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오랜 시간 동안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과거 석탄을 제3국을 통해 판매하거나, 노동력을 ‘중국산’이라는 라벨 아래 숨겨 수출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훨씬 정교하고 감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바로 ‘프리랜서 IT 인력’을 통한 침투 전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의 IT 전문가들이 서방기업에 위장 취업해 외화를 송금하고, 일부는 사이버 공격을 시도하거나 기업 내 기밀정보를 빼돌린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가짜 신분과 차명계좌를 활용하고, VPN과 화상 대리 인터뷰 등으로 신원을 철저히 숨긴다. 표면적으로는 해외의 일반 프리랜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체계적인 지령과 통제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수십 개의 ‘위장 IT 기업’을 통해 글로벌 기업과 연결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제재명단에 오른 북한 관련 기업과 연루되어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결국 이 구조는 단순한 개인의 위장취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보수집 및 사이버공작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점은 이들이 기업 내 시스템에 접근함으로써 보안상의 구멍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악성코드 설치, 데이터 인질 협박, 그리고 산업 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사례에서는 북한 IT 인력이 기업의 중요 기술 자료를 손에 넣은 뒤 금전을 요구하거나, 내부정보를 북한 당국에 보고한 정황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사이버 범죄가 아니라, 제재를 교묘히 회피하며 세계 시장에 침투하는 북한의 전략적 산업 스파이 행위로 해석된다.
이러한 위협은 점점 더 광범위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이력서 하나, 이메일 몇 줄, 화상 인터뷰만으로 신원을 판단하는 현재의 글로벌 고용환경은 북한 정권에게 이상적인 침투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기술기업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위조 이력서 탐지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일부 국가는 북한 IT 인력 활동에 대한 포상 제보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이제 이 위협을 단순한 ‘개인 단위의 해킹’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국가 주도의 전략이라는 점에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의 이러한 디지털 침투 방식은 군사력이 아닌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선이며, 규제와 대응 방식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 차원의 신원검증 강화와 사이버 보안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간 정보공유, 국제 제재 시스템의 디지털 확장, 그리고 사이버 보안에 대한 다자적 협력이 시급하다.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단순히 육로와 해상을 통해 무역을 우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지대를 활용해 정보와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곧 국제사회의 산업, 안보, 인권 문제와 직결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침투 시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경각심을 갖고, 예방적 조치와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디지털 침투가 단지 기업의 기술정보나 재무 시스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많은 개인들의 민감한 신상 정보와 신변에까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개인과 조직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안보 차원의 경각심을 갖지 못한 채, 사이버 보안을 단순한 IT 관리 문제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취약한 보안망을 타고 들어와 인사 데이터, 건강 기록, 금융 정보 등 전략 자산급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양이 북한 내부 시스템에 축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는 현대안보의 심장과도 같은 자산이며, 이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스스로의 생존 기반을 내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의 무지는 곧 미래의 위기로 되돌아올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