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강제북송에 일조한 과거 사과...인권보호운동에 참여”[인터뷰] 중국요녕성 심양시공안국 이규호 前 공안원한국 내 탈북민 90%는 중국을 거쳐 왔다. 중국과 두만강, 압록강을 두고 국경을 한 특성으로 과거에는 북한주민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탈북했다. 지난 김일성·김정일 시대에서는 탈북자들을 무시하는 정책을 편 북한이다. 허나 김정은 시대에서는 북·중 국경이 고압전기철조망, 독일제전파탐지기 설치 등으로 3·8선 이상으로 바뀌었다. 중국정부의 입장서 보면 탈북자는 엄밀히 불법 입국자다. 사실 탈북자에게는 북한공민증도 아니면 중국거주증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탈북자들은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인신매매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공안은 북한당국과 맺은 협정에 따라 탈북자들을 색출하여 원칙적으로 추방(강제북송)한다. 서울 구로구에서 중국요녕성 심양시공안국 공안원으로 근무했던 이규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중국 내 탈북자는 어느 정도로 보는가. 탈북자 숫자는 중국당국은 물론 북한당국도 일체 함구하고 있다. 공산체제 유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에서는 중국에 약 30~50만의 탈북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1990~2010년대를 기준으로 해서 말이다. 그 중에 사망자도 있으면 새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한국 내 3만 여 탈북민 숫자에 의문이 간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국 내 탈북자 30만으로 가정해서 보자. 그러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는 3만 명은 고작 10%에 해당된다. 그러면 탈북자 10명 중 1명만이 한국에 왔다는 소리가 된다. 한국에 안 들어온 많은 탈북자들 중 일부는 중국호구(호적등본)를 불법으로 취득하고 중국 국민으로 산다. 중국에서 돈을 벌고 관광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드나들 수도 있다. 그 인원수가 약 수만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다소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겠는가. 엄밀히 탈북자가 한국에 간 것과 중국에서 행방불명이 된 것의 차이는 북한당국에서 볼 때 시선이 엇갈릴 것이다. 이왕이면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으로 안 가는 중국 내 일부 탈북자들이 많다. 중국 동북3성 시골에 인신매매로 팔려간 약자 탈북자들은 한국에 가기를 고대하겠지만 도시에서 중국호구를 취득하고 당당히 취업하고 결혼하고 사는 탈북민도 적지 않다.
한국에 안 들어온 많은 탈북자들 중 일부는 중국호구를 불법으로 취득해 중국 국민으로 살고 있어... 그곳에서 돈을 벌고 관광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드나드는 인원수가 수만 명에 달할 것
- 중국공안의 탈북자정책은 어떤가. 파출소 공안원들이 출동하여 주민들의 신고 혹은 불시검문으로 단속이 된 탈북자들은 시(市)공안국에 넘긴다. 거기서 꼼꼼한 조사가 이뤄지며 탈북자로 판정이 나면 북한으로 추방(강제북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파출소 혹은 공안국에 있는 기간 탈북자에게 보증인이나 벌금을 요구하고 슬쩍 눈감아 주기도 한다.
- 탈북자 조사 중 인권유린은 없는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생명보호’ ‘인권유린’ 이라는 말조차 쉽지 않다. 탈북자를 심문할 때 뺨을 때리거나 발길질 등은 기본이다. 손에 잡히는 사무집기를 들어 단속자를 두들겨 패기도 한다. 아픔의 고통을 못 이겨 실토하기도 한다. 더구나 탈북자는 아무런 증명서도 없기에 공안이 함부로 대하기 일쑤다. 그렇게 죽도록 맞고도 어디가 하소연할 수 없는 불쌍한 탈북자다. 상급기관(시공안국)에 넘겨지지 않기만을 눈물로 애원하는 탈북자도 많다. 정말 비참하다.
