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긴장의 공존 속에서 잊혀진 안전

페넬로피 리 한반도청년미래포럼 국제 인턴 | 기사입력 2025/08/12 [16:21]

평화와 긴장의 공존 속에서 잊혀진 안전

페넬로피 리 한반도청년미래포럼 국제 인턴 | 입력 : 2025/08/12 [16:21]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올릴 때, 그 이미지는 첨단 기술과 빠르게 발전하는 도시 풍경, 활기찬 문화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외관 뒤에는 전쟁 중인 나라라는 독특하고도 무거운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페넬로피 리 한나 후미 얀  국제 인턴

싱가포르 출신인 나는 처음 한국에 와서 잦은 미사일 경보와 긴급 재난문자를 접할 때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 같은 위협이 그저 일상처럼 여겨지고, 사람들은 준비보다 무관심과 체념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위기의 일상화는 외부에서 보기에는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드라마나 여행 영상에는 이 긴장감이 잘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 소식과 경보음이 배경 소음처럼 흘러넘치는 현실 속에서, 국민들의 무심함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더 깊은 문제의 징후일 수 있다. 위협에 익숙해져 반응할 의지조차 사라진 사회가 과연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현실은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DMZ를 방문하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한국 드라마와 문화 콘텐츠를 통해 접한 한국은 낭만과 갈등이 교차하는 다채로운 모습이었지만, 분단과 휴전 상태라는 뼈아픈 현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DMZ 현장에서 느낀 긴장감과 휴전이라는 말의 무게는 내게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성장한 나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평화와 안정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주변국과의 갈등 뉴스는 거의 없었다. 사회 안전망이 촘촘한 그곳에서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미덕처럼 여겨졌다. 이런 환경에서 온 나는 한국인들이 전쟁 위협 앞에서 보여주는 묘한 무감각과 체념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시험과 위성 발사 시도에 따른 반복되는 긴급경보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그 충격은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바로 한국인들의 반응이었다. 교수님, 멘토, 친구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익숙해져서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훈련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실제로 2024년 북한이 위성 발사에 실패해 미사일이 바다에 떨어졌을 때 전국에 울린 경보음과 대피 방송은 내게 충격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차피 달라질 게 없다.”, “그냥 죽는 거지 뭐라는 냉소적인 해시태그와 글들이 넘쳐났다. 이런 반응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분단 상황을 대하는 국민들의 심리적 무기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4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전쟁 가능성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이유는 그저 무관심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현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는 점이다.

 

매일 매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돌리고 무기력을 선택하는 모습은, 복잡한 분단 현실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심리적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의 복잡한 현대사는 정치권의 이념적 대립과 깊이 얽혀 있다. 이념이 강하게 대립하면서 대한민국의 최소한의 국가적 안전 대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북정책은 극단적 양극화를 반복하며, 국민들 사이에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켰다. 그 결과로 국민들은 만성적인 무기력과 안전 불감증에 빠져,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직시하기보다 체념과 무관심 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외부 위협보다도 내면화된 무기력과 안전에 대한 무감각이다. 평화와 안정이란 외형 뒤에 감춰진 이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최소한의 대비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이제 익숙함에 숨어 있는 위협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청년미래포럼 국제 인턴 페넬로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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