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인권상황 유럽에 알려...그들 외면하면 역사가 우리 심판할 것”[인터뷰] 탈북여성 한송이 재영북한인권운동가유럽의 영국과 독일 등지에 탈북민들이 정착을 한 것은 2010년 이후부터다. 다른 나라 이민자들에 비해 소수의 인원이지만 나름 오랜 역사의 한인사회에 잘 융합이 되어있는 편이다. 유럽에 정착한 탈북민들 중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로지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북한인권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 방문 중인 영국거주자 한송이 재영북한인권운동가를 동작구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언제부터 영국 런던에서 살았나. 10년 전인 지난 2014년부터이다. 그 전까지 서울에서 살다가 전역한 국군장교 출신의 남편과 함께 영국으로 갔다. 사회복지 정책이 서울보다 훨씬 잘 되어있는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 2명을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운명 같은 일이 생겼다. 내가 탈북민이기에 나 혼자 행복하게 산다면 무의미할 것 같아 북한동포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고민 끝에 북한인권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일에 몸을 던졌다.
- 런던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동은. 작년 2월 16일 런던에 있는 북한대사관 앞에서 김정은 정권을 성토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김정일의 생일날 영국의 친북인사들이 북한대사관에 몰려 추모행사를 하는 걸 보고 분통이 터졌다. 북한동포들은 식량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죽은 수령을 추모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자신들이 북한서 겪은 배고픔과 추위의 아픔을 세상에 폭로했을 뿐이다.
- 어떤 내용으로 집회를 했나. 북한에 금쪽같은 어린아이를 두고 온 어느 탈북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 배고픈 아이에게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이지 못한 엄마의 죄책감을 눈물로 쓴 편지다. 그 글을 읽는 내 가슴이 미어터지듯 숨이 막히고 분노가 치밀었다. 시위를 시작한지 40분 쯤 지나서 우리에게 항의하려 나온 최일 대사에게 경찰이 “이들은 합법적 시위를 한다. 당신들이 반대할 권리가 없다”며 최 대사를 강제로 밀어 넣다시피 했다. 북한당국의 국제적인 망신이다. 탈북민들에게 북한은 좋으나 싫으나 고향이다. 해외서 자국국기를 보면 고국을 떠올리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북한대사관은 지역주민들의 따가운 시선 탓에 자국국기(인공기)도 게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저토록 한심한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과거 우리의 조국이었다고 생각하니 허탈한 심정이다.
작년 2월 16일 런던 북한대사관 앞에서 김정은 정권을 성토하는 집회 진행... 항의하는 북 대사에게 경찰이 “이들은 합법적 시위를 한다 당신들 반대할 권리 없다”며 대사를 강제로 밀어 내...국제적인 망신당해
- 영국에 탈북민은 얼마나 되나. 현재 영국에는 대략 800~900명의 탈북민이 있다. 이중 700~800명은 런던 남서쪽의 한인타운 뉴몰든 인근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해외에서 가장 큰 탈북민사회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며 어디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편이다. 독거노인 등 나이 드신 분들의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향수는 너무나 애절하다. 세월만큼 빠른 것도 없다는 생각이 쉽게 든다.
- 탈북민으로 보는 한국과 영국의 차이는. 한국에서는 ‘탈북민’ 하면 국민들이 두 시선으로 본다는 느낌이 많았다. 하나는 동정심, 다른 하나는 경계심이다. 영국에 사는 탈북민 중 과거 한국에서 “나 탈북민이다!”고 당당히 말하고 살았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나 같은 젊은 엄마들이 그렇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탈북민이다!”고 말해봤자 좋은 점은 별로 없다. 현재 영국에서 사는 모친의 경우를 봐도 한국에서 노인들이 북한사투리 때문에 주변의 이상한 시선을 받은 고통도 분명 있었다. 영국에는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이 많은 영국에서는 적어도 외국인 차별 같은 것은 한국보다 덜 심하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는 코리안 하면 다 같은 한국인으로 알지, 남한 북한 잘 모른다. 내가 탈북민이라고 하면 대단한 사람이었던지? 아니면 특별한 사람으로 안다. 속으로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현재 영국에 900명 탈북민 살고 있어 800여명이 런던 남서쪽의 한인타운 뉴몰든 인근에 거주... 해외에서 가장 큰 탈북민 사회라고 보면 될 듯
한국에서 노인들이 북한사투리 때문에 주변의 이상한 시선을 받은 고통 받아 영국에서는 외국인 차별 같은 것 없어 탈북민을 대단· 특별하게 보고 있는 듯
- 런던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개인유튜브채널 ‘NKTOUK’(북한에서 영국으로)를 운영하고 있다.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2천만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실상을 있는 그대로 유럽사회에 알리는 것이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럽의 중심지고 한인들ㅇ이 가장 많이 살고있는 나라이다. 북한당국도 영국을 미국만큼이나 비중 있게 대하는 나라다. 과거에는 동부독일이었는데 지난 1990년대 초반 동구권 사회주의가 망하고 북한의 유럽외교 중심은 런던으로 옮겨졌다고 보면 비교적 맞는 표현이다. 가장 유익한 방송을 한 것은 탈북민들이 서울에서 북으로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이 불쾌하다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김정은 독재자다. 일명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린 대북전단금지법은 한국정부에서 위헌판결을 내려야 정상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알았는지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작년 9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좋은 방송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유튜브채널 ‘NKTOUK’ 운영 목적은 2천만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실상을 있는 그대로 유럽사회에 알리는 것...영국은 역사적으로 유럽 중심지고 한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
- 또 다른 주제는 어떤 것인가. 해외서 살아보니 교민사회는 한국의 어떤 정부인가에 따라 대북정책, 북한인권 등에 대한 관심도가 들쑥날쑥하다. 서울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반대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북한타도 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것은 한국의 대북정책이 정권마다 다르기에 생기는 현상으로 정말 답답하다. 북한은 70여 년간 변함없이 하나의 대남정책인데 한국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자기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서로 다른 대남정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유럽 사람들은 한국의 통일정책을 아는가. 전혀 모른다. 어쩌면 나의 유튜브 활동 목적에 이것도 들어간다. 현재 한국의 정치권이 통일한국의 걸림돌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주도의 평화통일을 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통일의 주체이고 동포인 2천만 북한주민에게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알려주고 그들이 한국을 바르게 알 때만이 통일의 싹이 틀 수 있다.