- 공안이 왜 그렇게 열성적인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다. 어느 나라나 공무원은 국가에 충성할 수밖에 없다. 어떤 때는 조사하기 귀찮으면 바로 시공안국으로 넘긴다. 그러면 오히려 일을 많이 했다는 점수도 받아 승진이나 표창수훈에 유리한 이점이 발생한다. 그러니 주민제보 혹은 상시순찰에서 탈북자 검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탈북자 검거는 자주 있는가. 매월 한 차례 정도씩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다가 나라에 특별한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는 집중단속 기간이 설정되어 여느 때보다 더 많이 그리고 꼼꼼히 진행되기도 한다. 탈북자를 보호해주다가 발각되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 반대로 탈북자를 신고하면 보상금을 준다. 그러니 탈북자 단속이 빈번해지고 있다. 좀 더 상세히 말하면 단속된 탈북자는 그동안 벌은 돈을 공안원에게 찔러주면 풀려나기도 한다. 친척의 보증이나 그동안 사귀었던 지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돈도 지인도 없는 탈북자들은 구류소(탈북자 수용 임시감옥)에 갈 새도 없이 즉각 북송시킨다. 심양, 연길, 대련 등 대도시에는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이 많다. 여기에 종사하는 탈북녀들도 적지 않다. 직업상 돈을 많이 버는 이들은 오히려 탈북자 단속에 안전하다. 술집사장들이 공안원에게 정기적으로 뒷돈을 상납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검거는 매월 한 차례 가 원칙 나라에 특별한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집중단속 기간이 설정되어 꼼꼼히 진행
공무원은 국가에 충성할 수밖에 없어 조사하기 귀찮으면 시공안국으로 넘겨 그러면 일을 많이 했다는 점수도 받아 승진이나 표창수훈에 유리한 이점 발생
- 중국공안의 뇌물수수 행위는. 일반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다. 공무원들이 월급이 많지 않음은 한국과 유사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처럼 비리감시, 민원신고제 등이 중국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로부터 몰래 뇌물을 받는 것이 정상이고 못 받는 것이 바보다. 전체적으로 사회적 문명화가 한국에 비해 50년은 뒤떨어진 중국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선진국 수준은 비단 경제 발전만을 잣대로 하지 않으며 국민교양 평가도 분명히 적용된다.
- 탈북자문제의 중국정부 속내는 어떤가. 중국의 공안은 한국의 경찰이고 안전부는 한국의 국정원에 해당된다. 모름지기 중국 안전부는 고위탈북자들을 지속적으로 색출하여 안전하게 관리를 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래를 대비하여 정보인재를 양성할 것이다. 나라마다 정보는 보이지 않는 국격이며 국력이다. 상대국을 대상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또 다른 특성이 있다면,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들은 1990년대부터 한국으로 유입되거나 돈벌이로 타지로 떠나 인구감소위기를 맞았다. 이 지역에 농촌인구를 채울 안성맞춤의 존재는 탈북자다. 중국정부가 내적으로 탈북자들의 한족호구를 허가할 수도 있다. 한족호구는 완전한 중국국적으로 조선족처럼 동포비자를 한국으로부터 받을 수도 없다. 관광비자는 가능한데 시골사람들에게는 그나마도 어렵다. 그냥 범죄만 저지르지 말고 중국 내에서 조용히 살라는 중국정부의 전략일 수도 있다.
- 북한이 껄끄러워 하지 않겠나. 아무리 동맥국가라고 해도 공개하는 일이 있으면 비공개하는 일도 있다. 참고로 중국은 한반도의 남과 북을 자기네 ‘속국’으로 보는 잠재적 인식이 수백 년 전부터 갖고 있다. 북한도 중국을 내적으로 탐탁한 나라로 보지 않는다. 외교라는 것이 그렇다. 앞에서는 동맹이니 웃으며 악수해도 서로 불편한 점도 있으니 말이다.
