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날은 북녘 동포의 날...“북 주민들 신선한 충격 받을 것”[인터뷰] 탈북민단체 숭의동지회 강진 회장지난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이 있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탈북민 100여명이 초대됐다. 처음 제정된 이날은 매해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하게 된다.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찾는 북한동포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단 한 분도 돌려보내지 않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탈북민들은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한국에 우리의 기념일이 있다는 것에 가슴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이 행사에 참석했던 탈북민 단체 숭의동지회 강진 회장을 만났다.
- 탈북민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소감은. 감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한에 온 탈북민은 물론 해외서 떠도는 탈북자들에게도 관심을 돌리겠다고 하신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정부가 독재정권서 탄압을 받는 북한주민들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며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보인다. ‘북한이탈주민의 날’(매해 7월 14일)은 곧 ‘북녘 동포의 날’이다. 모름지기 북한주민들이 이 소식을 알면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특별히 들었던 생각이 있었는가. 남한은 국민의 선거로 정권이 자주 바뀐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보수정부에서 환대를 받다가도 또 진보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는 찬밥신세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그랬다. 대한민국에서 보수 진보 상관없이 정부가 바뀌어도 통일, 대북, 탈북민 정책 등은 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보수 진보 상관없이 정부가 바뀌어도 통일, 대북, 탈북민 정책 등은 변함이 없어야 해
- ‘숭의동지회’는 언제 생겼나. 지난 1980년 10월 1일에 설립되었다. 그 시절에는 연평균 10명 안팎의 귀순자(탈북자)가 있었고 국민적 환영도 대단했다. 단체의 초기 설립목적은 친목 및 반공단체로 시작했다. 1990년대 북한사회가 최악의 식량난을 겪으며 탈북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2000년대는 연평균 1.000명 이상씩 입국하였다. 이후 선배가 후배를 도우며 국가안보와 평화통일을 위한 사명으로 단체의 기능이 발전되었다. - 현재 단체 구성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단체는 서울과 인천, 수도권, 부산과 대구, 충남 등 16개 지부가 있으며 한 개 지부에 평균 30~40명의 회원이 있다. 전체등록 회원 수는 600명이다. 아마도 회원 수가 이렇게 많은 탈북민 단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나름 자부심이 든다. 모두 회원들의 노력 덕분이고 그들과 함께 앞만 보고 달려온 오늘이다.
‘숭의동지회’는 1980년 10월 설립 그 시절 연평균 10여명 귀순자는 국민적 환영도 대단,,,설립목적은 친목·반공단체...현재는 많이 발전
- 대표적인 활동은 어떤 것을 하였나. 지난 2023년 추석을 앞두고 제4회 탈북민 전국연합봉사단체의 경기도 파주 임진각 주변 환경미화 봉사활동을 수십 여 개 탈북민단체 모두 300명과 함께 했다. 우리 단체를 주축으로 진행한 최대의 탈북민단체연합 행사이다. 임진각 주변 5개 구역으로 나눠 쓰레기, 담배꽁초 등을 줍고 깨끗이 청소하였다. 이어서 망향대 앞에 차려진 조상들의 제사상을 놓고 고향 북녘 땅을 향해 간절한 기도와 묵념을 드렸다. - 탈북민 물품 나눔 행사도 하던데. 올해 4월 모 사업가로부터 수십 박스의 빵을 지원 받아 부천대학교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또한 모 탈북민단체에서 후원 받은 야채와 생활용품 수십 세트를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장애인 가정 등 취약계층에게 나누어 주었다. 단돈 1만원이라도 아껴 고향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어르신들이 많다.
임진각 주변 5개 구역으로 나눠 쓰레기, 담배꽁초 등 줍고 청소
망향대 앞에 차려진 조상들 위한 제사상에서 고향인 북녘 땅 향해 절하며 간절한 기도와 묵념올려
- 고향이 어디인가. 양강도 혜산에서 1973년 4월 출생했다. 고등학교졸업 2년 전 중앙당5과 관리(김정은 경호부대원 선별) 대상이 되었다. 출신성분, 가정환경이 엄선 통과된 상태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5과 대상 선정인원은 양강도서 300명이었으나 졸업 6학년 때 최종 합격자는 16명으로 경쟁률이 치열했다. 중구역 창광동에 있는 중앙당청사에서 군복을 입었고 조선인민군 974부대원이 되었다. 김정은 경호부대이다.
- 사회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2003년 7월 제대했다. 양강도 혜산 소재 김정숙사범대학 혁명역사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추천은 김정일 경호부대 출신이어 다른 제대군인보다 우선 받는다. 2009년 3월에 졸업, 혜산OO고등중학교 교원(교사)으로 임명, 이후 양정사업소(식량관리회사) 작업반 세포비서로 갔다. 학교 교원들의 생활수준은 형편없이 낮다.
전국에 있는 숭의동지회 지부별로 탈북민과 남한주민이 하나가 되는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운영 추진 워크숍 형식으로 수혜자 탈북민에서 봉사자 탈북민으로 거듭나자는 취지
- 탈북 계가가 궁금하다. 생계 수단으로 2014년부터 탈북브로커 일을 하였다. 2015년 10월 보위부 취조를 받았는데 974부대 경력이 참조되어 3개월 뒤 풀려났다. 2016년 1월 탈북희망자 2명을 또 중국으로 넘겼는데 꼬리가 밟혔다. 보위부 취조 두 번째는 정치범수용소행 결정이 대부분이다. 고민 끝에 그해 3월 압록강을 넘었고 5월에 남한에 왔다. -서울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나. 탈북민 정착훈련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첫날부터 건설현장서 노동을 했다.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서다. 운전 및 컴퓨터학원을 다녔고 서울의 대형마트서 영업사원으로 1년간 일했다. 이후 국방부 및 공공기관으로 안보강연을 나갔다. 모 시민단체 부대표, 임원으로 2년간 활동하며 단체운영의 경험과 방법을 배웠다. 2019년 6월 숭의동지회 19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명감을 갖고 하는 봉사 직이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전국에 있는 숭의동지회 각 지부별로 탈북민과 남한주민이 하나가 되는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일종의 워크숍 형식으로 하되 내용은 이제 수혜자의 탈북민에서 봉사자의 탈북민으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진행해오는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장애인 등 돌봄 봉사활동도 계속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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