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56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⓵

초대 국토통일원 신태환(申泰煥)장관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5/04/28 [19:08]

[기획] 56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⓵

초대 국토통일원 신태환(申泰煥)장관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5/04/28 [19:08]

시작이 반이라고 통일문제를 정부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 자체가 발전이었다

 

196931, 분단을 극복하려는 몸짓으로 국토통일원이 출범했다.

 

첫 출발의 장소는 초라했다. 서울 중구 장충단로, 당시 반공회관(현 한국자유총연맹) 건물의 한 귀퉁이를 빌려 출발했다. 그 역사적인 첫 발걸음을 이끈 이는 신태환. 이전에 건설부 장관과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학자였다.

 

  국토통일원 앞의 박정희 대통령 내외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하고, 해방 후에는 연세대, 서울대 교수, 서울대 법과대학장을 역임한 교육자였다.

 

  신태환 초대 통일부장관

 

당시 박정희 정부는 수백 년 가난의 대물림을 떨쳐버리려는 상황에서 통일보다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국민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서독처럼,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북한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로 믿었다. 그랬기에 아직 경제발전의 궤도에조차 오르지 못한 1969년에 국토통일원을 출범시킨 것은 다소간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박정희 정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배경에는 국내와 국외, 두 곳의 심상치 않았던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가져다준 분단극복, 통일의 당위성 제기였다.

 

이산가족 상봉만큼 가슴 뭉클한 사건이 있을까? 그런데 1964109, 한국전쟁 이후 굳게 닫혔던 남북의 장벽을 잠시나마 허문 순간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남의 신문준과 북의 딸 신금단의 극적인 상봉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우리 국민들의 가슴 깊이 다시 새기게 해주었다.

 

물론 그보다 앞선 19604.19혁명이 꽁꽁 얼어붙었던 사회에 통일이라는 두 글자가 조심스럽게 떠오르도록 만들긴 했다.

 

국외 정세 또한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서독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동독과의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1969년은 바로 동서독관계, 대동독정책의 전환기였다.

 

동서냉전에서 데탕트로 흐르는 정세를 감지한 우리 정부는 통일문제 연구를 전담할 기구를 설립하라는 국회의 건의를 수용, 국토통일원을 만들었다.

 

국토통일원은 4.19 혁명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통일 논의들을 체계적으로 수렴하고, 제도화된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신태환 초대 장관은 학자로 통일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와 분석 수행할 적임자

부임 후 국민 통일 의식에 관한 여론조사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 확인

 

신태환 초대 장관의 임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왜냐하면, 학자로서, 통일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와 분석을 수행할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부임 후 국민의 통일 의식에 관한 전국적인 여론 조사를 실시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열망을 확인하기도 했다.

 

  타이완을 방문한 신태환 국토통일원 장관. 69년 7월 24일

 

물론, 당시 남북 간의 관계는 제로 상태였다. 적대적인 긴장관계 속에서 남북회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훗날 어렵게 물꼬를 튼 남북적십자회담조차, 이후락 부장이 이끌던 중앙정보부가 주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토통일원의 출범은 의의가 컸다. 시작이 반이라고 통일문제를 정부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 자체가 발전이었다. 당시 국토통일원의 업무는 오늘날의 통일부의 그것과 아주 달랐다.

 

당시는 통일 문제와 관련된 국내외 정세를 조사하고 분석하며, 미래를 위한 정책 연구에 매진했다. 또한, 국민들의 통일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 학술 단체와의 협력, 그리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다.

 

신 초대 장관은 1969217일부터 197039일까지, 일 년 조금 넘게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한 숭고한 발걸음을 뗐다.

 

신태환은 1912년 인천 출생, 경성고등상업학교,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 졸업, 이론경제학을 전공했다. 특이한 경력으로는 스포츠에 능해 일제강점기 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800미터를 우승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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