중국공안의 뇌물수수 행위는 보편화 한국처럼 비리감시, 민원신고제 등이 전혀 없어...주민들로부터 몰래 뇌물 받는 것 정상이고 못 받는 것이 바보 사회적 문명화 한국에 50년 뒤져있어
- 한국의 대중국정책은 어때야 하는가. 중국이 한국을 자기네 속국으로 보는데 한국은 중국을 대국으로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거두절미하고 잘못됐다. 그러니 과거 한국대통령 방중수행단 기자가 중국경호원들의 뭇매를 맞는 비극이 벌어졌고 여기에 아무 말도 못하는 한국정부였다. 현 정부의 대중국정책에 있어서 좀 더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71년 중국 료녕성 심양에서 출생했다. 조부는 1905년 생으로 경상북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이주 하여 농민으로 살았다. 부친은 중국에서 조선인초등학교 교사였고 모친은 주부였다. 내 위로 형님 2명과 누이가 있다. 1995년 7월 중국 심양시 인민경찰학교(2년제)를 졸업, 8월부터 심양시공안국 화평공안분국 서탑파출소 공안원으로 근무했다. 탈북자를 검거하면 유일한 조선족 공안원인 내가 주로 통역을 했다. 나머지 공안원은 모두 한족출신이다.
-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공안에 들어와서 이듬 해. 탈북자를 색출하는 업무에 출동한 적이 있다. 5명이 한 조가 되어 관할지역 순찰에서 단속된 탈북자는 40대 중반 남성이었다. 조선말로 “나는 북조선에 가면 정치범이 되어 사형을 당한다. 제발 조선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 그대로 통역을 해도 한족공안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냉정한 모습을 보였다. 동포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약소민족의 슬픔을 통감했다.
- 수년 만에 부당퇴직을 당했다며. 근무기간 중 내 신분을 조선족에서 한족으로 바꾸라는 파출소장의 건의를 거절한 적이 있다. 그게 부당퇴직의 사유가 아닐까 한다. 중앙정부에 신소하려는 나를 공안이 긴급체포했고 회유와 협박, 고문을 했다. 이에 거대한 분노를 느껴 2010년 자유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망명해 왔고 2016년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1971년 중국 료녕성 심양에서 출생 조부는 1905년 생으로 경상북도 출신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이주해 농촌생활
중국 공안원으로 탈북자 색출 나섰던 ‘죄과’ 회개하고 탈북민 인권옹호운동 2012년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정부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하라’ 피켓 및 연설 집회에 참여하고 있어
-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는가. 과거 중국 공안원으로서 탈북자 색출에 나섰던 ‘죄과’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탈북민 인권옹호 운동에 참여한다. 지난 2012년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정부는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단하라!”는 피켓 및 연설 집회에 나가고 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은 그야말로 비참하다. 중국 정부의 비인도주의적인 만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야 국제사회가 움직일 수 있다. 탈북자문제는 당연히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되어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 북한인권 화요집회에 자주 보이던데. 대표적 북한인권개선 운동인 화요집회는 대한민국 국회에 북한인권재단 설립요구 촉구를 주제로 한다. 매주 화요일 국회정문 앞, 주한 중국대사관 앞, 사단법인 북한인권 사무실 등지서 정치권에 요구하는 북한인권 문제를 등을 호소한다. 많을 때는 40여 명, 적을 때는 5~6명의 통일애국 인사들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북한인권 문제의 당사자는 누가 봐도 탈북민이다. 그런데 북한인권을 주제로 하는 화요집회에 남한사람들보다는 탈북민이 주축으로 하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본다. 물론 모두 먹고 살기 바쁘겠지만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외면하는 북한인권문제는 해결의 완성은 멀리에 떠밀려 나갈 것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의 할아버지의 조국,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이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바로 위태로운 안보다. 이재명 정권은 북한에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리고 북한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특히 국민들이 통일을 떠나서 북한동포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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