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풍요로워지고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의 대한민국.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과연 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 정의는 살아 있는가? 진리는 존중받는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정신은 여전히 이 땅에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답은 쉽지 않다.
각자도생의 피로 속에서 신뢰가 무너진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가끔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이준 열사와 같은 ‘큰 어른’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세계에 대한제국의 독립 의지를 호소하다가 끝내 순국하신 이준 열사는 단지 외교적 수단을 도모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깨달은 것을 실천하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 곧 ‘한국의 혼’을 몸소 보여준 큰 어른이었다.
그는 ‘일성(一醒)’이라는 호를 남겼다. “하나의 깨달음”이라는 뜻을 지닌 이 호에는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굳은 결의가 담겨 있다. 자주독립을 외쳤을 뿐 아니라, 그것을 민족의 영혼 속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지금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민족정신을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자주독립의 정신, 동포애, 의리, 단결, 개척 정신, 협동과 화목, 그리고 정의와 진리를 위한 자기희생. 이 얼마나 간결하고 명료한 정신의 지표인가.
오늘날 우리는 이 정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편 가르기와 이기심, 무관심과 냉소가 일상이 된 사회 속에서, 이준 열사가 말한 ‘한국의 혼’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 하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결코 많은 인구나 큰 영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인물은 조국의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조국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이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준 열사는 말했다. “사람의 자신 있는 마음은 천만 개의 대포보다 강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신 있는 마음, 곧 확고한 신념과 올곧은 실천이다. 진실을 향한 용기, 공동체를 위한 배려,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헌신이다.
그는 또 말했다.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으니” 우리는 단지 살아 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되게 살아야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 헛된 삶보다 의미 있는 죽음을 택했던 그의 선택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반성과 방향을 제시한다.
혼탁한 오늘의 사회, 우리는 다시 큰 어른을 필요로 한다. 젊은 세대에게 정신의 나침반이 되어줄 참된 지도자,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먼저 말하는 이들, 권력이 아니라 신뢰로 이끄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다시금 이 땅에 나와야 할 때이다.
이준 열사의 어록이 새겨진 수유리의 오솔길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단지 비석의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끌 ‘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 목소리를 오늘의 우리 사회에 되살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큰 ‘각성(覺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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