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휴지장들과 오물짝”을 남쪽에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로 보냈다. 김여정의 5월 29일자 관련 발표에 따르면 남쪽이 “께끈한 오물짝들을 주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분 더럽고 피곤한가를 체험하게” 보냈다고 한다. 오물을 모으고 담았을 북한 주민이 먼저 체험해야 한 것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일방적으로 북으로 보낸다면, 외부 시각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회 노리는 도발의 정당성 주장할 수 도
최첨단 탄도탄 불꽃을 쏘아 올리는 막간에 오물폭탄까지 날리는 김정은, 그가 아니면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짓을 벌이는 김정은이 한편으론 짠하다. 김여정의 말대로 남쪽은 “서푼짜리 화페짝과 물건짝”을 넣어 보내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다. 몇 배의 돈이나 선물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할 현실이다. 수십 배 더 잘 사는 남쪽으로 괜히 어쭙잖게 뭘 보냈다가 오히려 망신당할 것을 번연히 아는 김씨 오누이다. 오물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그럼에도 오물로 남쪽을 타격한다는 선전선동으로 체면 세우려는 애잔함이 가슴에 닿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필자는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를 자제할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요청했다. 첫째, 윤 정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 정상화’,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에 김정은이 큰 불만을 가진 상황에서 전단 살포가 김정은 도발에 명분을 줄 수 있다. 둘째, 북한이 남쪽으로 무얼 날려 보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으로 보낸다면, 외부 시각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기회를 노리는 김정은이 도발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셋째,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에 진실을 알리고, 그들의 삶과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이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 주민이 아니라 김정은만 쳐다보았기에 민간단체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 정부는 북한 인권 증진이란 기치를 진작 내걸었고, 국제사회와 함께 실천을 노력하고 있다. 더구나 윤 대통령 자신이 “북한 주민들도 가능한 한 (자신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육성으로 지시했다.
비난이 일 수 있는 민간단체의 일방적 대북 전단 살포 자제돼야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비난이 일 수 있는 민간단체의 일방적 대북 전단 살포는 자제되어야 했다. 어떻게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열 것인가에 관해 정부와 시기·규모·방법을 긴밀히 협의해야 했다. 이런 고려를 하는 중에 김정은의 오물폭탄은 다행스러운 것으로 다음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첫째, 우리가 전단 기구를 북쪽으로 보내도 김정은이 도발로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남쪽이 기구를 자신의 통치영역에 보낸다하더라도 군사적 타격이 아닌 이상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에 명분이 약함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전과 같이 사격으로 대응하면 문 정권과는 다른 윤 정부가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해 강력히 맞대응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 김여정이 대남 “삐라 살포가 우리 인민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쪽의 대북 전단 살포에 “몇 십 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며, 남쪽은 오물을 “계속 계속 주어 담아야 할 것”이라고,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계속할 뜻도 밝혔다. 북한이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이고 인정한 이상, 그동안 예의주시 자중해온 민간단체에게 ‘표현의 자유’를 자유롭게 보여줄 기회가 온 것이다. 서해 백령도부터 동해 고성에까지 “김정은·김여정이 존중한다는 ‘인민의 정의로운 표현의 자유’에 입각해 우리 마음을 북쪽에 전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대북 전단기구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일은 김정은·김여정이 남쪽의 전단 기구에 총격이 아닌 오물폭탄으로 대응하는 것이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대규모 살포를 유인해 무력 도발의 기회로 삼으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 운운이 하루아침에 한순간에 불 뿜는 총알로 바뀔 수 있다. 그들의 지난 행태가 그러했다.
김정은이 사용한 풍선이 안보에 미칠 영향, 군사적 의미 분석 대응책 마련해야
윤 정부는 김정은·김여정이 주장하고 옹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따른 민간단체의 비군사적 대북 기구에 만약 북한이 군사적으로 도발해 올 경우,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맞대응할 것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이 사용한 풍선이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 군사적 의미를 면밀히 분석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북의 풍선이 남쪽 전역에 도달할 수 있음을, 우리 역시 풍선에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을 김정은·김여정이 안 이상, 이들이 풍선으로 무슨 행태를 벌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북 확성기 재개 검토가 영향을 준 것인지 북한이 오물폭탄을 잠정 중단한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노리는 것은 윤 정부를 흔드는 것이고, 오물세례 보다 명분과 정당성을 가지면서 뜨거운 불세례를 남쪽에 퍼붓는 것이다. 김정은에겐 움직이는 대북 전단 기구보다 고정 설치물인 남쪽 확성기가 훨씬 군사적 조치가 용이하고 효과나 가시성도 큰 대상이다. 더구나 대북 확성기는 우리 군이 행하는 군사적 조치이고, 김정은에겐 남쪽의 군사도발로 주장할 명분을 줄 수 있다.
김정은이 내심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대북 확성기 재개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오물폭탄 잠정 중단의 상황일 수 있다. 북쪽보다 우리가 먼저 확성기를 울려서는 안 된다. 군사적 충돌은 없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건 김정은이 도발하여 우리 피해가 발생하면, 거대 야당은 윤 정부 책임으로 몰고 갈 것이다. 대통령 탄핵 목소리로 광화문이 덮일 수 있다. 김정은·김여정이 오물폭탄을 보낸 것은 그만큼 남쪽의 대북 전단에 담긴 내용이 아프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에 대한 남한 사조의 영향이, 대한민국의 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북한 내적으로 이미 체제 전복 혁명기획도 있었고, 선거에서 반대표도 나왔고, 임금체불에 항의하는 폭동도 발생했다. 누르면 눌리고 찍으면 찍히는 북한 주민이 더 이상 아님을 김씨 오누이도 잘 알고 있다.
윤 대통령은 평화 의지를, 김정은에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있음을 국내외에 알려야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처지의 김정은에게, 그의 ‘오물도발’에 대화 제의로 대응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어찌되었건 한반도에 풍선과 기구가 오가는 상황은 좋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스마트한 방법으로, 또한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북한 주민 눈·귀 열기에 더 힘을 싣는 고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군사적 충돌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 현상을 대화로 타개하자고 김정은에게 공개 제안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대화를 받을지 여부와 별개로, 중요한 것은 평화의 선점이다. 윤 대통령은 평화 의지를, 김정은에 대화의 문이 항상 열려있음을 국내외에 분명히 알려야 한다.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번 김여정의 발언에 통일부가 아니라 외교부 대변인이 대응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의 오물도발은 분명히 남북 간의 사안으로 통일부가 나서는 것이 옳다. 김정은이 우리와 동족임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명칭을 사용하면서 별개의 국가라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런 김정은의 행태에 외교부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그의 주장에 호응하는 듯한, 북한을 일반적 국가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된다.
김정은이 무엇을 주장하건, ‘남북기본합의서’(1991.12.13)에서 명시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를 우리는 견지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헌법에 부합한다. 오물폭탄에 이어진 북한의 무력시위에 통일부가 나서기는 했지만, 통일부는 설립목적에 의거해 남북관계 사안에 항상 중심이 되어야 한다. 김정은이 ‘2민족 2국가’를 떠벌린다고 해서, 남북이 한 민족임은 변할 수 없고, 대한민국헌법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자유민주적이고 평화적인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통일’이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통일부는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주장해야 한다. 통일부가 외교부에 흡수되어 외교부 내 남북관계국 조직으로 격하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통일부는 통일부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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