영국에 있는 한인단체로 총 회원은 약 4만 여명이 되고 임원은 30여명이다. 올해 1월부터 제36대 재영한인총연합회(회장 황승하) 2년 임기로 이사직을 맡았다. 아울러 재영탈북민총연합회 대외협력부장도 겸해서 맡고 있다. 탈북민단체인 재영탈북민총연합회와 한인단체인 재영한인총연합회가 서로의 힘과 지혜를 모아 든든한 끈으로 신뢰관계를 맺고 영국의 한인사회를 정의롭고 안전한 교민사회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있다. 탈북민 첫 재영한인회 이사로 너무나도 과분하다. 어린 나이만큼 어르신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배우며 일을 하려고 한다. 한인회가 하는 일은 한국의 국경일(4대 명절: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을 맞아 현지서 진행하는 각종 국위선양행사 등에 교민들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 등이다. 또한 교민사회 단합 등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다.
통일 주체이고 동포인 2천만 주민에 한국의 현실 알려주고 그들이 바르게 한국 알 때 통일의 싹이 틀 수 있어
- 재영NK힐링문화모임은 뭔가. 영국에는 탈북민 어르신들도 적지 않게 있다. 점점 나이가 드시니 거동도 불편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을 한 자리에 초청해 오락이나 말동무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활동하자는 모임이다. 현재 21명의 노인이 이 모임에 동참하기로 했고 30명을 목표로 올해 9월 정식 단체개설을 진행하려 한다. 센터가 되면 지역자치 단체로부터 일정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 서울에는 자주 오는가. 작년 8월 태영호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I am from North Korea” 주제로 탈북민들이 참여하는 ‘제18회 영어로말하기대회’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서 열렸는데 거기에 참석해서 2위를 하였다. 남북하나재단이 후원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는 어김없이 현재 10년 째 열리고 있는 사단법인 ‘북한인권’의 매주 화요집회 등 북한관련 행사에 꼬박꼬박 참가하고 있다. 보통 3~5개의 행사에 참여하여 김정은 독재집단 성토에 힘을 보탠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884년 1월 함남도 함흥서 출생했다. 부친은 영예(상이)군인, 모친은 주부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XX수산사업소에 배치 받았다. 직장서 주는 식량배급은 쌀 100g도 없으니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개인장사를 해야 했다. 개인한데서 디젤유를 수 리터씩 사서 100리터짜리 용기에 채우면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개인선장에게 몰래 파는 디젤유 장사를 1년 남짓했다. 대략 25~30%의 이윤을 남기고 판다. 안 좋은 일이 많다. 금속(구리·아연), 밀가루, 쌀, 알판(한국 CD) 장사 등을 했다. 내게서 알판을 빌려간 사람이 단속되어 보위부에 긴급 체포되었다. 보위부 구류장에 3주간 갇혔고 밤10시~06시 취침시간을 제외한 온종일 머리 숙이고 앉아 있었다. 모친이 돈 100만원(쌀 2t을 살 금액)을 보위부에 뇌물로 바치고서야 겨우 조용히 풀려났다.
- 탈북은 왜 하게 되었나. 식량배급을 안주니 다시 장사를 했다. 이후 보위부가 또 나를 체포하려는 정보를 알았다. 인신매매에 걸리더라도 탈북을 하겠다는 정보를 중국지인에게 알렸다. 바로 연락이 왔고 2006년 10월 1일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인신매매에 걸려 강제시집을 갔다가 3개월 만에 도망을 쳤다. 이후 중국지인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있는 큰이모를 찾았다. 라오스, 미얀마를 거쳐 태국 방콕의 국제난민수용소에 들어가 6개월을 보냈다. 2007년 9월 한국에 왔다.
-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 있는 대한민국 교민들이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에 적극 관심을 갖고 많은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김정은 독재자의 발굽 아래 사는 2천만 북한동포들은 21세기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동포인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면 먼 훗날 역사는 우리를 가혹하게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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