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고위급회담 통해 남북관계 안정시키고 한반도 평화 구체화에 노력

[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⑭
15대 국토통일원 홍성철 장관

윤현중 기자 | 기사입력 2026/04/21 [17:40]

남북고위급회담 통해 남북관계 안정시키고 한반도 평화 구체화에 노력

[기획] 57년 통일부 역사...수장들의 발자취를 보다 ⑭
15대 국토통일원 홍성철 장관

윤현중 기자 | 입력 : 2026/04/21 [17:40]

  홍성철 국토통일원 장관

 홍성철 장관은 노태우 정부의 임기 중반 남북관계개선에 박차를 가했던 인물이다. ‘마지막 국토통일원 장관이라는 그의 직함은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통일원이 더 큰 역할을 하라는 정책전환의 말이기도 하다.

 

그는 1990319일 취임해 같은 해 1226일 통일원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되기까지 약 9개월간 재임하며, 노태우 정부의 통일정책이 방향을 잡고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과도기를 책임졌다.

 

‘8·15민족대교류실행과 남북고위급회담

 

815일을 전후한 5일간 민족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 8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을 통로로 북한동포들 받아들일 것

획기적인 조치를 조건 없이 하겠다는 데

북측은 노대통령의 제의를 거절했다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720일 노태우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민족대교류를 제의하면서 북한의 조건없는 수락을 촉구했다.

 

직전의 이홍구 장관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개척자였다면, 홍성철 장관은 그 성과를 현실 정책으로 다듬고 유지해야 하는 수성자적인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가 마주한 핵심 과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태우 대통령이 제시한 ‘8·15 민족대교류의 실행이었다. 다른 하나는 1990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720일 노태우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민족대교류를 제의하면서 북한의 조건없는 수락을 촉구했다.

 

올해 815일을 전후한 5일간을 민족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8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을 통로로 열고 북한동포들을 제한 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원하는 남쪽의 어느 지역이든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남쪽을 방문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기간 중 우리국민 누구라도 제한 없이 판문점을 통해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조치를 조건 없이 하겠다는 데도, 북측은 노대통령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에 굴하지 않고 홍 장관은 이종남 법무장관, 이상훈 국방장관과 723일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노태우대통령의 720민족대교류 제안의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북의 호응이 없어 성과를 내는데 실패했다. 신변보장 없이 우리 국민을 북한에 보낼 수 없었다.

 

남북대화 진행... 판문점에서 예비회담

 

1차 회담은 9094일부터 97일까지

2차 회담은 1016일부터 1019일까지

장소는 서울에서 먼저하고 2차는 평양에서

의제는 북측의 의견 수용 '남북간 정치·군사

대결상태 해소와 교류협력 실시문제'로 정해

 

남북대화는 계속 진행되었다. 73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에서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이 열렸고, 이어 726일 송한호-백남준이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198928일부터 총 8차례의 예비회담과 실무대표접촉을 가진 결과였다.

 

회담 명칭은 남북고위급회담으로 하고 1차 회담은 199094일부터 97일까지, 2차 회담은 1016일부터 1019일까지 하기로 했다. 장소는 서울에서 먼저하고 2차는 평양에서 하기로 했다. 회담의제는 북측의 의견을 수용해 '남북 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로 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홍성철 국토통일원 장관

회담 대표단 구성은 쌍방 총리가 수석대표, 대표는 장·차관급 7명으로 하기로 했다. 군 대표는 참모총장급을 포함, 2명 이내로 하고 수행원과 취재기자 규정, 신변안전보장을 해주기로 했다.

 

회담에 대비하여 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에 강영훈 총리, 대표에 홍성철 장관, 박필수 상공장관, 김종휘 청와대외교안보보좌관, 유종하 외무장관, 이진설 경제기획원차관, 정호근 합참의장 등 7명을 임명했다. 821일 대표 2명을 교체했다. 상공장관과 외무장관 대신 이병룡 국무총리특별보좌관,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을 선임했다.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을 특별히 지명한 이유는 북측이 제기한 군축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노 대통령은 회의 석상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정치군사차원의 회담 성격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어렵게 마련된 기회를 살려 각 분야 전문가를 투입하고, 동서독 기본조약(1972)에 준하는 남북 간 헌장이자 기본합의문 도출을 목표로 진지한 협상에 임했다. 다만, 의제가 통일원이 감당할 선을 넘었으므로 통일원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언론에서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한반도 문제 제기라는 차원에서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크게 받았으며, 한반도가 분쟁의 상징에서 평화와 통일의 공간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로 인식되었다.

 

북측에서 연형묵 정무원총리 수석대표

 

홍 장관이 대변인으로서 조금 강한 견해를

피력한다는 비판을 받아 대언론 관계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임 원장이 그 자리에 앉아

남북기본합의서 타결될 수 있는 판 깔아주고

통일원장관 부총리가 됨에 따라 장관 교체

 

홍 장관은 94일부터 7일까지 1차 서울 고위급회담 때 우리측 회담 대변인이었다. 1016일부터 19일까지 2차 평양회담부터는 임동원 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홍장관이 대변인으로서 조금 강한 견해를 피력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므로 대북, 대언론 관계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임 원장이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임 대변인은 회담 출발과 종료, 주요 국면마다 성명을 통해 민족공동체 회복,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 화해와 협력의 시대, 통일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강조하며 국민과 북측을 향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3차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측은 포괄적 관계개선(체제인정·신뢰구축·군비감축 등) 구상을 담은 합의서 초안을 가지고 접근한 반면, 북한은 유엔가입·팀스피리트 훈련·방북 구속자 문제 등 선결 현안과 불가침 선언의 우선 채택을 지속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우리 측은 3차 회담에서 북한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수정안을 내놓으며 합의에 노력했지만, 북한이 끝까지 불가침 선언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3차 고위급회담을 하던 12월말 개각 이야기가 나왔다. 통일원장관이 부총리가 됨에 따라 홍 장관이 교체됐다. 장차 남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인물 약력]

1926년 황해도 은율 출생,

경기고(제일중학) 졸업, 1962년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한 뒤 주미 공사로서 근무

1970~1973년 박정희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1978.12~1979.12월 보건사회부장관

1984~1994년 황해도민회 회장

1985~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 부위원장, 1985년 고향방문단 단장으로 평양에 갔을 때 누나 홍경애(72) 상봉.

1985~1988년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겸 서울지회장

1986~ 이북도민중앙연합회장

1987.2~1988.2월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1990년 통일원장관, 199012월 평양 제2차 고위급회담에서 누나 재상봉

1991년 장관 퇴임 후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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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三池淵)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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