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조인형 회장님을 보내드리며

조인형 회장님! 이제 다시는 불러볼 수 없다니 목이 메입니다

오경자 수필가 | 기사입력 2025/01/07 [15:50]

[추도사] 조인형 회장님을 보내드리며

조인형 회장님! 이제 다시는 불러볼 수 없다니 목이 메입니다

오경자 수필가 | 입력 : 2025/01/07 [15:50]

존경하고 사랑하는 조인형 선배님, 조인형 장로님, 조인형 교수님! 어떤 호칭으로도 서툴지 않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셨던 이 나라 서양사 학계의 석학 조인형 박사님! 이제 누구에게서 그 해박한 지식과 거칠 것 없는 바른 말씀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1220,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송년회 자리가 조 회장님의 마지막 소집이 될 줄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 섬겨 오시던 회장 책무를 건강상 이유로 더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이번 임기로 마감하겠다고 하실 때 그저 그렇거니 생각했지요. 이렇게 빨리 조 회장님과 작별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바로 사흘 후 23일에 입원하신다기에 잘 치료 받고 나오시라고 흔연히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홍천이라 가기 힘들어 전화만 드렸지요. 어떠신가, 궁금하여 아드님과 통화했을 때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듣고도 곧 좋아지시리라 믿기만 하고 멀다는 핑계로 찾아가 뵈올 생각도 못한 미련함이 이토록 마음에 한이 될 줄을 어디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만, 허망한 작별을 마주하고 보니 가슴이 몹시도 저려 옵니다. “불의를 보고 좌시하면 지식인이 아니라고설파하시던 그 정열, 다 어찌 내려놓고 떠나십니까? “역사를 모르고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는 지론을 평생 굽히지 않으시던 괴력에 가까운 힘은 바로 탄탄한 역사의식에 기초한 신념이었습니다. 서양사 학자로서의 해박한 지식위에, 민주 자유 정의 진리에 대한 신념이 그런 갈파를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1960418일 고려대학교 재학생이던 청년 조인형은 물밀 듯이 몰려나와 안암골 교문을 박차던 학생들의 선봉에 섰습니다. 태평로에 자리한 3,000여 명의 고려대학생들은 3.15부정선거 무효와 민주 자유 정의 진리의 회복을 목이 쉬도록 외치며 종일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 유진오 총장님과 이철승 선배의 권유에 따라 학생들은 순순히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청계천 4가 천일백화점 앞에 학생들이 맨몸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하고 있을 때, 쇠갈고리와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정치깡패들이 학생들을 갑자기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부상 학생들과 책가방 들이 널부러지는 목불인견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 이날 밤의 사건은 영상으로 지금도 그때의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지광, 임화수 등의 정치깡패 일당의 소행으로 밝혀진 이 밤의 사건은 이튿날 전국의 학생들이 뛰쳐나오는 4.19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으며, 드디어 4.19혁명이 이루어져 풍전등화 같았던 이 나라의 민주 자유 정의 진리를 지켜냈던 공로자였습니다.

 

또한 조회장님은 ROTC 1기 장교 출신으로, 강원대학교의 역사학 교수로 후학을 기르는데 평생을 바치며 교회 장로로서 하나님의 일에 온 정성을 다 바쳐 왔으며 선교의 일환으로 러시아 모스코바 대학 교환교수로 다녀오기도 하는 등 하나님의 종으로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사시는 등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장로신문에 오랫동안 원로 지성이란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도 거침없고 날카로운 시대의 소리를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남북통일과 북한 동포에 대한 애정, 북한 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의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아 성명서 등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발 빠르게 발표하는 등 대언론 홍보에도 일가견을 가진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본이었습니다.

 

 4.18민주의거기념사업회의 회장을 맡아 물심양면의 헌신으로 이 단체를 보살피고 이끌고 나온 공로는 너무나 크다 하겠습니다. 차돌처럼 단단한 신념과 차갑기 그지없는 이성의 소리 못지않게, 따뜻한 조인형 장로의 사랑은 주변을 따스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모임 때마다 회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후의는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간식까지 꼭 마련해 내놓는 그 자상한 마음을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이제 그 소박한 사랑을 어디서 맛 볼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수차례의 세미나와 토론회 등으로 우리의 주장을 결집시키고 세상을 향해 화두를 던지며, 주장을 펼쳐내는데 언제나 열정을 가지고 매진하셨습니다.

 

시대의 외침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지도자요, 선구자였던 조인형 회장님, 사랑의 실천에 힘쓰셨던 조인형 장로님 이제 우리가 편히 손 놓아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오경자 수필가


작금의 이 나라가 온통 가마솥처럼 들끓고 있지만, 민주, 자유, 정의, 진리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해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조 선배님의 열망이 결코 물거품이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통일과 인권의 문제도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서 곧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고통과 슬픔이 없는 천국에서 예수님 품에 안겨 만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복잡한 일일랑 모두 잊으시고 가볍게 떠나십시오. 부족하지만 남아 있는 우리들을 믿고 편히 가소서. 안암골 호랑이들이 그 뒷일은 맡겠습니다. 천군 천사 호위 속에 빛나는 얼굴로 평안히 올라가시는 하늘길이 밝아 무척 기쁩니다. 모든 시름 내려놓고 훌훌 올라가시옵소서.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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