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원에 북한 및 공산권자료 특별열람실 설치...북한자료센터 시초[기획] 56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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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희 장관과 박대통령의 1977년 통일원 순시 |
이용희 장관은 박정희 정부 말기에 국토통일원장관으로 임명되어 약 3년간 재직하며, 통일정책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재임 기간은 1976년 12월 4일부터 1979년 12월 13일까지였다.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연구한 학자 출신으로, 교수에서 청와대 대통령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가 국토통일원장관으로 임명됐다. 그의 재임 중에는 통일정책 연구뿐 아니라 조직의 외형적 정비도 했다. 청사를 장충동에서 남산의 KBS 자리로 옮겼다.
북한의 민족 이질화 정책 강하게 우려
남북한 이질화 극복방안에 대해 연구
국내 민간의 통일운동 되살리기 위한
대학·언론기관 부설 통일연구소 지원
1977년 통일원은 북한의 민족 이질화 정책을 강하게 우려하면서 남북한 이질화 극복방안을 연구했다. 국내 민간의 통일운동을 되살리기 위한 국내외 통일관련 전문연구기관과의 연구협력 활성화, 대학 및 언론기관 부설 통일연구소 지원 활성화를 위해 애쓰기도 했다.
민간 연구기관, 단체를 지원하고 연구원들의 북한, 통일문제연구 활성화를 위해 통일원에 북한 및 공산권 자료 특별열람실을 설치했다. 그곳이 북한자료센터의 시초이다.
이 장관은 남북한 간의 이질화를 극복하지 않고는 통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7년 9월, 충남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통일 문제 학술회의 축사에서 북한 정권의 민족 이질화 정책을 강하게 우려하며, 그러한 상황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한이 동일한 민족이라는 전제하에 통일을 추구하지만, 북한에서 한민족의 고유한 특성들이 왜곡, 말살되고 있어 통일의 근본적 기반이 훼손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같은 해 관계 학자 50명과 심포지엄을 열어 방대한 양의 ‘남북 이질화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질화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언어, 예술, 교육, 의식 구조, 가치관, 생활양식 등 전 방위적으로 심각하게 진행 중임을 경고했다.
1978년에는 남북 간에 대화가 없지만, 물밑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며 그에 대비한 연구를 했다. 또 통일안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통일원 통일연구소에서 통일교육의 대상자, 교육지역을 넓혔다.
북한이 계속 민족 이질화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만이라도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국가관, 민족 정통관을 심어주기 위한 정신교육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통일 3대 원칙 보완... 총선거를 통한
단일국가로 통일 이후 국민이 선택할 체제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 자유와 평화
조화된 고도산업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강조
그는 또 대학·언론기관부설 통일문제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특히 지방언론기관이 연구소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훗날 대학, 언론사에서 통일, 북한문제, 남북관계 연구가 활성화된 것은 이때부터 비롯된 측면이 있다.
![]() 이용희 장관 |
이 장관은 1974년에 천명된 평화통일 3대 원칙을 보완했다. 즉 제3원칙을 수정하여, 총선거를 통한 단일국가로의 통일 이후 국민이 선택할 체제는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자유와 평화가 조화된 고도산업사회여야 한다고 말했다.
1979년에 통일원은 남북한의 어느 체제가 민족중흥의 고지에 먼저 도달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기 위해 ‘남북총력추세비교’ 연구를 했다. 그리고 북한의 이질화 현황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남북교류 대책을 연구했다.
또 이장관은 북한실상 및 남북관계에 대한 각종 연구자료를 민간에 확대 개방하여 장차 다가올 남북대화시대 분위기 조성에 노력했다.
임기를 마칠 즈음, 모 국회의원이 물었다. “통일원이 남북관계 전반을 주도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이 장관은 앞으로 남북미 3당국회의 및 남북대화가 이루어질 때는 연구 위주의 통일원 조직은 대폭 재편성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용희 장관은 아버지가 3·1운동의 33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갑성으로, 연희 전문과 졸업(1940년) ▲법학박사(서울대) ▲서울대 문리대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 원장, 유엔 총회 한국대표, ▲1975년부터 대통령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장관급) ▲남북 조절위원, 영·불·독·일·노·중·몽고·「티베트」·만주·「라틴」어 원전을 읽을 줄 알고,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명강사, 취미는 회화사 연구였다. 동양화와 우리나라 미술사는 전문가의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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