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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공산정권이 들어선 북한사회에서의 삶을 비관하고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은 90세 이상 최고령이며 현재 생존자는 약 20%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제 1세대 실향민은 대략 4만 여명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후대가 한국전쟁 휴전 후 남하한 3만여 탈북민이다. 실향민과 함께 분단과 휴전, 통일의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자나 깨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다. 인천에서 실향민 2세 출신의 인천지구함경남도민회 현충국 회장을 만났다.
- 인천에 실향민이 많은 이유는 뭔가. 실향민은 38선 이북서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간 이남으로 피란을 내려온 사람들을 지칭한다. 실향민이 가장 많은 지역이 인천이다. 대략 60만 명의 실향민가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늦어도 한두 달이면 통일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기대하고 이북과 가까운 지역인 인천에서 많이 눌러앉아 살았다.
- 1세대 어르신들은 이제 고령이다. 그렇다. 북한공산정권에 실망 하고 자유를 찾아 남하한 실향민들이 분단 80년 휴전 72년의 세월을 보내고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지 오래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친인척을 만나는 소원을 풀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가는 실향민들의 속은 새까맣게 탔다.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는데 사람이 오죽하겠는가. 불우한 한민족이 80년째 겪는 이산의 고통이다.
- 인천이 고향인가. 아니다. 1959년 4월 경상북도 봉화서 태어난 실향 2세대이다. 형제는 5형제 중 4남이다. 1980년 국립 삼척공업전문대학을 졸업, 1983년 군을 만기제대 후 이후 해양경찰청 재직 시 방송통신대학교를 2008년 졸업했다. 국가공무원 말단 9급으로 들어와 사무관으로 퇴직 시까지 전체 30년 중 약 절반을 해양환경관련 정책기획 업무를 주로 전담하는 중앙부서인 본청(해양경찰청)에서 근무를 했다.
- 이북도민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해양경찰청 과장(사무관)으로 정녀퇴직 할 즈음 어느 날 동료의 사연을 알고부터이다. 그도 나처럼 실향 3세로 아버지 따라 이북도민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들의 애향모임이 이북도민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1990년대 초반 1년 차이로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불쑥 나도 늦게나마 아버지를 대신해 이북도민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결심이 충동적으로 발생했고 굳혔다.
- 좀 더 상세하게 말해준다면. 2019년 4월 인천 중화루서 열린 인천지구 함경남도민회 제41회 정기총회 참석을 시작으로 이북도민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1월 이북5도위원회 함경남도로부터 북청군 성대면 명예면장에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후 함남도민회 사무국장 직무에 이어 회장직무를 맡았고 도민회관리 및 대외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지구도민회 사무국장 연수회를 2020년 7월 전주시서 1박 2일 일정으로 개최했다. 주요내용은 회장보고에 이어 제반비용 공금처리 및 행사참가요청을 강조했다. 2021년 3월 함남장학재단 2021년도(63차) 1학기 장학생 선발 사업을 실시하였다. 추천인원은 인천지구 1명(전국 14개 지구), 1인 200만원이다. 월남 함경남도민의 3,4세대로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가족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이다.
- 또 다른 활동이 있었다면. 남동구 남촌동 농산물센터에서 2023년 1월 ‘이웃과 함께 하는 설명절 행사’를 진행하였다. 여기에서는 음력설을 맞는 지역거주 탈북민 70가구에 김장(10kg) 박스와 떡국떡, 소고기라면, 생활용품 등이 전달되었다. 연례 탈북민 가족결연 행사인 2024년도 행사는 4월 12일 숭의동 숭의가든에서 개최했다.
- 이북도민 활동에 대한 견해는. 이북5도위원회의 정책추진 방향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방조직인 이북5도 시·도사무소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지방의 도민사회를 보다 활성화하려면 공정하고 투명한 행정이 잘 이뤄져야 한다. 예산은 적절한 부분에 맞게 쓰이도록 집행지침을 준수하고 각종 행사의 실효성을 파악하여 보여주기식, 부풀리기 등이 없도록 시대 상황에 맞는 행정구현을 위해 그간의 경험을 살리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실향민인 부모님 이야기를 해 달라. 아버지(현운봉)는 함경남도 북청군(성대면 창성리 578번지)에서 사시다가 어머니(유봉섬)와 3살배기 아들(맏형)과 해방 후 월남했다. 어머니 쪽 가족은 8남매가 모두 내려와서 그나마도 형제끼리 의지하며 살았고 아버지 쪽 가족은 아무도 없었기에 늘 외로운 마음이었다. 항상 고향생각을 하며 눈시울이 촉촉해지던 모습을 보았다.
-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부모님은 경북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겨울에는 장작을 해서 읍에 가서 팔았고 여름에는 도라지, 더덕 등을 어머니가 5일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우리 5형제 모두를 고등학교까지 보낸 부모님이다. 그때는 대부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부모들의 일손을 돕거나 취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 실향민 후세들에게 할 말은.
지금 이북도민활동의 주류는 2세대이다. 이북5도청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 때 보면 무슨 회장, 대표, 이사장, 고문, 자문위원 등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직함을 갖는 것이 좋다면 자식들도 함께 나와야 된다. ‘내 자식은 말을 안 들어’ 이렇게 하면 이북도민회 활동은 우리 2세대에서 끝날 수 있다. 3세, 4세대로 이어져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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