상이나 담판에서 원칙과 기준이 모호하거나 흔들리게 된다면 상대를 제압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오징어게임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일상화 되는 느낌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과의 은밀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은 어느 때보다도 엄중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마다 과거에는‘레드라인’이 곧잘 언급되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나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통제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사전적 의미에서 레드라인은 '양보할 수 없는 한계선'이라 하지만,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있어 레드라인을“제네바 합의를 위반할 정도의 핵개발 혐의가 포착될 경우나 대규모 대남 무력도발의 반복적 실시”등의 행위중심의 개념으로 정의한 바 있다.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수준과 매체를 통해 쏟아낸 말 폭탄은 레드라인을 수차례 넘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마치고,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수시로 발사되는 시점에서의‘레드라인’은 공허한 단어일 뿐이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에 대해“남측을 타격할 의도가 없으며 오로지 미국에 대한 적대정책에 대응할 뿐”이라며 꾸준히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은 남한에 대한 공격적인 의도와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남한을 향해 수차례의 미사일 공격훈련을 하는가 하면, 8월 29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점령을 전제로 한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방문해 지도하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레드라인의 언급은 어느새 약효를 얻지 못한 채 북한의 내성만 키운 결과가 되었다. 북한은 지속적인 핵무력 완성을 위해 자신들에 가해지고 있는 대북제재가 무색하게도 끊임없이 핵과 신형무기를 개발해왔으며, 군사적 도발을 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미국의 글로벌호크를 닮은 무인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9월 8일에는 전술핵공격 잠수함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실전에 필요한 군사용 정찰위성의 발사를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발사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에 매우 둔감해져버렸다. 마치 서서히 끓는 물속에서 탈출할 시점을 놓치는 개구리처럼 상황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처한 상황은 돌파구를 찾아야 할 단계에 몰려 있는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제재로 인해 겪고 있는 내부문제를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개혁·개방 등 경제정책보다는 군사적 가속페달을 밟아 상황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쉬운 선택이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우리에게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전제한 대남전략으로 귀결될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운반체, 전술핵 공중폭발, 핵잠수함 등 일련의 성과는 핵을 앞세운 북한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은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잠들어 버리는 것과 같다.
더욱 두려운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남한에 부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자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징어게임과 같은 레드라인의 설정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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